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한 혈통
사람들이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대해 간과하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성경이 족보의 책이라는 점이다. 성경은 최초 사람 아담과 하와 창조(창 1:27-28/창 2장 7-25)로부터 시작해 타락으로 인한 이들 부부의 에덴동산 추방 사건(창 3장) 그리고 아담의 자녀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최초 살인 사건을 다룬다(창 4장).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 부부에게 죽은 아벨 대신 새 아들 셋을 주었다(창 4:25-26). 이들 가인과 셋은 각각 자녀를 낳았는데 가인의 아들 이름은 에녹(“시작의 뜻”)이요 셋의 아들 이름은 에노스(“<인간은 구제 불능으로> 치유될 수 없다”는 뜻)였다. 아담이 셋을 낳았을 적 나이가 130세였으니 이미 가인과 셋뿐 아니라 이들이 결혼하여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을 만큼 아담의 다른 후손들도 많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창세기 5장도 아담과 그 아들 셋으로부터 노아와 그 아들 셈과 함과 야벳에 이르는 족보를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성경 초반부는 창세기 1장(27-28절)부터 5장까지 모두 한 혈통으로부터 시작된 인류 족보와 관련된 내용을 기록한 셈이다.
족보의 책 성경
의인 노아 가족까지 이어진 이 족보는 창세기 9-11장에서 홍수 이후 인류 분산 족보를 소개한다. 그리고 신약의 첫 책 마태복음은 아담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족보로 시작하여 누가복음(3장 23-38)에서는 역으로 예수로부터 아담과 하나님까지의 족보를 소개한다. 즉 성경은 인류의 육적 족보로 시작하여 어린양(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책(계 3:5, 13:8, 17:8. 20:12, 20:15, 21:27) 족보로 마치는 “한 책의 계시”인 셈이다.
과거 일부 부흥사들은 성경 신약 첫 책 마태복음을 읽다가 지루한 족보로 시작하는 것을 확인하고 책을 덮어버렸다는 설교를 마치 무슨 무용담처럼 하곤 했다. 성경을 전혀 모르는 무식의 소치였다. 성경이 육적 족보와 영적 족보의 책이기에 사실 족보 설교는 대단히 중요하다. 족보 설교를 잘해야 비로소 성도들은 성경의 진수를 맛볼 수 있게 된다. 한민족은 세상 어느 민족보다 각 성씨별 족보 체계가 잘 정리되어 있는 민족이다. 따라서 우리 민족이 성경의 육적 족보와 영적 족보 속에 담긴 메타포와 직설을 잘 이해하고 복음을 큰 저항 없이 수용한 것은 분명 우연이 아니었다. 사도 바울도 이 인류 족보와 관련하여 설교를 한 적이 있다.
은혜 시대에는 혈통적 이스라엘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소아시아 지방을 선교하던 사도 바울은 어느 날 밤에 마케도니아 사람이 도움을 청하는 환상을 체험한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입었지 않았던가. 복음에는 이스라엘이든 이방인이든 차별이 없다. 바울은 기꺼이 유럽으로 건너와 마케도니아 지경의 첫 성읍 빌립보에 유럽 첫 교회를 세운다. 그리고 바울과 일행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마케도니아의 중심 도시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한 다음 내륙 베뢰아를 지나 다시 바닷가로 내려와 아테네로 입성한다.
아테네서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던 바울은 우상이 가득한 도시 아테네를 보며 크게 격분한다. 그래서 아테네 회당의 유대인들과 경건한 이방인들 그리고 에피큐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의 사람들과 뜨거운 논쟁을 벌였다. 바울이 예수와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했기에 그들은 아레오바고 광장으로 바울을 데리고 가 더 자세한 내용을 듣기를 원했다. 이때 사도 바울은 아레오바고 광장에서 그 유명한 연설을 행한다. 이 진술 가운데는 중요한 몇 가지 핵심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1) 아테네 사람들의 종교성이 많은 점(행 17: 22) (2)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행 17:24-25) (3) 창조주 하나님은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심(17: 26) (4) 우상의 헛됨(17:29) (5) 과거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허물치 아니하셨으나 이제 심판이 선포 되었기에 부활의 주님을 믿고 회개해야 함(17:30-31) 등이다. 이 예수 부활의 복음을 듣고 일부는 조롱하였으나 일부는 믿고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행 17:32-34). 아테네의 첫 신자들이었다. 이제 복음은 혈통적 이스라엘의 것만이 아니었다. 복음 앞에 한 혈통인 우리 인류는 모두 동등하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민족적 차별이 없다. 다만 시간과 땅의 경계를 따라 모든 열방과 열국을 향해 주신 복음의 소명이 있을 뿐이다.
예수님은 모든 족속과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하셨다. 이 말씀을 따라 헬라의 핵심 아테네까지 입성한 사도 바울의 아레오바고 연설은 참으로 명 설교였다. 이후 바울이 분노했을 만큼 우상 도시였던 아테네는 많이 변했다. 제우스, 파르테논 등 신전들은 폐허로 변했고 반면에 오늘날 아테네 학술원 양편으로는 아테네대학 본관이 있어 그리스 역사로 시작하여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벽화가 그려져 있고 다른 편으로는 디오누시오 기념교회가 보인다. 오늘날 아레오바고 언덕에는 사도행전 17장 말씀을 기록한 작은 비가 새겨져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폐허가 된 거대한 신전에는 관심을 보이고 감탄하나 말씀(사도행전 17장)의 돌판은 그저 스치듯 지나갈 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마음이 아프고 바울의 분한 심정이 이해가 갔다.
스키타이, 흉노, 한민족 그리고 인류의 한 혈통
아라랏 산 북부로 진출한 야벳의 아들 마곡의 후손들인 스키타이족은 주로 흑해의 북방과 카스피해 사이에서 정착해 번영한다. 그리고 이들은 동으로 진출하여 유라시아의 지배자가 되었다. 따라서 이들 야벳의 후손들은 성경에서는 마곡, 고대 그리스(폴리스 시대)에서는 스키타이, 중국 진(秦), 한(漢) 시대에는 흉노(匈奴), 수(隨), 당(唐) 시대에는 돌궐(투르크 또는 위그르, 터키), 로마(제정시대)에서는 훈(후니)족으로 불리게 된다.
서울대 명예 교수 신용하 박사는 고조선 문명을 세계 최초 5대 문명의 하나로 보고 주전 108년 고조선이 해체될 때 고조선 서변 국경을 지키던 기마민족 일부가 중앙아시아로 이동해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고 일부가 유럽까지 진출했다는 과감한 주장을 한다. 이들이 바로 고조선 문명의 후예인 훈족(Huns, 곧 흉노)이라는 것이다. 모두 마곡의 후손이라는 성경적 관점에서 보면 한민족과 유라시아 기마민족이 문명의 동질성을 가진다는 것은 옳다. 다만 아라랏과 바벨탑 사건을 인류 분산의 기점으로 여기는 성경적 세계관으로 볼 때 고조선 문명이 유럽으로 갔다는 주장은 좀 더 세밀한 연구와 토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흉노는 인종학적으로는 아시아족에 속하는 황인종 퉁구스(시베리아. 만주. 한반도 사람들을 지칭하는 칭호로 전통적인 동이족을 말함)계열에 속하고, 19세기 이후 발달한 언어학적인 민족계열로 분류하면 몽골어군에 속한다. 한때 고구려의 수도였던 집안현(輯安縣)의 국내성(國內城), 환도성(丸都城) 지역 이름도 통구(通溝)였다. 따라서 이들이 고조선과 친연성을 가진 집단이었음은 분명하다.
흉노가 중국 땅에서 주목 받은 것은 BC 318년 중국 전국시대 제후국인 한(韓)·위(魏)·조(趙)와 함께 진을 공격하고, 그 뒤 중국 땅을 빈번히 침입하면서부터였다. 이에 중국 땅 여러 나라들은 흉노의 침입을 막기 위해 각각 성벽을 쌓았는데, 이것이 훗날 만리장성이 되었다.
흉노족이 강성해지기 시작한 것은 이들이 선우(單于)라 불리는 단일 지도자 밑에서 광범위한 부족연합을 형성한 때부터였다. 고대 중국 삼국지에 나오는 오나라의 왕 손권이 고구려 왕을 ‘흉노의 왕’이라는 의미의 ‘흉노의 선우’라 지칭한 것도 주목된다. 백제는 건국 초기부터 왕실에서 동명성왕의 제사를 지냈을 만큼 일부 부여-고구려 유민들이 세운 나라요 가야도 기마민족의 후손이므로, 고조선과 부여의 멸망 후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로 대표되는 우리 민족의 모든 주류는 국내 신학자들이 보는 셈족 계열이 아니요 서구 신학자들과 창조과학의 원조 헨리 모리스(H. M. Morris)가 말하는 함족도 아니요 북방 야벳 계열이 되는 셈이다. 아무런 근거도 제시 못하면서 우리 민족이 막연히 셈족이라는 이상한 영적 우월주의에 빠지는 것은 결코 바른 신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앞으로 더 많은 신학자들의 연구를 기대해 본다.
우리 민족은 유난히 우리와 다른 외국인들에게 배타적인 나쁜 습성이 과거 있었다. 다문화 사회가 되면서 그런 습성들이 일부 사라진 것은 아주 반가운 현상이다. 기독교인들은 우리 민족이 단일 민족이라는 허구적 세계관과 역사관을 빨리 버려야한다. 우리 민족은 예부터 각 지역에서 유민들이 쏟아져 들어온 역동적 나라였으며, 북방 스키타이 계열의 흉노 뿐 아니라 중국계, 남방계, 몽골계, 베트남계, 일본에서 역유입된 왜(倭)계, 심지어는 아라비아계도 있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혈통을 하나로 만드셨다(행 17:26). 성경적으로 보면 결국 모두 노아의 후손인 셈이다.
마곡 후손들의 미래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순환하며 일정한 진보적 변이를 한다고 보는 것이 세상의 역사관이다. 반면에 기독교 역사관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에 관여하시고 섭리하신다는 성경적 계시를 모토로 한다. 그런데 창조된 세상은 피조물인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총체적 붕괴를 경험했다. 알파요 오메가이신 창조주 하나님은 이 같은 세상 역사를 섭리를 통해 조율하시고 세상 끝날 까지 이끄신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역사에 순환 유사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종말을 향하는 역사의 시간 속에서 타락한 인간과 하나님의 은총 사이에 일어나는 어떤 경험들이라 할 것이다.
하나님은 마곡의 후손들을 통해서도 인류 역사에 관한 일정한 계시의 모델을 보여주신다. 종말론적 관점에서 곡과 마곡은 그리스도와 하나님 백성들의 대적을 상징(계 20:8)한다. 에스겔 38-39장은 마지막 때(38:8) 마곡의 통치자 곡은 아시아와 아프리카(38:5,6; 계20:8)로부터 군사를 모아 메시야의 나라를 침공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그 동기는 사탄의 유혹에 따른(계 20:8-10) 탐욕(겔 38:12)과 교만(계 20:7)이었다. 그 결과, 마곡에 내란이 일어나고(겔 38:21) 하늘로부터 파멸이 임하게 된다(겔 38: 12). 땅은 갈라지고(겔 39:20; 계20:9-11) 하나님의 영광은 드러날 것이다(겔 38:16, 23; 39:7).
육체적 마곡 후손들이 문자적으로 그리스도와 하나님 백성을 대적한다는 것은 복음과 은혜의 관점에서 있을 수 없다. 즉 이 계시의 구체적 의미는 단순한 문자적 해석에 있다기보다 영적이고 상징적인 것이다. 따라서 역사와 현재와 미래를 잘 살펴서 앞으로 더 깊이 연구하여 종말에 대비해야 할 구절들이다.
오히려 고멜처럼 마곡 후손들도 야벳의 장막을 창대케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예언대로 드넓은 유라시아를 차지하고 한때 온 세상을 호령한 민족이 되었다. 하지만 오직 문명사적 창대일 뿐 신앙적 창대는 아니었다. 오늘날 마곡(스키타이)족 후손들은 많은 경우 하나님을 잘 모르고 성경과도 멀어졌으며 복음도 잃어버렸다. 일부는 변질된 신을 섬기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스키타이의 피를 이어 받은 우리 한민족에게 부여된 하나님이 주신 복음의 짐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휴전선으로 꽉 막힌 우리 한반도는 육지 진출로가 차단되었다는 점에서 사실 일본 열도보다도 못한 섬나라나 다를 게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긍휼히 여기셔서 북한 땅에도 복음의 문이 열리고 스키타이족들이 누비던 만주, 원동, 캄차카, 시베리아, 중국 대륙, 유라시아의 중앙아시아, 위구르, 몽골, 내몽골, 동남아, 서남아시아, 심지어 아프리카, 유럽까지 칼과 피가 아닌 십자가의 보혈과 복음을 들고 우리 민족이 달려가는 날이 속히 오기를 소망해본다.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조덕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