본문 : 요한일서 3장 11-24절
요한일서는 사도 요한이 기록한 것으로 수신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요한일서는 다른 서신서와 비교해서 수신자가 편지의 서두에 나와 있지 않지 않다. 하지만 사도 요한이 나의 자녀들(요일 2:1)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요한이 복음의 씨를 뿌리고 양육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편지는 AD 85-96년쯤에 기록되었다. 당시 교회는 외부적으로는 로마의 박해 가운데 있었고, 내부적으로는 이단의 공격에 처해 있었다. 특히 그 이단은 영지주의였는데, 교회는 이러한 공격으로부터 신앙을 지켜야 했다.
그때 사도 요한은 두 가지 신앙의 기준을 제시해 주었다. 첫째, 교리체계였다. 당시 영지주의는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고 주장하면서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신 것을 부정했다. 심지어 그들은 육체로 하는 모든 행동은 악하다고 해서 도덕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오히려 교회는 육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고 거룩한 삶으로 나가야 한다고 가르쳤다. 둘째는 형제사랑이었다. 당시 이단들은 형제 사랑을 간과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사랑을 무시했던 것이다. 오늘 본문은 특히 사도 요한이 형제 사랑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14절) 이 말은 구원받은 백성의 증거는 형제 사랑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난다는 말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여전히 사망 가운데 머물러 있는 자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한 사람을 예를 들고 있는데, 12절에 나온 가인이다. 그는 형제 아벨을 미워했을 때 결국 살인까지 저지른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의 열매는 이처럼 비참해진다. 반면 형제 사랑의 모범을 소개했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16절에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예수님은 형제 사랑을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자리로 증명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사도요한이 그토록 형제사랑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 배경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의 박해를 받고 있었다.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를 쓸 때는 도미티안이 통치하는 시대로 박해가 최절정에 달했던 시기였다. 특히 도미티안은 숨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색출하기 위해 잡혀 온 그리스도인들에게 피비린내 나는 고문을 가했다. 그러자 형제들을 지키기 위해 순교한 자들도 있었지만 자신의 생명을 부지하고자 내부 고발하는 자들도 늘어나게 된 것이다. 그때 사도 요한은 우리가 믿는 신앙이 무엇인지, 또 그 신앙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를 가르친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신학적으로 이단이냐 아니냐 접근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은 공동체 안에서 형제사랑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우리의 신앙은 관념이 아니라 실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형제 사랑의 기준은 무엇인가? 단순하다.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느냐,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내가 희생하느냐이다. 기독교 신앙은 철저하게 이타적이다. 하나님이 범죄한 인간을 살리기 위해 아들을 주셨다. 예수님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생명을 던지셨다. 그러므로 이타적인 하나님에게 이기적인 신앙은 어울리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은 생명을 나누도록 것이다. 구원의 감격을 주신 것은 영혼을 살리기 위함이다. 그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임을 증명할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다들 힘들어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돌볼 여유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오히려 이때가 그리스도인들의 저력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이다. 아니 우리의 신앙을 하나님께 검증받을 기회이다.
저는 항상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면 저의 누님이 생각난다. IMF 때의 일이다. 그때 다들 힘들어하지 않았나? 기업이 도산하고, 가장이 실직을 했다. 학생들도 등록금을 내지 못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누님도 힘든데, 없는 돈으로 알바를 해서 친구들 밥을 사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누님에게 물었다. 친구들 밥 사줄 돈이 어디 있냐고, 누나가 뭐 자선사업가냐고? 그러자 누님의 말이 내 모습을 부끄럽게 하였다. 어느 날 밥을 못 먹는 친구들이 많다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다들 경제적으로 어려우니까 제일 먼저 줄인 것이 끼니였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가 생각해 보니까 친구들에게 밥 사주는 거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유한양행의 설립자이신 유일한 박사의 일화이다. 평생 모은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사람이 있다. 고작 친손녀에게 천만 원 물려준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어렵게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는지 물으니 성경을 깊이 묵상하니까 형제사랑으로 증명하는 것이 참 신앙이라고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주위를 돌아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다. 작은 것을 실천할 때 참된 그리스도인임을 증명할 것이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18-19절).
홍석균 목사(한성교회 청년부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