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안교회 이상학 목사가 22일 주일예배에서 ‘이런 때 있으시죠?, 다른 사람의 고통에 둔감해지는 것을 느낄 때(호6:6)’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 목사는 “우리가 하나님 사랑하고 섬긴다고 하면서 옆에 있는 사람을 지나칠 때가 종종 생긴다. 신앙은 좋은데 왠지 가슴이 차가워 보이는 경우도 있고, 인간에 대한 애정이 결핍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다”며 “혹시 내 자신도 그렇게 변하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심으로 영광 돌리길 원한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이 지금 내 앞에 보내 주신 그 어떤 사람의 고통에 대해 오히려 둔감해져 있다면 이것은 생각해 볼 부분”이라며 “여기서 ‘둔감해졌다’라는 것은 내가 특정한 잘못된 방향으로 반응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먼저는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저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무언가 하나님께 지은 죄가 있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회개하게 하시기 위해 어려움을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경건한 것 같지만 참된 경건과는 거리가 멀다. 성경에서 욥의 세 친구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우리가 겸손하게 깨어있지 않으면 자주 빠지게 되는 함정”이라고 했다.
또 “두 번째는 ‘한 사람의 고통을 쉽게 보편화해 버리는 것’이다. ‘당신만 그런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어려움을 당한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성숙해져 가는 것이다. 견뎌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라며 “세 번째는 ‘서둘러 하나님의 뜻으로 이해’하라며 그 뜻을 상대방에게 말하는 것이다. ‘지금 하나님이 당신을 훈련시켜서 더 멋지게 쓰시려고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고난에 대해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에는 일정한 신앙에 근거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말 자체는 틀린 것이 없다. 문제는 이 말들이 고난당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만들며 하나님을 오해하게 만들어서 그들의 신앙과 삶을 미궁 속으로 빠져 버리게 만드는 경우들을 생기게 한다”고 했다.
그는 “영어로 인격을 ‘Person’이라고 한다. Person이라는 단어를 어원적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소리를 전하는 통로’라는 뜻이 된다”며 “하나님께서 나를 한 인격을 세웠고, 고통하는 사람 앞으로 보내신다고 했을 때, 하나님이 나를 당신의 소리를 전하는 통로로 사용하신다는 뜻이다. 나를 통해 이 사람에게 말씀하시고 싶은 것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그래서 이 사람이 고통에서 일어나도록 나를 하나님의 소리통으로 사용하시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격”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성숙하게 접근을 함으로 그의(고통 받는 사람) 삶이 조금도 진전되지 못하거나 오히려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게 만들어서 이 사람의 삶과 신앙이 미궁 속에 빠져 버린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속상해 하겠는가”라며 “내가 사람이 당하는 고통에 민감하면서 건강하게 반응하며, 하나님이 보내신 명실상부한 인격이 되고,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선물이 되려면 그 사람의 고통 자체로부터 출발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 사람 안으로 들어가서 지금 그 사람의 고통 그 자체를 들어주고, 머물러 주며, 공감해 주는 것”이라며 “먼저 판단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다. 안으로부터 밖으로의 방법론(Inside out method)이 바로 예수님의 방법이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온 사람들 중 구원 받기 위해 온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실패하신 적이 없다. 그 이유는 주님은 절대로 자기에게 온 사람의 고통을 정죄하거나 판단하신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또 “죄를 지은 사람이 왔을 때도 마찬가지”라며 “주님은 사람을 보실 때 무슨 죄를 지어 질병이 왔는지를 아신다. 그럼에도 ‘네가 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네 죄 때문’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항상 그 사람의 고통 자체에 깊이 귀를 기울여주셨다. 그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주셨으며 일반화, 보편화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받고 있는 유일한 고통으로 받아 주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요한복음 11장 35절에 보면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고 했다. 주님은 누군가의 고통을 들었을 때 해결해 주느냐, 아니냐가 먼저 중요한 것이 아니”라며 “인간이 죄 가운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악한지도 알지만, 죄 가운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도 아시는 것이다. 죄가 만들어낸 온갖 증상으로 인해 스스로를 자행하는 고통이 극심한지를 아신다. 인간이 죄 때문에 만든 아픔에 의해서 이들이 고통당하는 현실에 예수님이 아파하시고 그들의 아픔이 전달되어 왔던 것이다. 이 방법이 성경적으로 ‘긍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했다.
이 목사는 “초대교회 위대한 교부 이레니우스는 ‘하나님은 한 사람의 생명이 꽃을 피울 때 가장 영광을 받으신다’고 말했다. 자신의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될 때 하나님은 가장 영광을 받으신다”며 “하나님이 진정 내 아버지시라면 자녀의 인생이 완전히 피어나는 것을 볼 때 부모가 자기 인생이 영광 받는다고 느끼는 것과 똑같은 일이 성부 하나님께도 일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더 배웠어야 되는데 더 배우지를 못한 것이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신앙이 인간애와 함께 가지 않으면 그 신앙은 참 신앙이 아니”라며 “우리가 주님께 열심을 갖게 되면 자칫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하나님께 경건하려다가 사람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식어져 가는 것이다. 초신자는 빠지지 않는다. 이제 진정 하나님께 열심 있는 사람이 받는 유혹”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 말씀처럼 하나님은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으신다. 제사와 예배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며 “인애와 긍휼이 빠져 있는 제사, 인간 영혼의 떨림에 대해 아파하는 마음이 없는 경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아버지의 마음이 아니다. 예수의 긍휼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지금 이 세상은 서로가 서로를 아프게 하는 세상이다. 다른 사람이 나의 고통에 둔감하듯이 나 또한 다른 사람의 고통에 둔감해지면서 서로에게 지옥을 만들어가는 세상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며 “하나님은 이러한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인은 다르게 살기를 바라신다. 고통당하는 사람이 ‘나’라는 인격을 통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온전히 깨닫게 되는 아름다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