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펜젤러, 존스의 원주 강원감영에서의 주일예배’는 사실과 달라

선교
오피니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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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펜젤러와 존스(조원시) 선교사의 첫 번째 강원도 순행 기술에 관한 몇 가지 문제(上)

기존 발표 내용의 오류, 고착되고 확대 재생산 안타까워
‘1888년 8월 원주 감영에서 주일예배’는 잘못된 정보
‘1889년 8월 18일 경기도 지평에서 주일을 보내고,
8월 19일 원주서 1박 후 충주 방면으로 출발’한 것이 사실

1. 서론

강원도에 개신교 선교 초기 복음이 어떻게 전해졌는지에 대한 명확한 자료는 아직껏 밝혀진 것이 많지 않다. 다만 개략적인 초기 선교역사가 몇 분 교회사 학자들이 쓴 ‘초기교회형성사’와 강원도 지역의 오래된 교회를 중심으로 발간된 개교회사를 통해 정리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한 가운데 접하게 된 아펜젤러와 존스 선교사의 남부 순행일기를 읽다 보니 지금까지 알려진 강원도(원주) 지방을 방문하고 충주, 대구를 거쳐 부산으로 순행한 선교사들의 여정 기술에서 몇 가지 문제점을 발견해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아펜젤러와 존스의 선교사역은 위대했으며 그들의 발자취는 우리 모든 크리스천이 칭송하고 찬사를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위대한 인물들의 사역을 기록하면서 가끔 부풀려지고 연구자들의 개인적인 주관과 해석 때문에 그릇된 역사 인식이 종종 남아있는 자료에 관해 의문점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아펜젤러와 존스의 원주 방문 이야기와 이를 잘못 기술한 자료들에 대한 의문점을 공론화해서 정확한 역사 인식을 갖게 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앞에서 언급한 최초로 원주를 순행한 두 분 선교사의 방문 기술에 관한 여러 가지 잘못된 자료들이 너무 많이 발견되고 있기에 이 잘못된 자료들이 고착되고 확대 재생산되기를 바라지 않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기존에 발표된 원주 순행기록들이 한국기독교 역사학계의 저명한 학자들과 목회자들에 의해 쓰였기 때문에 그들이 인용한 자료를 확인도 없이 재인용해 글을 쓰고 또 2차 자료를 생산했기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라 생각한다.

필자는 교회사학자는 아니지만, 요즘처럼 자료가 넘치는 시대에 이전보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바른 자료를 통한 초기 선교역사가 정립되기를 바라면서 개신교 선교사들의 첫 번째 강원도 순행 여정 중 원주까지의 기술에서 아펜젤러와 존스의 행로에 나타난 문제점들을 함께 고찰해 보고자 한다.

2. 아펜젤러와 존스의 첫 번째 남부순행에 관한 1차 자료 비교

2-1. William Elliot Griffis, D.D., L.H.D., A Modern Pioneer In Korea (The Life Story of Henry G. Appenzeller), Fleming H. Revell Company,1912
2-2. Edited by Harold. J. Noble, An Extract from the Journals of George Heber Jones, D.D., “A Journey Through Southern Korea in 1889”,

존스 선교사가 한국에 와서 처음 계획한 남부 순행은 올링거(F.S. Ohlinger) 목사와 함께 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 후에는 아펜젤러 선교사와 압록강 지역까지 함께 여행하기로 했지만, 이 역시 호조(護照) 발급 문제로 지연되어 갈 수 없었다. 호조가 늦게 나오는 바람에 계획했던 압록강 지역을 포기하고 양평, 원주, 충주, 대구를 지나 부산까지 가는 감리교 선교사의 첫 번째 남부순행을 아펜젤러와 함께하게 된 것이다.

당시 22세였던 청년 존스 선교사는 비교적 상세히 매일 매일의 남부 순행기록을 남겼다.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 방문한 곳, 지역의 특별한 모습 등을 청년의 눈으로 표현했다. 문제의 제기는 바로 순행 당사자인 존스와 아펜젤러의 기록과 당시 한국에는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그리피스(W.E. Griffis)가 쓴 아펜젤러의 전기 내용에서 두 선교사의 기록과 상충하는 부분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위에 소개한 2-1 『A Modern Pioneer In Korea』는 그리피스가 쓴 아펜젤러의 전기를 이만열 교수가 번역해 아펜젤러의 보고서, 일기 등과 함께 1985년 연세대학교출판부에서 『아펜젤러』로 펴냈다. 이 책에는 아펜젤러와 존스의 원주 방문 일자에 관해 이 책 329쪽 하단의 각주에 아펜젤러와 존스가 남부지역 순행을 한 것이 1888년 8월로 되어 있다. 또한, 순행 중 원주를 방문한 날짜는 토요일이고 다음날 순행선교사 2명이 예배를 드렸다고 되어있다.

초판 발간 30년이 지난 후 다시 개정판으로 2015년 IVP 출판사에서 출간한 『아펜젤러』 186쪽 하단에 보면 “다음 날은 주일이었다. 그러나 원주에는 한국인 그리스도인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나와 아펜젤러는 둘이서 아름답고 매우 성스러운 예배를 드렸다”라고 기술한 그리피스의 오류를 그대로 번역해 실었다.

그러나 필자가 확인한 존스의 1889년 8월 18일 일기 원문에는 “Sunday was a peaceful day(주일은 평화로운 날이었다)” 이렇게 쓰였고, 아펜젤러는 1889년 8월 19일 그의 순행 일기를 시작하며 “We spent a very quiet restful Sabbath at the little Magistracy of Jibyung(우리는 아주 평온한 안식일을 지평이라는 작은 현에서 보냈다)”라고 기술했다.

1889년 8월 17일, 19일 자 아펜젤러 남부순행 일기 원본 영인본
1889년 8월 17일, 19일 자 아펜젤러 남부순행 일기 원본 영인본. 왼쪽 페이지에는 1989년 8월 17일 지평, 오른쪽 페이지에는 19일 원주라고 기록돼 있다. 아펜젤러는 원주 순행기 첫 문장에 “We spent a very quiet restful Sabbath at the little Magistracy of Jibyung(우리는 아주 평온한 안식일을 지평이라는 작은 현에서 보냈다)”라고 기술했다. ©배재학당역사박물관

이와 함께 “A Journey Through Southern Korea in 1889”는 위에서 소개한 대로, 아펜젤러와 존스 선교사가 1889년 8월 16일 서울에서 출발해 8월 31일 부산에 도착할 때까지의 여정을 2년 후인 1891년 존스 선교사가 순행일기로 기록하고, 이것을 다시 37년의 세월이 흐른 뒤 노블 선교사가 1928년 11월호 KMF와 1929년 1월호 KMF에 발췌 편집해서 실은 것이다. 노블 선교사가 편집해 KMF에 게재한 존스의 남부순행 일기를 보면, 순행 첫 주일을 맞은 곳은 원주(原州)가 아니고 경기도 지평(砥平)이었고, 원주를 향해 출발하고 도착한 날짜는 1889년 8월 19일 월요일이었다. 필자의 의견은 전기 작가와 원저자의 기술에 있어 원저자의 기술이 더 정확한 것으로 생각함으로 지금까지 기정사실로 되고 있는 원주 감영에서 주일날 예배를 드렸다는 아펜젤러와 존스의 순행기록은 수정되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다만 1929년 1월에 KMF에 실린 후속편 글의 제목이 노블 선교사의 실수 인지 아니면 편집자의 잘못인지 “A Journey Through Southern Korea in 1888”로 연도가 잘못 표기되었다. 따라서 2개월 전 1928년 11월에 발간된 KMF를 읽지 않은 독자들은 존스와 아펜젤러의 남부 순행 연도를 1889년이 아닌 1888년으로 오해했을 가능성이 크다.

3. 아펜젤러와 존스의 첫 번째 남부순행에 관한 2차 자료 비평

3-1. 조성환, 『헨리 G. 아펜젤러 문서』, 탁사, 1999
3-2. 이덕주, “원주제일교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원주제일교회 창립 100주년 기념 원고, 2005
3-3. 조이제, 『제천제일교회 100년사』, 2007
3-4. 김석영, 『처음선교사 아펜젤러』, KMC, 2011
3-5. 김낙환, 『아펜젤러 행전』, 청미디어, 2014

조성환은 3-1. 『헨리 G. 아펜젤러 문서』 283쪽에 있는 부록에서 1889년 남부 선교여행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아펜젤러가 이듬해(1889년) 8월에는 조지 히버 존스(George Heber Jones) 선교사를 동반하여 말을 타고 충청도의 공주와 강원도의 원주를 거쳐 경상도의 대구와 부산까지 16일이 걸려 도착했다. 원주에서는 많은 구경꾼이 모여들었지만 신자는 한 사람도 없어 둘이서 주일예배를 드렸다. 이로써 8개도 가운데 6개 도를 선교차 방문 여행하였다. 여건이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아펜젤러는 1888년 한 해 동안 약 7,200리(1,800마일)의 미개척지 선교여행을 하였으며, 감리사의 직책과 선교부 회계의 직책을 맡아 수행하였다.”

조성환은 1985년 연대출판부에서 발행된 이만열 편 『아펜젤러』 내용을 인용한 후, 남부순행 코스에 공주를 경유해 원주에 도착했다는 남부순행에 없었던 코스를 추가해 넣었는데 아펜젤러의 공주 여행은 남부순행과는 관계가 없는 1889년 2월의 일이었다. 이어서 주일예배를 존스와 함께 원주에서 드렸다고 했으나 주일예배를 드린 곳은 경기도 지평이었다. 이와 함께 아펜젤러가 1888년 한 해 동안 1,800마일의 미개척지 선교여행을 했다고 기술했으나, 이는 1888년~1890년까지의 여행 거리라고 스웨어러(W.C. Swearer) 선교사가 아펜젤러 추도사에서 언급하고 있다.

원주제일감리교회 창립 100주년 기념 강연에 초청 연사로 초대받은 이덕주의 3-2. 강연 초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아펜젤러와 존스 선교사는 원주에 와서 관찰사와 주민들로부터 최상의 대접을 받은 것이다. 두 선교사는 관찰사가 내준 넓은 객사(客舍)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그런데 원주에 도착한 그 이튿날은 주일이었다. 두 선교사는 원주 객사에서 주일 예배를 드렸다. 원주에서 거행된 최초 예배였다. 아펜젤러와 동행했던 존스의 증언이다.

존스는 말하기를 ‘이튿날은 주일이었습니다. 원주에는 토착 교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펜젤러와 내가 함께 예배를 드렸는데 유쾌하면서도 대단히 성스런 예배였습니다.’”

1889년 8월 아펜젤러 남부순행 일기 원본 영인본 첫 페이지. ©배재학당역사박물관

3-2. 이덕주는 기존 이만열의 책 『아펜젤러』 내용을 인용해 이들이 원주에 도착한 그 다음날이 주일이었고 두 선교사는 원주 객사에서 주일예배를 드렸다고 설명한다. 또한, 원주에서 거행된 최초 예배였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존스의 증언을 인용했는데, 필자는 그리피스가 존스의 증언이라고 인용한 전거를 밝히지 않아 그 내용을 어디에서 인용했으며, 그리고 그 내용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분명 존스와 아펜젤러의 순행일기에는 그들이 원주에 도착한 날짜는 1889년 8월 19일 월요일이라고 기술했다. 따라서 남부순행 당시 원주에서는 이덕주가 기술한 “강원도 땅에서 처음 드려진 원주선교의 기반을 놓는 강원감영 객사에서 두 선교사의 예배”는 수정되어야 한다.

조이제는 그가 집필한 3-3. 『제천제일교회 100년사』 61쪽에 두 분의 남부순행기를 이렇게 소개했다.

“아펜젤러 일행은 8월 16일 금요일 서울을 출발하였다. 흥인지문(동대문)을 나와 남한강을 따라 가다가 지평(오늘의 양평)에서 주일을 맞았다. 이들은 지평에서 주일을 지낸 후 출발하여 월요일인 8월 19일에야 원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김석영 역시 위에 소개한 3-4. 그의 책 『처음선교사 아펜젤러』 111쪽에 두 분 선교사들의 행적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다음날은 주일이었다. 당시 원주에는 조선 사람 그리스도인이 한 사람도 없었다. 존스는 아펜젤러와 단둘이 드린 아름답고 거룩한 예배를 이렇게 기록하였다.”

마찬가지로 김석영은 3-4. 『처음선교사 아펜젤러』 108쪽에 “1889년 8월 존스 선교사와 부산으로 선교여행을 떠나다”라는 소제목을 달아놓고 이만열의 『아펜젤러』 책의 내용을 인용해 부산 순행 코스에는 없었던 충청도 ‘내포’를 경유해 원주로 갔다고 기술했는데, 이 내용의 두 분 선교사가 남부순행에 충청도 내포를 경유해 원주로 갔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그들의 강원도 원주까지의 경로는 서울→양평→지평→원주로 설명되어야 한다.

아펜젤러와 존스의 남부여행에 관해 김낙환은 3-5. 『아펜젤러 행전』 169쪽에서 아래와 같이 기술했다.

“장로교의 언더우드와 함께 지방 전도 여행에 나서 1888년 봄 소래를 거쳐 평양까지 순회하였고, 그해 8월에는 감리교의 존스(G.H. Jones)와 동행하여 강원도·경상도 지방을 순회하였다. 1888~1890년에 그는 전국 8도 중 6개 도의 각 지방을 순회하였는데 총 여행거리는 1천8백 마일에 이르렀다.”

계속해서 3-5. 김낙환이 기술한 내용을 보면, 다른 저자들과 달리 그가 인용한 전거는 그 자신이 이전에 쓴 『우남 이승만 신앙연구』 p.157에서 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책 2곳에서 모두 아펜젤러와 존스가 강원도, 경상도 지방을 순회한 것을 1889년이 아닌 1888년으로 고착시켜놓고 있는 것이다.

이와는 다르게 조이제는 그가 집필한 제천교회사에서 1928년 11월 노블이 편집해 『Korea Mission Field』에 게재한 존스의 순행일기 내용을 번역해 소개함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과는 다르게 기술하고 있다. 다만 그가 부연 설명한 지평(砥平)은 오늘의 양평읍 소재지가 아니라 현재도 지평면이 소재한 지평이며 당시에는 지평현(砥平縣)이었다.

1889년 당시 아펜젤러와 존스의 최초 강원도 순행으로 인해 원주 지역교회가 세워질 수 있는 시발점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원주 기독교계에서는 지금까지 위의 자료뿐만 아니라, 한국기독교사에 소개된 ‘아펜젤러와 존스 선교사의 원주 방문 기간 주일예배를 강원감영 객사에서 드렸다’라는 상징성을 지우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원주 방문에 대한 기존 발표자들의 권위와 이 오류를 지적하는 미안함 때문에 그냥 넘어가기보다는 더 늦기 전에 바로잡아 더이상 픽션 같은 내용의 아펜젤러와 존스 선교사의 남부순행 기술이 나오지 않기를 기대하며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지금까지 위와 같은 저서들과 논문 기타 인터넷상에서 만날 수 있는 우리가 알고 있는 ‘아펜젤러와 존스의 첫 번째 남부순행 기록’ 중 원주 방문 기술에 관한 오류를 조금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계속>

리진만(우간다, 인도네시아 선교사)

#아펜젤러 #존스 #남부순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