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오직 믿음 구원론과 칼뱅의 예정설과 성도견인론에 뿌리를 둔 ‘한 번 구원 영원 구원론’은 종교개혁 당시에 행위 구원론에 치중한 가톨릭과 투쟁하는 데 있어 유용한 교리였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얻는 믿음으로 천국에 가는 것이지 가돌릭이 중시하는 의식이나 행위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다는 ‘한 번 구원 영원 구원론’은 진리의 일면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 구원론’이 온전한 구원론이 되기 위해서는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 7:18)는 주님의 말씀에 비추어 그것이 좋은 열매를 맺는 주장이어야 할 것입니다.
영원 구원론자들은 행위가 없는 사람은 애당초 구원을 받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사족을 붙이기도 하지만 이미 ‘한 번 구원 영원구원’이라는 표어에 감염된 신자들이 행위 있는 믿음,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성화를 이루어가기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종교개혁 당시 루터는 행위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가르치는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폄하하면서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칼뱅은 빌립보서 2장 13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해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를 근거로 하나님 혼자서 행사하시는 은혜로만 구원이 이루어지고, 인간의 행위는 구원에 관계가 없다는 견인론을 주장합니다(Institute Book II Ch 3, 11, 12).
(그러나 빌립보서 2장 12절은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루터와 칼뱅의 ‘한 번 구원 영원 구원론’은 신자들에게 면죄부를 발급해 주는 결과를 초래하여 종교개혁 이후 100여 년 동안 개신교 교인들은 가톨릭 신자나 불신자들보다 더 육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개신교 지도자들은 교리 개혁을 통한 삶의 개혁 없이는 온전한 종교 개혁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칼뱅의 ‘기독교 강요’(Institute of Christian Religion)가 출판된 지 근 110년 후인 1646년, 3년 동안에 걸쳐 청교도 신앙의 본산지인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를 중심으로 논의한 끝에 완성된 웨스트민스터신조는 칼뱅의 견인론을 성화 필수론으로 대체하였습니다.
웨민신조는 견인론의 구조적 결함을 ‘은혜의 자리’라는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해결했습니다. 신조 제17장 1(성도 견인)은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받으시고 그의 영으로 효력 있게 부르시며 거룩하게 하신 자들은 ‘은혜의 자리’로부터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떨어져 버릴 수 없고 그 안에서 확실히 끝까지 견디며 영원히 구원을 얻을 것이다”라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곧 뒤를 이어 제18장(은혜와 구원의 확실성에 관하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고 성실하게 그를 사랑하고 그의 앞에서 모든 선한 양심에 따라서 행동하기를 노력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있어서도 그들이 '은혜의 자리'에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제17장 1에 제18장을 결합하면,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구별한 자들은 ‘은혜의 자리’로부터 떨어져 버릴 수 없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고 성실하게 그를 사랑하고 그의 앞에서 모든 선한 양심에 따라서 행동하기를 노력하는 사람”이 ‘은혜의 자리’에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성화에 노력하는 사람만이 ‘은혜의 자리’에 있음으로 해서 끝까지 견디어 영원한 구원을 얻을 것임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위와 같이 성화필수 구원론을 가르치는 웨스터민스터 신조는 지난 400여 년 동안 전 세계 모든 복음주의 교회들의 신조로 헌법에 규정되어 왔습니다.
한국의 예수교 장로교회의 헌법도 웨스터민스터 신조를 반영하여 9장 신조에서 “너희의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로 믿고 의지하여 본받으며 하나님의 나타내신 뜻을 복종하여 겸손하고 거룩하게 행하라 하셨으니 그리스도를 믿고 복종하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970년 경제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까지는 한국교회의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행위가 있는 믿음을 구원의 필수 조건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경제개발의 진행으로 물량위주의 사고방식이 사회 전반에 팽배하게 되었고 교회도 교인들의 수를 증가시켜 대형교회를 이루는 풍조에 물들게 들었습니다.
지난 2007년 잠실에서 10만 성도가 운집한 가운데 성령강림 100주년 기념 예배를 주제한 옥한흠 목사는 그것이 진리가 아님을 알면서도 자신이 교회의 양적 성장을 도모하여 ‘한 번 구원 영원 구원론’을 설교해온 죄인의 괴수라고 통회 자복하였습니다.
칼뱅의 견인론은 구원이 성도의 의지 및 행위에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보장됨을 가르치려는 시도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을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는다는 주장입니다.
구원이란 성도가 주관적으로 관여되는 과정일 수밖에 없음에 비추어 성도의 의지나 행위가 없이도 구원이 보장된다고 가르치는 성도 견인 교리를 세우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합리한 일입니다.
근래의 통계에 의하면 한국교회 목회자의 51%가 ‘한 번 구원 영원 구원론’을 신봉하고 있다고 합니다. 나름의 논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 번 구원 영원 구원론’이 신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입니다.
‘한 번 구원 영원 구원론’이 한국교회에서 세력을 얻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 교회는 양적으로 성장하였으나 영적으로 타락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세상의 조롱을 받게 된 현실을 홀시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다시 부흥하기 위해서는 행위가 있는 믿음으로 성화를 이루어감으로 구원을 완성할 수 있다는 통전적 구원관을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김병구 장로(바른구원관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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