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예산안 법정 시한을 하루 앞둔 1일 3차 재난지원금 3조원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확보 9000억원 등을 포함한 총 558조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 처리에 합의했다.
당초 정부안에서 감액된 금액까지 포함하면 내년도 '슈퍼 예산안'은 555조8000억원에서 2조2000억원이 순증하게 됐다. 이에 따라 여야는 6년 만에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을 지킬 수 있게 됐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여야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홍근·국민의힘 추경호 간사는 이날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브리핑을 열어 "오는 2일 오후 2시 본회의를 개의해 2021 회계연도 예산안과 세입예산안 부수 안을 처리한다"며 이 같은 예산안 협상 결과를 발표했다.
앞서 민주당 김태년·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예결위 여야 간사들과 회동을 갖고 내년도 예산안과 관련한 막판 쟁점을 조율해 합의안을 마련했다.
합의안에 따르면 여야는 핵심 쟁점이었던 코로나19 재유행에 따른 3차 재난지원금 지급과 코로나19 백신 확보에 필요한 예산을 내년도 예산안에 각각 3조원, 9000억원씩 반영키로 했다.
여기에 ▲서민주거 안정대책 ▲2050 탄소중립(넷제로·Net Zero)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 ▲보육·돌봄 확충 ▲보훈가족·장애인 등 취약계층 소요 등에 필요한 예산까지 포함해 총 7조5000억원을 증액키로 했다.
이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 여야는 기존 예산안에서 우선 순위 조정을 통해 5조3000억원을 감액키로 했다. 이에 따라 내년도 예산안은 정부안보다 2조2000억원 순증했다.
예산 협상 과정에서 민주당은 3조6000억원+알파(α)의 3차 재난지원금과 최대 4400만명분을 가정한 1조3000억원의 코로나19 백신 추가 확보, 서민주거대책, 탄소중립 이행 등 예년에 없던 4대 신규 소요 예산에 보육·보훈·돌봄·노인·장애인·농업 관련 예산과 지역균형발전 예산 증액분을 더해 8조5000억원을 증액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국민의힘은 이보다 큰 11조6000억원의 증액을 요구해 왔다. 재난지원금 3조6000억원을 비롯해 1조원의 코로나19 백신 예산, 초중고생 대상 돌봄지원금 20만원 지급, 보훈수당 인상 등을 포함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본예산 감액 가능 규모는 5조원, 적자국채 발행을 통한 순증 가능 규모는 2조원이라는 입장이어서 여야정 간 간극이 적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에 여야는 정부안의 감액 규모를 늘리는 대신 증액 요구는 최소화함으로써 순증 규모를 2조2000억원 수준으로 억제하는 방식으로 합의를 봤다.
민주당 예결위 간사인 박홍근 의원은 브리핑 뒤 기자들과 만나 "국가적으로 어려운 상황과 국민들의 힘든 여건을 감안해서 최대한으로 감액을 하자는 여야의 공통 인식이 있었다"며 "감액을 최대한 해야 신규로 소요되는 코로나19 피해 계층·업종에 대한 지원도 가능하고 국민들이 바라는 안전한 백신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예산을 확충할 수 있어서 공동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예결위 간사인 추경호 의원도 "마지막 단계에서 가급적 추가적인 순증 없이 최대한 재원을 마련하려고 애썼지만 정부가 당초 편성한 예산을 감액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며 "저희가 당초 생각했던 수준까지는 감액을 이뤄내지 못했지만 민생이 엄중하고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이 시급하다는 차원에서 전향적으로 최종 협상에 임했다"고 전했다.
여야는 예산안의 총량이 합의된 만큼 이날 오후부터 이를 반영한 세부 사업 조정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어 예산안 법정 시한인 오는 2일 오전 중으로 예산명세서(시트) 작업을 끝낸 뒤 예결위 등을 거쳐 오후 본회의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정부안보다 순증액된 2조2000억원의 재원은 상당 부분 적자국채 발행으로 충당될 것으로 보이지만 구체안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추 의원은 "세부 사업에 관해서 증감을 확정하면 채권 발행이 필요한 부분이 있고 그렇지 않고도 (감액된 예산을) 활용하는 부분이 있어서 최종적인 작업이 끝나야 얼마 정도 국채를 발행할지 규모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여야가 감액 규모를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한국판 뉴딜 예산의 일부도 삭감됐다. 그동안 국민의힘은 한국판 뉴딜 관련 예산 21조3000억원의 대폭 삭감을 통한 코로나19 예산 마련을 주장한 반면 민주당은 미래를 위한 예산이기 때문에 삭감을 절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추 의원은 "그 부분(한국판 뉴딜)도 일정 부분 삭감되는데 구체적인 것은 최종안이 나오면 알려주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이번에 확보된 9000억원의 백신 관련 예산과 기존에 편성됐다가 집행되지 않고 남은 3000여억원의 예산을 더하면 1조3000억원의 예산이 확보돼 최대 4400만명분의 코로나19 백신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의원은 "2020년 회계연도에 3561억원 정도의 코로나 백신 관련 예산이 편성돼 있고 내년도 9000억원을 반영한다는 것을 합산하면 1조3000억원 가량 된다"며 "그것은 향후 안정성이 검증된 백신이 개발된다면 최대 4400만명의 국민들께 접종할 물량을 확보할 수 있는 예산이 된다"고 말했다.
여야 합의로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된 3차 재난지원금은 당초 전망대로 선별 지급될 예정이다.
추 의원은 "전국민에게 고르게 일정액을 지급하는 보편적 지급은 아니고 코로나19로 피해입은 업종과 계층에개 선별적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최종적으로 어떻게 지급할지는 정부가 구체적으로 검토할 것이다"라면서도 "그러나 야당 측에서도 지난 4차 추경 때 편성한 2차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들이 지원받은 방향에서 (선별적으로) 하는 게 옳지 않겠냐는 의견을 준 상태"라고 했다.
여야는 이번 합의로 6년 만에 예산안 처리 시한을 지키게 됐다. 국회선진화법 시행 첫 해인 2014년을 제외하고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국회는 5년 연속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을 준수하지 못했다.
박 의원은 "이제 21대 국회가 달라져야 한다는 국민 여망을 받들어 최초로 헌법이 정한 기일에 (예산안을) 처리함으로써 코로나로 힘든 시기에 희망의 선물을 드리게 된 것 아닌가 생각한다"며 "야당 입장에서 예산안 순증은 쉽지 않은 결단일텐데 올해 예산 만큼은 국가적 어려움과 국민들의 힘든 상황을 감안해 여야 마음이 하나로 모아진 결과"라고 말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