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우화적인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사탄이 그동안 싸움터에서 사용했던 무기들을 졸개들에게 판매했다. 가격이 매겨진 각양의 무기들이 전시 판매되었다. 미움, 시기, 질투, 정욕, 음란, 교만, 공포 등 여러 무기들이 있었다. 그런데 언뜻 보기에는 전혀 위협적으로 보이지도 않고, 또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낡은 무기 하나에 어마어마한 가격이 매겨져 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졸개가 두목 마귀에게 물었다. “이 무기는 무슨 이유로 이렇게 비싼 겁니까?”
그때 두목 마귀가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이것이야말로 사람들에게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는 무기이기 때문이야. 우선 겉보기에 전혀 무서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무기를 별로 경계하지 않아. 그러나 일단 이 무기의 덫에 걸린 사람은 좀처럼 빠져나오기가 어렵다는 것이 이 무기의 최대 강점이지.” 무기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이름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낙심”.
그렇다. 낙심은 위험하다. 낙심은 꿈꾸는 일을 포기하게 만든다. 낙심은 노력하던 일을 멈추게 만들고 낙심은 뒤로 물러서게 만든다. 낙심은 모든 의욕을 상실하게 만든다. 사탄이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서 낙심이라는 무기를 사용한다면, 하나님은 어떤 무기로 우리를 보호하실까? 하나님은 회복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통해서 모든 낙심에서 일으켜 주실 것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딤후1:7)이라고 말한다. 예레미야도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29:11). 너를 향한 계획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다. 미래요 희망이라고 말씀한다. 회복을 선포하는 것이다.
예레미야 31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범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것들을 새롭게 회복하실 것을 약속하는 말씀이다. 회복의 말씀을 통해서, 낙심에서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회복시켜 주실까? 첫째로, 자유를 회복시켜 주신다.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열방에 대해서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을 흩으신 자가 그를 모으시고 목자가 그 양떼에게 행함같이 그를 지키시리로다”(10절). 앗수르나 바빌론같은 나라들은 자신들이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온 세상에 흩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흩으신 자가 열방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었다고 말씀하신다.
잠언에 보면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다”(16:4)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악한 바빌론과 앗수르도 적당하게 사용하셨다는 것이다. 우리 삶에서 만나는 악한 사람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는 것을 아는가? 하나님께서 악인을 통해서 하나님 백성을 깨우치시고 징계하시는 역할을 하게 하신다.
이스라엘은 바빌론의 손에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을까? 11절에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 붙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붙잡고 있는 바빌론보다 더 강한 자가 나타나서 구원할 때까지 그들은 노예로 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제 그들을 구원할 강한자가 오신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원하시되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속량하셨으니(11절)”.
우리도 영적으로 마찬가지다. 바빌론에 사로잡힌 이스라엘 백성처럼 강한 자의 손에 붙잡혀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죄된 습관에 붙잡혀 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음란과 간음과 거짓에 빠져 살아간다. 이스라엘이 하나님보다 이집트를 더 의지한 것처럼, 하나님보다 더 힘 있어 보이는 사람을 의지한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 위로를 받기보다 세상의 방법과 술을 더 의지한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참된 즐거움을 찾기보다, 게임과 스포츠와 세상적인 것을 통해서 일시적인 즐거움을 끊임없이 추구한다. 우리는 모두 죄 아래 있고, 죄라는 바빌론에 붙잡혀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이 강한 세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먼저 내 힘으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외부로부터 오는 힘으로만 내가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문제보다 더 크고 더 강하신 하나님만이 우리를 자유케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라.
나를 사로잡고 있는 여러 문제 앞에서 내가 무력하다고 느껴지는가? 문제 앞에서 나의 작음을 보았다면, 그때야말로,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인 줄 믿는다. 저는 바로 이 모습이 겸손이라고 생각한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작음이 느껴질 때마다 하나님의 크심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겸손은 두 가지 진리를 담고 있다. 인간의 낮음과 하나님의 위대하심이다. “무지의 구름”이라는 책을 쓴 익명의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불완전한 우리 자신의 비참함 때문이 아니라, 완전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위대하심 때문에 겸손을 선택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당신의 관심이 자신의 죄악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치를 향하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페네롱 신부도 말한다. “자기 마을에만 갇혀 사는 농부는 자신의 비참함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그를 화려한 궁전에 데려가 보라. 그러면 자기 마을이 얼마나 가난한지 깨닫게 되어, 자신의 오두막에 대해 이전과 같은 만족감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무한한 광대하심에서 우리의 추함과 무가치함을 보는 것도 바로 이와 같다”.
사랑하는 여러분, 겸손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우리의 일상에서 나의 무가치함을 알고, 하나님의 위대한 가치를 아는 사람이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만날 때, 나를 괴롭히는 강한 자의 손에 신음할 때, 성어거스틴의 고백처럼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이 되신다”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란다. 모든 것 되신 하나님이 우리를 자유케 하신다. 나의 작음이 느껴질 때 하나님의 크심을 바라보라!
최철준 목사(지구촌교회 젊은이목장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