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통을 마주하는 크리스천의 ‘정석’, 김춘근 장로라는 분이 있다. 내가 L.A에서 담임 목회를 할 때 그분이 인도하는 ‘리더십 세미나’에 일주일간 참석한 적이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남달리 고난과 절친인 삶을 살아왔다. 고난 중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그도 인생의 수많은 고통 앞에 좌절할 만했지만, 고통마저 끌어안는 그의 믿음 앞에 고통은 축복으로, 비전으로, 소망으로 변했다.
[2] 그 고통의 어느 정점에서 그는 영적으로 타락한 미국을 청교도 신앙으로 회복시키고 무너진 신앙과 도덕을 재건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꿈을 마음에 품는다. 하나님의 관심을 오롯이 자신의 관심으로 삼은 그를 통해 하나님은 JAMA(Jesus Awakening Movement for America, 북미주 예수 대각성 운동)를 일으키셨다. 37세의 젊은 나이에 김춘근은 간경화로 1년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다.
[3] 사실상 그것이 영혼의 시한부 선고였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엎드려 죄를 뿌리째 뽑는 깊은 회개를 경험한다. 이후 영육이 깨끗이 치유되는 은혜를 받은 그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났다. 1980년부터 16년간 알래스카에서 교수로 활동한 김춘근 교수는 알래스카 주립대학 최우수 교수상 및 최고 영예상을 받았으며, 알래스카 주로부터 경제개발 공헌 특별상을 받았다.
[4] JAMA의 비전과 사명을 이루기 위해 1996년 캘리포니아로 옮겨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국제 경영학 교수로,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Global Business Center) 책임자로 활동했다. 2004년 척수암을 선고받은 그는 힘겨운 투병 생활 가운데 오히려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차세대 글로벌 리더들을 훈련하고 개발하라는 놀라운 하나님의 비전을 받았다. 암이 완치된 후 그는 『와이 미(Why me)?』라는 책을 집필해서 많은 감동을 주었다.
[5]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가 예기치 못한 어려운 고난에 직면했을 때, 그 고난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고통으로 다가올 때 자신도 모르게 내뱉게 되는 한 마디가 있다. ‘Why me?’ 즉 ‘왜 하필이면 저입니까?’이다. 사별, 이혼, 파산, 암진단, 죽음 등 이 모든 것들은 남의 일들이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할 때가 많다. 나 역시 어머니의 소천 이전엔 살아생전 사랑하는 가족 중 한 명과 사별의 슬픔을 맛보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6] 견디기 힘든 고통과 아픔이 남의 일이 아닌 내 일로 경험될 때 견디기 힘들거나 무너져 내리게 되는 이들을 많이 본다. 그럴 때 자동으로 터져 나오는 한 마디가 ‘Why me?’이다.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인으로 거의 모든 매스컴에 소개되고 있는 조 바이든 후보자가 한 살된 딸을 교통사고로 잃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기도하다가, 우연히 아래와 같은 두 컷의 만화(아래 그림)를 보고 다시 일어났다고 한다.
[7] 슬픈 일, 어려운 일, 납득하기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수없이 많은 질문을 내 뱉는다. 심지어 요나처럼 따지고 대들며 불평을 토로하고 원망하는 경우도 있고, 심한 경우엔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질문도 들어야 함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기도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과 소통하는 것이며, 그분의 목소리를 들음에 있다. 조용한 가운데 그분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하고, 때로는 침묵이 그분의 응답인 경우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8] 시내산 떨기나무에 꺼지지 않는 불로 나타나신 하나님이 모세에게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는 명을 내리신다. 그때 모세는 ‘Why me?’라고 거절을 한다. 성경을 찾아 카운트 해보니 무려 다섯 번에 걸쳐서 ‘왜 하필이면 저입니까?’라고 거절하는 모습을 본다. 그때 하나님은 ‘Why not (you)?’(왜 넌 안 되는데?)라시며 마침내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신다. 나 같으면 한두 번 명령해서 듣지 않으면 다른 이를 대체자로 세웠을 거 같다.
[9] 우리 하나님의 인내하심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욥의 경우를 보자.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재산과 열 명의 자식들 다 잃고 자신마저 종기로 고통 당하고 있을 때 내뱉은 아내의 저주스런 말에 대한 욥의 반응은 어땠을까?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
[10] 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욥 2:9-10)
‘Why me?’(왜 하필이면 나인가?)가 아니라 ‘Why not me?’(왜 나는 안 되는가?)란 욥의 답변이 보이는가?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욥 1: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11]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욥 2:3).
하나님이 사탄에게 자랑할 만한 한 인물이라 생각되지 않는가? 오늘 우리 가운데 ‘Why me?’라는 불평과 원망이 터져 나올 상황에 놓인 분은 없는가?
[12] 욥이 그렇게 하나님을 원망해서 절망에 빠져 악의 구렁텅이로 자신을 망치게 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요셉이 ‘Why me?’라 소리치며 자신의 삶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몰아갔다면 어찌 되었을까? ‘Why not me?’ ‘나라고 왜 좋은 일만 경험해야 하나? 알 수 없는 고난과 아픔의 순간이지만 분명 하나님의 자비로운 손길이 합력하여 선으로 열매 맺게 해주실 거야! 그저 그분의 신실한 약속만 믿고 신뢰하며 감사함으로 하루하루를 살자!’
이것이 오늘 우리 모두의 기도내용이 되었으면 좋겠다.
신성욱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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