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베드로 후서 2장 12-22절
베드로 후서는 사도 베드로가 소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교회에 쓴 편지이다. 베드로 후서의 주제는 베드로 전서와 동일하게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의 삶을 다루고 있다. 베드로 전후서가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의 삶을 다루는 면에서는 같지만 기록 배경에는 약간 차이가 있다. 베드로 전서는 로마의 핍박 가운데 쓰여진 것이라면 베드로 후서는 이단의 공격에 맞서 기록된 것이다. 베드로 후서가 기록될 당시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교회를 흔들어 댔었다. 구체적으로 그 이단을 영지주의라고 말하는데, 영지주의는 영적인 지식만 추구하는 사상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영은 선한 것이고, 육은 악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육신의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였다. 심지어 이들은 육신으로 하는 모든 일은 악하다며 도덕 무용론까지 주장했다. 그래서 성도들을 방탕한 삶으로 돌아가도록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이러한 거짓 가르침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 편지를 쓴 것이다.
오늘 읽은 본문도 거짓 선지자에 대해서 경계하라는 본문이다. 특별히 그들의 특징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는데,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고 그들의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12절). 거짓 선지자들을 이성 없는 짐승이라고 한다. 이들의 가르침은 이성 없는 짐승의 소리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성도들을 성숙한 신앙으로 이끌지 못했다. 또 이성 없는 짐승이라고 할 때 어떤 수식어가 붙어 있는가? “잡혀 죽기 위해 태어난”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이들은 짐승 같은 최후를 맞이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러한 거짓 선지자들의 모습을 구약 성경의 한 인물에 비유하고 있다.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 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15절). 발람은 민수기 22장에 나오는 선지자인데, 모압 왕 발락이 돈을 주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요청한 선지자였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만을 예언하는 선지자이다. 그런데 그는 돈 몇 푼 때문에 거짓 예언을 하려고 했다. 물론 하나님이 막으셔서 예언을 하지 않게 되지만 결국 돈 때문에 거짓 예언을 한 선지자라는 오명을 씻을 수 없게 되었다. 적용) 오늘날 우리가 참 선지자인지 거짓 선지자인지 분별하는 기준도 마찬가지이다. 이성 없는 죽은 가르침으로 전하지 않는지, 살아있는 진리를 가르치는지 분별해야 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행하는 자인지, 불의의 삯을 위해서 일하는 자인지 기준을 삼아야 한다.
분별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20절 말씀처럼 나중 형편이 처음 형편보다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사단은 잘 알고 있다. 칼과 죽음의 위협으로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만큼 거짓 가르침으로 교회를 무너뜨리는 쉽고 빠른 것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단의 수법은 무엇인가? 단순하다. 기만하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준비되어 있나니”(17절). 그들의 모습은 처음에는 사막에 샘을 만난 것 같고, 강렬한 햇볕을 막아주는 안개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실상은 샘이긴 샘이지만 물이 없는 샘이었다. 안개이긴 안개인데 곧 사라지는 안개였다.
사역을 하면서 기만하는 이단들을 많이 경험한다. 처음에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달콤하게 다가온다. 간이고 쓸개이고 다 빼줄 것 같이 사랑을 쏟는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발뺌한다. 예전에 신천지에 빠진 한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을 뻬내 오려고 신천지 센터에 쳐들어가서 ‘당신들 왜 가만히 있는 우리 청년을 데리고 갔냐고, 뭐하는 거냐’고 말했다. 그러자 ‘내가 너에게 해준 게 얼마나 많은데,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지금 이 목사를 따라가든지 나를 따라가든지 결정하라’는 것이다. 만약 지금 이 목사를 따라가면 친구 관계는 절교라고 말했다. 나도 이 친구가 신천지인데 따라 갈 거냐고 말했다. 그냥 목사님 따라가겠다고 하자. 몸을 파르르 떨면서 넌 이제 절교라며 내가 널 위해 사 준 거 해 준거 당장 가지고 오라고 협박하는 것이다.
그들은 물 없는 샘 같고,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와 같다. 왜냐? 실체가 없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이단에 빠지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신앙의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그분이 내 삶을 통해서 역사하신 구체적인 간증도 없다. 그러므로 열심만 있는 믿음은 위험하다. 진리는 없고 열정만 있는 신앙은 경계해야 한다. 아무리 열정이 있어도 진리가 없으면 광풍에 밀리는 안개와 같다. 그들은 금방 탈진하게 되고 결국 신앙도 버리게 된다. 오늘날 이 시대는 가짜 뉴스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 가짜 뉴스라고 하는 그 사람도 가짜 뉴스를 퍼트리고 있는 시대이다. 거짓 교훈도 마찬가지이다. 이단이 접근해 오는 방법도 더 치밀하고 은밀하다. 이때 우리가 더욱더 무장되어야 한다. 온전한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어야 한다. 그때 흔들리지 않는 신실한 믿음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홍석균 목사(한성교회 청년부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