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눅 18:8)
프롤레마이오스 왕이 그리스의 학자 유클리드에게 기하학을 빨리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있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서 유클리드는 유명한 답을 하였다. 그 대답이 무엇인가?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다”는 것이었다. 기하학은 그렇고 기도응답에는 王道가 없을까? 예수님은 속히 기도응답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을 말씀하셨다. 이것은 기도응답에는 왕도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것은 원한을 품고 기도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말세에 성도들이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을 비유로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었다. 보통 재판장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사랑하는데, 재판장의 인격이 안된 사람이 재판장이 된 케이스다. 그리고 그 도시에 한 맺힌 과부가 있었다. 그 과부가 자신의 원한을 풀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 재판장을 통해서 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과부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 공권력을 가진 재판장만이 과부의 원한을 풀어 줄 수 있다. 과부의 원한은 무엇이었을 까? 남편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어떤 종교지도자에 의해서 가산도 다 잃은 경우일 수도 있다. 하여간 억울한 과부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주 재판장에게 가서 자신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간청했다. 낮에는 재판소를 찾아가고 밤에는 개인 집을 찾아서 울부짖으며 하소연했을 것이다.
한 맺힌 과부의 울부짖음은 재판장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게 했다. 점심시간을 기다리는 맛으로 살았는데 재판소 앞에서 기다려 매달리고 식당 안에 들어와서까지 울부짖으니 밖에서 사 먹는 것을 포기했다. 퇴근 시간에 기다리고 있다가 매달리고 집까지 찾아와 새벽까지 부르짖었다. 경비가 쫒아내니 집 근처 야산에서 곡소리를 하며 울부짖었다.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주소서” 완전, 신경쇠약에 걸린 재판장은 고백했다.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재판장은 정의감 때문,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도 아니고 오직 자신이 살기 위해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기로 결심하였다. 예수님은 이 불의한 재판장이 하는 말을 들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하물며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속히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는가 반문하셨다.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장이 아니신가? 더구나 그 백성을 깊이 사랑하지 않으신가? 그러니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면 속히 들어주시겠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택하신 자들의 간구를 하나님이 속히 들어주실 텐데,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즈음에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을 보겠느냐고 반문하셨다. 왜 종말의 때에 사람들은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지 않는 것일까? 열 처녀 비유를 보면 속에 기름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기에 지쳐서 신앙의 불꽃이 꺼져가게 되었다. 종말의 시대에 사람들은 신앙이 형식만 남고 내용이 불 꺼진 심지와 같다. 형식적인 신앙생활 하는 사람의 특징은 간절한 기도생활의 상실이다. 형식적인 믿음만 가지게 되면 기도생활의 불이 꺼진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면 속히 응답하시려고 기다리고 계시는데, 안타까운 것은 말세에는 간절히 기도하는 기도의 용사들이 희귀하여 천연기념물 급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과부가 상징하는 신자의 한은 원수마귀에 대한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영혼들을 납치하여 유린하고 죽이는 마귀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다. 우리는 마귀에 대해서 과부처럼 무력하다. 한은 있으나 힘이 없다. 이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의의 재판장이신 하나님을 찾는 길밖에 없다.
종말을 사는 현대인들에게서 간절한 기도가 상실된 이유는 믿음이 형식화된 것, 그리고 기도를 통한 영혼의 채워짐보다, 각종 세상쾌락으로 텅 빈 영혼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불량식품으로 배를 채우면 엄마가 준비한 집밥을 먹을 소원이 없어지고 구정물을 많이 마시면 영혼의 생수를 들이켤 공간이 없어진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수금, 퉁소, 각종 기구를 만들고 일부다처제를 만들어 빈 영혼을 채웠듯, 하나님을 떠난 이들이 오늘날도 만든 많은 인본주의 불량식품, 구정물에 푹 빠져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하지만 셋의 후예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듯 우리는 만사를 제쳐놓고 기도해야 한다. 그것도 한 맺히게 기도해야 한다. 한 맺힌 기도는 원자폭탄처럼 파괴력이 있다. 그래서 빠른 기도응답을 가져온다. 우리는 한가하게 기도할 상황이 아니다. 영적 한가인(閑暇人)이 되면 안 된다. 한(恨)을 더한 恨加人이 되어야 한다. 한국인은 한의 민족이다. 우리가 축복에 겨워 신앙의 불이 꺼진 한가한 민족이 아니라 정말 한 맺히게 다시 기도하는 진정한 恨국인, 恨민족이 되기를 기도한다. 기독청년, 파이팅~
김갈렙 목사(UBF 세계선교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