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루터의 ‘종교개혁정신’에서 핵심적 영성의 표출
(가) 책의 가치: 위 책은 한글 국문판 책 페이지로서 30페이지 정도분량의 작은 책이지만,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 과정에서 남긴 창조적 저술물 중에서 단연코 ‘종교개혁신앙의 알짬’을 밝혀놓은 불후의 명저로 평가받는다. 이 저술문은 라틴어로 씌여져 1520년 9월엔 긴장과 오해가운데 있었던 교황 레오10세에게 올려졌고, 독일어로 번역된 것을 당시 영주나 시장에게 헌정하는 관례에 따라 쯔비카우(Zwickau)의 헤르만 뮐포르트 시장에게 헌정됐다.
(나) 책의 구조: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전체가 30항(sections)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부(1항-18항)는 ‘그리스도인의 자유함’에 대하여 논하고, 후반부(19항-30항)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봉사’에 대하여 논한다. 이것은 인류의 고전인 『도덕경』에서 전반부가 도론을 다루고, 후반부는 덕론을 다루는 경우와 상통한다. 참 도와 참 덕이 불가분리적 이듯이 그리스도인의 참 자유와 참 사랑봉사가 불가분리적이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인이 자유』의 기본 명제와 그 해설
(가) 제1항의 핵심내용의 인용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리스도가 우리들을 위하여 획득해 주셨고 또 선물로 주신 자유를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가를 우리가 근본적으로 인식하는 것 대하여, 사도 바울이 쓴 여러 가지 기록이 있는데, 나는 그것을 다음 두 명제로서 요약하려고 한다.
그리스도인은 만물에 대해서 자유로운 주인이며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만물을 섬기는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예속 된다.
이 두 명제는,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 9장 19절에서 “나는 자유인 이어서 아무의 종도 아니지만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하여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고 한 것과, 로마서 13장 8절에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시오”라고 한것으로써 명료하다.”
위에서 인용한 루터의 말속에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말하려는 핵심이 압축되어 있다.
(나) 외면상 상호모순적인 위 두 명제의 신앙적 비의와 내적 통일성
1. 마틴 루터는 바울사도의 편지와 시편을 자주 인용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비유를 인용하면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을 이렇게 갈파하려고 했다: ①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신실하심에 대한 전적신뢰가 믿음이다. ②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들의 죄에 대한 용서와 죄의 권세로부터 우리들을 자유하게 하셨다. ③ 그리스도 품성(인격)과의 일치를 통해서 인간존재(나무)가 새롭게 되며, 따라서 새로운 선행(좋은 열매)을 맺는 것은 당연한 순리이다 ④ 행위( 공로신앙)가 믿는 사람을 의롭게 하거나 온전하게 하지 않고,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이 새롭게 된 믿는 자가 선한 행위를 열매로서 맺는 법이다.
2. 마틴 루터는 그리스도가 주신 자유를 자유방임적으로 남용하거나 선한 행위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삐뚤어진 오해자들에게 갈라디아서 2장20절을 인용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3. 마틴 루터는 그리스도인이 믿음생활을 한다고해서 모두 완전한 현실적 성인이 되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육체적 몸을 지닌 실존인간으로서 부족하고 실패하는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계율을 100% 완전하게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정이나 교권이 양심을 억압하는 속박이나, 미신적 신앙과 세상 권력의 통치세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신 축복과 은총’을 무효화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인의 실존은 ‘죄인이면서 의인’이다”라는 역설적 명제가 그것이다.
4.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죄와 약함을 용서받고 탕감받은 자는 스스로 최선을 다해서 기쁜 맘과 감사한 맘으로써 나에게 빚진 자를 탕감하는 자유로운 기쁨을 맛본다.(마18:23-35, 눅7:47-50) 참 그리스도인은 의무나, 계명이거나, 보상의식에서나, 공로쌓기 위해서 선한 일을 하려는 것이 아니고, ‘사랑하는 자유 사랑받는 자유자’로서 그렇게 한다.
5. 마틴 루터가 말하려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누가복음 7장 47절에서 하신 말씀 가운데 도리혀 잘 나타나 있다: “용서 받음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누7:47). 예수일행을 자기 가정의 식탁에 초청한 경건한 바리새인 시몬은 관용을 베푸는 도덕적 인간이었지만,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몸에 붓고 눈물로 예수 발을 적시며 머리털로 씻는 사랑을 할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바리새인 시몬은 많이 용서함 받았다는 자기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은근히 자기는 모범적인 유대인으로서 모세계율 잘 지키는 신앙인이라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6. 오늘의 한국 개신교의 위기도 같은 것이 아닐까? 잘 믿는다고 자부하는 신학자, 목회자, 교회직분 받은 자들은 제법 경건의 모양을 낼 수는 있다. 뜨거운 선교와 전도열심도 있다. 큰 교회를 짓고 운영하는 헌신도 있다. 그러나, 심령 깊은 곳에는 하나님에게 자기의 의로움과 공적을 더 잘 보이려는 공로의식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마침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도덕적 위선자’가 되거나, 아니면 ‘죄책감정’에 평생 시달리는 병든신앙에 떨어진다.
7. 루터의 실존적 체험에 의하면 불교가 가르치는 “참지혜-자비행”의 당위적인 일치론이나 유교의 “수신론과 지행합일설”이 현실적 인간 안에서는 결코 쉽지않고 난파당하는 것을 경험했다. 종교개혁 당시 인간들은 성직자들처럼 ‘도덕적 자기만족과 위선’에 떨어지던지, 일반서민들처럼 ‘도덕적 불완전성에 대한 죄책감과 불안감’에 시달린다는 것을 직시하였다. 그 두가지 부류의 병든 신앙을 극복하려면,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거룩하심에 대한 신앙과 특히 ‘용서의 은총경험’이 필요하고, 그에 응답하는 독특한 ‘그리스도인의 자유’ 곧 ‘사랑하고 섬기는 자유’를 가져온다는 것을 체험하고 깨달았다. 그것이 복음의 선물이자 능력이라고 확신했다. 그 진실을 표현한 결과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명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