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가 보호하는 최대 법익은 태아의 생명권이다. 2019년에 헌법재판소는 형법상 자기낙태죄 등에 대하여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와 동시에 임부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존중을 언급하며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제도적・사회적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정부와 여야는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였고, 낙태 허용 주수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낙태를 감소시킬 수 있는 제도적・사회적 보완 없이는 실질적인 태아의 생명권 보호나 임부의 알권리 및 자기결정권 보호가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정부 개정안의 낙태 허용 절차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를 위한 제도적 보완의 측면에서 상당히 미흡하다.
정부의 모자보건법 입법안에는 임신・출산 종합상담기관이 수행하는 상담에 대한 구체적인 목적이나 기준이 부재하고, 세부 내용을 보건복지부령에 위임하고 있다. 이번 정부의 법안을 기준으로 하면 결국 상담 기관이 발급하는 상담사실 확인서가 낙태 허용문서가 되는 셈인데, 이렇게 중요한 내용을 모두 하위 규정에 위임하는 것은 자의적인 법 집행의 소지가 있어 문제가 될 수 있다. 독일 형법에서는 상담의 목적을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을 지속하게 함으로써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에 있어야 한다.”로 정하며 상담 요건의 세부 내용을 규정하고 있고, 미국의 29개 주에서는 임부가 받는 정보의 세부 내용을 법으로 정하고 있다. 낙태 관련 상담의 목적은 낙태를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낙태를 줄이고 생명을 보호하는 것에 있어야 한다. 또한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고 임부의 건강과 관련된 알권리를 보장하는 차원에서라도 구체적인 상담 및 정보 제공 기준을 법으로 정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번 정부의 입법안은 임신・출산 종합상담기관의 지정권자를 지자체장까지 확대하여 상담 기관을 민간 기관으로 지정할 가능성을 부여하고 있다. 정부안대로라면 상담 내용과 절차 등 상담 기관을 통제할 수 있는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생명을 경시하는 상담 기관들이 무분별하게 운영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이로 인하여 불필요한 낙태를 방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영화 언플랜트(2019)의 실제 주인공인 애비 존슨은 미국 켄터키주 태아 심장박동법 상원 증언에서 미국 최대 낙태 클리닉인 가족계획연맹의 임신 초기(14주까지) 낙태 과정을 증언하였다. 그녀는 낙태 수술 전 의사가 태아 초음파를 보게 되는데 의사가 이를 확인하는 이유는 아이가 얼마나 자랐는지를 보고 단지 임부에게 비용을 청구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의사는 임부에게 낙태의 위험, 대안, 혜택에 대해 전혀 말해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해외 사례의 부작용이 알려진 상황에서, 제도 초기부터 상담 기관의 자의적 운영을 허용한다면 태아의 생명 경시는 물론이고 임부의 알권리 및 자기결정권 또한 침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제도 초기에는 상담 내용과 기관들을 관리하고 통계추출이 필요함을 고려한다면, 제도 정착까지는 상담 기관의 지정 권한을 확대하지 않는 선에서 운영할 필요가 있다.
그 밖에도 정부의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상담자 자격요건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성범죄자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상담자가 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이 경우, 민간 비영리 기관의 왜곡된 상담자에 의하여 얼마든지 상담 내용과 결과가 임의로 결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크다. 또한 관련 의학지식이 부족한 자가 잘못된 상담을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낙태를 줄이고 여성과 태아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상담사의 자격조건을 제시하며 의료기관 종사자로서 상담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제도의 마련이 된 후에 민간 상담이 가능하게 해야 할 것이다.
한편 정부의 개정안은 상담 이후 숙려 기간을 24시간으로 정하고 있는데, 이 또한 지나치게 짧고 형식화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보건복지부의 전국 임신중절 변동 실태조사(2011.10)에 따르면 낙태 경험자 중 의사 또는 의료기관의 상담 후 가진 숙려 기간에 관한 질문에 3일 이내가 28.3%, 3일~1주일 이내가 38%, 1~2주 이내가 19.6%, 2주~1개월 미만이 7.8%, 1개월 이상은 6.4%로 답변이 이루어진 바 있다. 미국의 경우 임부들이 한 번 의사를 다시 만나기 위해 몇 달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의료기관 접근성이 좋아 낙태 출산 및 양육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숙지하는 일정 기간의 숙려 기간을 두더라도 낙태를 결정하는 즉시 임부는 의사를 만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우리나라의 의료 현실을 고려했을 때 24시간처럼 아주 짧은 기간이 아닌 일정 기간의 숙려 기간을 두는 것은 큰 부작용 없이 오히려 임부와 태아의 권리를 보장하기에 적합할 것이다.
또 다른 문제점은 정부의 모자보건법 개정법률안이 낙태의 정의에 약물 낙태를 허용한다는 내용만 포함하고 있고, 어떤 상황에 약물 낙태가 허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은 명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2018)에 따르면 낙태 약물(불법 유통) 사용자의 72%가 약물 낙태에 실패하여 의료기관 등에서 추가로 수술을 시행했다. 또한 해외의 경우와 달리 우리나라는 의료기관에 대한 접근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굳이 여성들을 위험에 방치하면서 약물 낙태를 시급하게 도입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따라서 약물 낙태를 도입하는 데 있어서 그 위험성이나 필요성 등에 대한 의학적, 사실적 논의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이번 정부 개정법률안의 낙태 허용 절차는 사실상 낙태를 손쉽게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으로써, 태아의 생명권을 박탈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모두 한때 태아였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태아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될 것이다. 아무쪼록 임부를 보호하면서도 낙태를 줄이고 태아의 생명권을 최대한 보호할 수 있는 낙태법 개정이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홍윤정(워싱턴 D.C. 변호사, 행동하는프로라이프 생명존중법조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