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인도주의’까지 범죄로 처벌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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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이 14일 통과시킨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대북전단살포금지법)에 대한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정면으로 침해할 소지가 다분한 데도 범여권이 충분한 토론과 숙의 과정 없이 졸속으로 개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더구나 야당의 필리버스터까지 수적 우위를 앞세워 종결시켜 가며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에 대해 사실상 일당 독재에 의한 법치 파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야당은 처음부터 이 법이 북한 김여정 부부장의 하명을 받아 만든 이른바 ‘김여정 하명법’이라며 맹비난해 왔다. 탈북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김여정 부부장이 지난 6월 4일 원색적인 표현의 담화문을 발표한 데 이어 개성에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까지 폭파하자 정부와 여권이 서둘러 법 개정을 추진해 온 것을 빗댄 것이다.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에 대해 “표현의 자유는 얼마든지 보장된다. 탈북민들이 광화문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빨갱이라고 욕해도 아무도 잡아가지 않는다”라고 해 논란을 불렀다. 이 발언 후 표현의 자유에 대해 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자 송 의원은 14일 국회에서 필리버스터 토론자로 나서 또 다시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북한 존엄을 비방하는 전단지를 뿌릴 경우 북한이 장사포로 공격할 수도 있다. 보수세력이 북한을 악마화, 살인마화 시키면서 동시에 그들이 대단히 합리적이고 이성적 행동을 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식으로 자신을 비판한 보수권을 정조준했다.

한국교회연합은 17일 발표한 성명에서 “(대북전단금지법은) 북한 주민을 최악의 인권 말살 상태에서 구해내려는 최소한의 인도주의적 노력마저 형벌로 규제하려는, 북한 통치자의 입맛에만 맞춘 최악의 반인권법”이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한국교회언론회도 논평에서 “이 법의 통과로 북한 주민들은 실낱같은 자유의 불빛도 볼 수 없게 됐다. 자유의 미세한 소리조차 듣지 못하게 틀어막는 폭압의 하수인이 된 21대 국회를 개탄한다”고 했다.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이 대북전단지에 대해 그토록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에 대해 “그만큼 북한 체제가 불완전하고 불안하다는 증거”라고 진단한다. 실제로 많은 탈북민들이 한국의 TV드라마나 전단지 등을 통해 얻은 정보로 탈북을 감행하는 빈도가 잦아지자 북한 당국이 처벌강도를 점점 더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당국은 최근 코로나 외부 유입을 두려워해 아예 국경을 폐쇄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후 과거 고난의 행군 때처럼 가족의 생계를 위한 일시적인 탈북이 아니라 영원히 북한을 등지는 탈북이 증가하자 집중 단속과 잔혹한 처벌로 막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최고 존엄을 건드리는 전단지 내용에 북한 최고위층이 어떤 식으로 반응할 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북한이 전단지에 대한 맞대응으로 장사포를 쏠 것이라고 하는 것은 지나치게 과도한 예단이라고 북한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런 생각은 북한의 동향을 정밀하게 분석한 후에 내린 결론이라기보다 자신의 판단이 옳다는 주장의 신빙성을 위해 동원된 상상력에 가깝다는 것이다.

과거 정권에서도 대북전단지 문제가 남북 간에 갈등 요소가 된 적이 있다. 다만 전단지를 빌미로 북이 무력 도발을 감행했다고 할 만한 사례는 없었다. 지난 6월에 김여정 부부장의 지시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이 우리 정부에 어떤 사인을 준 것일 수는 있어도 향후 장사포를 쏜다든가 하는 무력 도발의 신호탄이라고 단언할 만한 증거는 아니다. 또 하나는 아무리 북한이 비상식·비이성적인 집단이라 하더라도 전단지가 날아왔다고 포격을 가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다는 점이다.

이 또한 추측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송 의원의 ‘장사포’ 발언보다는 좀 더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북한이 처한 정치경제적 상황도 이를 뒷받침해 준다. 비록 미 대선 정국으로 교착상태에 빠졌지만 북미관계 개선으로 국제사회로부터 핵 지위를 인정받고 유엔 등의 경제 제재를 풀어보겠다는 전략을 포기하지 않는 한 명분 없는 무력 도발로 자승자박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전단지살포금지법’이 시행되기까지 변수도 적지 않다. 반발하는 단체들이 헌법 소원을 준비 중에 있고, 미국 등 국제사회의 비판도 정부로서는 적잖은 부담이다. 미국 의회에서는 “한국의 민주적 가치에 대한 헌신도를 재평가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공공연히 나오는가 하면 심지어 “한국을 미국 국무부의 워치 리스트(감시 대상)에 올릴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충격적인 말까지 쏟아지고 있다.

어떤 문제든 찬반이 갈릴 수 있다. 대북전단지 살포 문제는 남북관계 갈등 요소이기 전에 표현의 자유 침해 소지 때문에라도 무조건 규제하는 법을 만들기 전에 반드시 사회적인 의견 수렴과 협의 과정이 필요했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권은 코로나 정국을 틈타 연말까지 무더기로 법을 통과시키며 환호하고 있다. 이런 ‘승자 독식’은 훗날 법치주의 파괴와 민주주의 퇴행에 대한 청구서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전단지살포금지법’이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도 있다. 정치 경제 사회적 압제로 고통받는 북한 주민들을 인도주의 정신으로 지원하는 것을 범죄화 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한국밖에 없다. 이 법이 당장 북한 권력층의 비위를 맞추게 될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 북한의 민주화, 더 나아가 평화 통일의 시간표를 거꾸로 되돌리게 될 거라는 점에서 불행의 씨앗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