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단지가 국민 생명을 위협한다는 논리의 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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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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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북한운동연합 관계자들이 과거 대북전단을 날리던 모습 ©뉴시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2일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의원들이 법안 처리에 반대해 모두 퇴장한 가운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외통위) 전체회의에서 통과된 이 법은 소위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법’이다.

외통위원장을 맡고 있는 더불어 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개정안에는 “대북 전단 살포 등으로 남북합의서를 위반해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킬 우려가 있는 행위를 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은 국회 소통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법’을 여당이 단독으로 통과시킨 것을 비판하며 “이는 헌법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위헌”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탈북민 출신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도 페이스북에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파괴하고, 서해 우리 국민을 사살하고 불태우는 만행까지 저지른 이 와중에 민주당이 북한 김여정의 말 한마디로 대북전단 금지법을 강행 처리해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탈북민 단체들이 북한에 전단지와 물품을 풍선에 띄워 보내자 북한은 우리 정부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하며 압박을 가해 왔다.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대북 전단지 살포를 단속하지 않는 정부를 비난하며 “머지않아 쓸모없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북한은 곧바로 행동에 들어가 6월16일 개성에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전격 폭파했다. 조선중앙방송에서 “쓰레기들과 이를 묵인한 자들의 죗값을 깨깨 받아야 한다는 격노한 민심에 부응하여”라며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의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자 통일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북전단 및 물품을 살포한 탈북민단체들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고 7월17일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큰샘 두 곳의 법인설립 허가를 전격 취소했다.

그 후 헌법상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 등 인권을 침해하는 위법한 처분이라는 지적과 북한당국에 굴종하는 공권력 행사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탈북민단체에 대한 정부의 탄압과 통제도 모자라서 여당이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권리를 제재하는 법안까지 만들자 야당은 정부와 여당이 국민 편인지 북한 편인지 헷갈린다는 조롱 섞인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이에 대해 송영길 외통위원장은 전단지 살포 금지법을 발의한 이유를 “군사 분계선 인근 접경지역 주민들이 생계에 위협을 느낀다고 아우성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일각에서 표현의 자유 제한이라고 비판한 데 대하여는 “표현의 자유는 얼마든지 보장된다. 탈북민들이 광화문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빨갱이라고 욕해도 아무도 잡아가지 않는다”고 했다.

송 의원의 견해는 북한에 전단지를 보내다 북이 이성을 잃고 대포라도 쏘며 응수하면 접경지 주민들이 큰 피해를 본다는 논리로 해석된다. 북은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자극해선 안 된다. 공연히 벌집을 건드렸다가 우리가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취지라면 그나마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그런 취지의 발언이라면 북한을 한반도 평화 통일의 준비된 상대로 인정하고, 미북정상회담을 주선하고, 문 대통령이 나서 국제사회 앞에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다. 그런 상대가 고작 전단지 때문에 도발할 것이라고 예단해 이런 선행 조취를 취하는 자체가 심한 논리의 비약이다. 북한은 탈북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맞서 자기들도 대남전단 살포로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며 문 대통령과 남한 체제를 비난하는 내용의 대남 전단지를 공개한 바가 있다.

또한 여당 측 국회 외통위원장이 “광화문에서 탈북민이 문 대통령을 빨갱이라고 해도 안 잡아 갈 정도로 표현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되고 있다”고 한 언급은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해석한 게 아니라면 적절치 않아 보인다. 박근혜 정권을 촛불에 의해 탄핵시키고 들어선 정부와 여당이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자유를 마음대로 해석할 뿐 아니라 그 권리까지 마음대로 제한할 수 있다고 여기는 그 자신감의 근거가 무엇인지 참으로 놀랍고 궁금하다.

물론 표현의 자유가 무한대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은 ‘실질적 해악을 초래할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는 표현을 규제하는 데서 그쳐야 한다. 그 이상의 규제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 헌법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의 일방독주에 대해 미국 조야에서조차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트위터에서 “좌파 권위주의”라고, 또 대북 제재 전문가인 조슈아 스탠턴 변호사는 “남한의 좌파는 내가 본 가장 권위주의적인 ‘민주주의’ 활동가”라고 꼬집었다.

자유와 인권을 억압당하고 있는 북한 주민을 위해 전단지와 물품을 날려 보내는 일을 정부와 여당이 해악, 또는 위험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매우 희박하고 논리 또한 정연하지 않다. 정부와 여당은 전단지가 우리 국민의 생명을 위협한다고 주장하나 정작 우리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핵무기를 완성한 북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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