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기후 변화 시대에 우리 기독교 공동체의 사경회는 무엇을 훈련하고 무엇을 배우는 자리여야 할까요? 기후 위기 시대의 사경회는 당연히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생태적 위기 상황에 대한 이해와 지구를 살리고 회복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지식과 능력을 배우는 ‘생태환경 사경회’이어야 할 것입니다. 창조 세계의 회복을 위한 기도, 창조 세계와 온전한 관계를 회복하는 성경 공부, 창조 세계의 생태적 정의를 위한 삶을 배우고 이를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실천하는 생태환경 사경회 운동이 기독교 공동체마다 교단마다 지역마다 일어날 때, 한국 기독교 공동체는 선교 초기와 같이 한국 사회의 등불을 밝힐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그의 예정하신 뜻을 따라 이 세상을 이끌어 가신다는 것을 보여 준다. 섭리론 또는 예정론과 유사한 사상으로서 종교적 이신론(理神論), 철학적 결정론(決定論) 그리고 자연주의적 운명론이 있다. 이들 모두 고정적이고 수동적인 사고 유형들이다. 운명론은 고정적인 자연주의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사고로서 고대 헬라인들은 운명의 여신들이 인간의 운명을 주장한다고 믿었고, 동양 철학은 사람의 타고난 우주적 운(運)이 인간의 생사화복을 결정한다고 믿었다. 이런 비인격적인 자연주의적인 고정적 사고와 달리, 섭리론 또는 예정론은 신본주의적 사고로서 세상을 지으신 인격적 하나님께서 그의 주권과 섭리 가운데 인간의 구원과 멸망 그리고 생사화복을 미리 결정하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단순히 나의 과거와 나의 미래를 위해 죽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사실 나의 지금 여기(here and now)를 위해서 피를 흘리셨다. 예수님은 내가 배우자, 말 안 듣는 중학생 자녀 또는 친구와 나눠야 할 힘든 대화를 위해 죽으셨다. 예수님은 늘 불만스러운 표정에 걸핏하면 화를 내는 상사 밑에서 일해야 하는 나의 몸부림을 위해 죽으셨다. 예수님은 문제 많고 엉망인 우리 집안에 감도는 긴장감을 위해 죽으셨다. 예수님은 성적 매력을 드러내라는 세상 문화의 유혹을 받는 나를 위해 죽으셨다. 예수님은 나를 낚아채는 물질만능주의를 위해 죽으셨다. 예수님은 타인의 의견에 대한 나의 두려움을 위해 죽으셨다. 예수님은 나의 불안이 주는고통과 우울이 끌고 오는 어둠을 위해 죽으셨다.…
하나님이 나를 완전하고도 철저하게 받아들여 주셨는데, 심지어 내 최악의 모습까지 받아들여 주셨는데, 결함 많은 인간의 인정을 받는 데서 마음의 평안을 누리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현재의 은혜는 관계를 왜곡시키는 수많은 두려움과 통제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가 하나님이 명하신 일을 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그분의 임재와 은혜로 다 마련해 주시는데, 저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있을지 왜 두려워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