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북한에 코로나 백신을 제공할 뜻을 밝혔다. 이 장관은 18일 KBS에 출연해 “남북이 치료제와 백신을 서로 협력할 수 있다면, 북한으로서는 코로나 방역 체계로 인해 경제적인 희생을 감수했던 부분들로부터 좀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본다”고 했다.
이 장관의 이날 발언은 남북 관계가 꽉 막혀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를 매개로 대화와 교류의 물꼬를 터보자는 의도에서 나온 발언으로 보인다. 그러나 “(코로나 백신이) 좀 부족하더라도 부족할 때 함께 나누는 것이 더 진짜로 나누는 거라고 생각한다”는 말이 논란을 불러 왔다.
지금 세계 각국은 코로나 백신 확보를 위한 치열한 외교전에 뛰어들고 있다. 일본의 경우만 해도 최근 넉 달 간 코로나 백신 3억병 이상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백신 확보에 있어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통일부 장관이 백신을 북한과 나누겠다고 하니 또 ‘북한 퍼주기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올만하다.
치료백신을 넉넉히 확보해서 북한에 지원해도 큰 문제가 없다면 이런 언급이 논란거리가 될 리 없다. 문제는 전 세계 각국이 벌이고 있는 백신 확보 경쟁에서 우리 정부가 한참 뒤처져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여당 원내대표 출신의 실세 장관인 이인영 장관이 다른 것도 아니고 치료백신이 좀 부족해도 북과 나누겠다는 것이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격이 아니고 뭐냐는 것이다.
정부는 내년 하반기까지 전체 인구의 60%에 해당하는 3,000만 병 백신 확보를 목표로 외교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목표치가 그렇다는 것이지 확보한 물량이 아니다. 국내 코로나19 확산세가 최근 들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치료백신까지 확보하지 못하게 되면 그만큼 국민들의 불안감과 불만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논란이 확산되자 정부 당국자는 “당장 백신을 북한과 나누겠다는 뜻이 아니다”라며 “국내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국내용 백신이나 치료제를 북측에 공급해 줄 순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민간단체도 아니고 주무장관이 “부족할 때 나누는 것이 진짜 나누는 것”이라고 한 것을 두고 북한에 코로나백신 지원을 연말 불우이웃 돕기 쯤으로 혼동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국민들의 속은 이미 부글부글 끓을 대로 끓은 상태다. 코로나19 국내 확산 초기에도 정부가 중국에 마스크와 의료보호장구 등을 대량 지원하는 바람에 정작 우리 국민들은 약국 앞에 길게 줄을 서야 하는 초유의 ‘마스크 대란’ 사태를 겪어야 했다. 결국 국민들의 불만이 폭증하자 정부가 국외 반출을 금지하고 우선 국내 수급의 안정을 꾀하면서 차츰 진정이 되었다.
북한이 우리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지도, 고마워하지도 않는데 국민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어렵게 구한 백신을 나눠주겠다고 쉽게 말하는 것도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북한은 19일 노동신문 논설에서 “없어도 살 수 있는 물자 때문에 국경 밖을 넘보다가 자식들을 죽이겠는가 아니면 버텨 견디면서 자식들을 살리겠는가 하는 운명적인 선택 앞에 서 있다”며 외부 지원을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북한은 아직까지 코로나19 확산세가 어느 정도인지 외부에 공식적으로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북한 당국이 똑같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확진자와 사망자가 없다고 했으나 중국 국경과 맞닿아 있는 북한이 코로나 청정지대라는 말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청와대와 정부는 남북관계의 막힌 물꼬를 트기 위해 문 대통령의 유엔연설 ‘종전선언’과 같은 대북 유화 메시지를 계속해서 내놓고 있다. 바다에 표류중인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신분의 국민을 총격을 가해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운 북의 만행에 대해 책임을 묻는 그 어떤 조치도 없이 먼저 ‘자진월북설’을 제기하며 덮으려 하는 것이나, 이번 이인영 통일부 장관의 코로나 백신 나눔 제안도 그 연장선상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번 뿐 아니라 이전의 모든 제안까지 무관심,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만큼 경제문제와 코로나 사정에 미국 대선 결과까지 내부 사정이 복잡하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문 대통령을 향해 “겁먹은 개, 삶은 소대가리”라는 노골적인 욕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을 수 있는 지구상에 유일한 집단이 정작 누구를 바라보고, 구애를 퍼붓고 있는지 그토록 상황 파악이 안 되는가. 그런 상대를 향한 일편단심 지독한 짝사랑이 한반도의 평화를 가져다 줄 거라 믿는다면 그건 착각이고 망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