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인 사람들에게 정부에 대한 시민 불복종 개념은 낯설다. 때문에 시민 불복종을 언급하면 급진적이라거나, 혹은 좌익적이라 생각한다. 물론 정부에 대한 불복종, 혹은 저항 개념이 올바로 잡히지 않는다면 그렇게 될 우려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 정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시민 불복종이야말로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필연적 선택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특히 이 가르침이 칼빈의 가르침과 일치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로마서 13:4 말씀에서 시작하고자 한다.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롬 13:4)
이 말씀에는 두 가지 메시지가 담겨 있다. 첫째는 선하고 공정한 사람이 권세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의 역할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악한 사람이 권세자가 되는 것은 우리의 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가 된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칼빈은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공공의 유익을 위해 통치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진정한 표본이며 증거이고, 불의하고 무능하게 다스리는 지배자들은 국민의 사악함을 벌하시기 위해 세우셨으며, 지배자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하나님께서 합법적인 권력을 주신 거룩한 위엄을 부여받았다고 말씀하신다.”(기독교강요 Ⅳ.20.25)고 설명한다.
여기서 우리는 부당한 권위라 하더라도 복종해야 한다는 칼빈의 가르침에 동의하기 어렵다. 어쩌면 이런 태도는 비겁한 태도처럼 보인다. 우리 이성은 부당한 권력에 대해 저항하는 것이 정의를 추구하는 합리적 태도라 생각한다. 그러나 칼빈은 이런 태도를 다음과 같은 말로 강하게 비판했다.
“왕들의 제멋대로 하는 횡포는 정도를 지나칠 것이나 그것을 제한하는 것은 너희가 할 일이 아니다. 너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왕들의 명령에 복종하며 그들의 말을 듣는 오직 이 한 가지뿐이다.”(기독교강요 Ⅳ.20.26)
더 나아가 칼빈은 “권리를 지키는 것은 국민이 할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실 일”(기독교강요 Ⅳ.20.29)이라 한다.
칼빈의 이런 가르침은 의협심에 불타는 사람들에겐 답답하고 비겁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의 가르침은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의 반감에 기름을 붓는다.
“고삐 풀린 듯한 독재를 교정하며 보복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면, 우리는 그 일이 우리에게는 위탁되지 않았음을 즉시 생각해야 한다. 우리에게 복종하며 고통을 참으라는 명령만 주어졌다.”(기독교강요 Ⅳ.20.31)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국민들의 권리를 보호해 주시고 보복해 주신다는 것인가? 하나님은 약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강자의 하나님이시라는 말인가? 고아와 과부의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다는 말인가? 이에 대해 칼빈은 부당한 권력의 폭정을 막도록 세워 준 사람들이 바로 ‘헌법상의 관리들’이라 가르친다. 그들은 오늘날 국회에서 의정활동을 하는 ‘국회의원들’, 혹은 ‘판관들’이다.
이 부분에서 보수와 좌익의 시민불복종의 차이가 나온다. 좌익들은 헌법상의 관리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대변해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에 무조건 불복하며, 심하게는 폭력으로 저항한다. 그러나 보수는 헌법상의 관리들이 시민의 권리를 대변해 주는 정상적인 시스템이 움직이는 동안에는 인내한다.
그러나 만일 ‘헌법상의 관리들’이 성스러운 책임과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가? 칼빈은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나는 그들이 왕들의 사나운 방종에 대해 그들이 의무대로 항거하는 것을 금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이 미천한 일반 대중에 대한 군주들의 폭정을 눈감아 준다면 나는 그들의 이 위선이 극악한 배신행위라고 선포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국민의 자유를 보호하는 자로 임명된 줄을 알면서도 그 자유를 부정직하게 배반하는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기독교강요 Ⅳ.20.31)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는 일은 국회의원들과 판관들에게 위임된 권리다. 그들이 부당한 권위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국민들에게 극악한 배신행위를 한 것이다.
이런 배신행위가 나타난다면 칼빈은 “인간에 대한 복종이 하나님께 대한 불복종이 될 경우”(기독교강요 Ⅳ.20.32)라고 보면서 “주 안에서 순종하라”는 바울의 가르침과 결부하여 시민 불복종의 개념을 다룬다. 칼빈은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주 안에서만 그들에게 순종해야 한다. 만일 그들의 명령이 하나님과 반대되는 것이라면, 그 명령을 존중하지 말라. 이럴 때에는 집권자들이 가진 위엄에 조금도 관심 가질 필요가 없다. 그들이 진정으로 최상인 하나님의 권력 앞에 굴복한다고 해도 그들의 위엄은 조금도 상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에서 다니엘은 그가 왕의 불경건한 칙령에 복종하지 않았을 때에 자신은 왕에게 어떤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하였다.”(기독교강요 Ⅳ.20.32)
인간 권위에 대한 복종은 곧 하나님께 대한 복종과 직결돼야 한다. 칼빈의 가르침은 권세자들의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위탁된 권위’일 뿐이라는 점을 가르친다. 위탁된 권위라는 말은 권위의 주체가 하나님이시라는 뜻이다. 카이퍼가 “사람을 다스리는 권위는 사람에게서 나올 수 없다.”1)고 한 말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나님의 의도에 부합하지 않는 권위는 언제든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제거될 수 있다. 때문에 모든 사람은 권위에 복종하고 순종해야 하지만, 권세자들은 그 권력을 정당하게 행사하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그 권력이 한순간 회수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 권위에 대해 복종하는 것만 신앙이 아니다. 부당한 권력에 적절하게 불복종하고 저항 할 줄 아는 것도 신앙이다. 이 태도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보편화 되면 시민들은 세상에서 권력자의 노예가 아니라 법 안에서 자유인으로 사는 성숙함을 보여주게 된다. 카이퍼가 인용한 벤크로프트의 말은 아주 적절하다.
“칼빈주의의 열광자는 자유의 열광자였다”2)
미주
1) 아브라함 카이퍼,「칼빈주의 강연」,(크리스찬 다이제스트,1998),p.102.
2) Ibid.,p.97.
김민호 목사(회복의교회)
#김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