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1단계에서 1.5단계로 격상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그간 100명대를 넘나들던 하루 확진자 수가 지난 주말 이후 나흘 연속 200명대로 올라섰다”며 수도권 거리두기 1.5단계 격상의 이유를 설명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1.5단계 조치는 19일 0시부터 적용됐다. 이에 따라 수도권의 교회들은 당장 이번 주일부터 예배 인원을 좌석 수의 50%에서 30%로 다시 줄여야 한다. 모임과 식사도 자제 권고에서 금지로 바뀌게 된다.
정부가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1단계에서 1.5단계로 격상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뒷북 행정이라는 지적과 동시에 별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론이 벌써부터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와 1.5단계의 차이점이 뚜렷하지 않다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회의적으로 보는 이유는 사회적 거리두기 1.5단계 격상으로 크게 달라지는 게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독교 예배 등 종교 행사와 스포츠 경기 입장 인원이 좌석 수 50%에서 30% 이내로 줄어들고, 유치원과 초·중·고 등교 인원이 3분의 2 이내로 제한되는 수준이다. 결국 또 다시 당국이 예배 인원을 줄이고, 그 피해를 고스란히 교회가 떠안게 되는데도 방역에는 별 효과가 없을 거란 얘기다.
반면에 사회적 거리두기 준수 자체가 어려워 고위험군에 속하는 유흥주점 등은 1.5단계 격상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영업이 허용된다. 식당도 마찬가지다. 유흥주점이 문을 닫고, 배달·포장을 제외하고 밤 9시 이후 식당 운영이 중단되려면 하루 확진자가 전국 300명, 수도권 200명을 넘어서는 2단계가 되어야 시행된다니 도무지 납득이 안 된다.
정부와 방역 당국은 집요하게 교회를 통제의 대상으로 삼았다. 특정 교회의 사례를 일반화해 예배 등 모든 종교활동을 통제 아래 두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수도권에서 교회를 통한 감염사례는 전무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교회에서 더 이상 확진자가 나오지 않는데도 사회적 거리두기 1.5단계 격상으로 피해를 떠안아야 하는 곳은 교회다. 철저하게 방역 수칙을 준수하는 수도권의 교회들이 아무 잘못 없이 50%에서 다시 30%로 줄여 예배드려야 하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코로나19 재확산의 조짐은 이미 지난주부터 감지되었다. 이달 들어 3일을 제외하고 모두 세 자리 수를 기록했고, 특히 4일간 연속 200명 대 이상으로 증가하더니 18일에는 마침내 300명 대를 돌파했다. 이는 지난 7일부터 개편된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방역이 완화되고 코로나 사태로 미뤄졌던 각종 모임이 늘어난 영향이라는 게 당국과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부는 이달 초부터 일시 중단했던 여행과 외식을 장려하는 소비구폰을 다시 나눠주면서 국민들을 집밖으로 내보냈다. 국민 모두가 고통을 감내하여 어렵게 두 자리 수로 감소시키고 나면 정부는 그 새를 못 참고 또 다시 방역의 구멍을 만드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일상 곳곳에서 번지고 있는 코로나19 감염은 전문가들의 ‘시기상조’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소비진작’이라는 카드로 모든 걸 덮어버린 정부의 근시안적 정책이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한 국민적 의구심을 자극한 결정적인 장면은 14일 주말 민노총을 비롯한 진보단체들이 주최한 집회였다. 이날 하루에만 수 만 명이 전국 40여 곳에서 집회에 참가했지만 ‘99명 쪼개기 집회’는 합법이라는 이유로 모처럼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넘치도록 허용되었다.
모두의 예상대로 주말을 지나자마자 정세균 총리가 사회적 거리두기 1.5단계 격상 조치를 발표한 것에 대해 뒷말이 많은 것은 이 때문만은 아니다.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을 일부러 진보단체의 집회가 끝난 뒤로 미룬 게 아닌가 하는 비판도 없지 않지만 일부러 그랬다는 증거는 없다.
다만 정부와 방역당국의 대응이 내 편에는 한없이 너그럽고 네 편은 가혹하게 대응하는 ‘방역 편 가르기’가 또다시 도마에 오른 것은 사실이다. 모임을 자제하라고 하면서 여행과 외식을 독려하는 정책이나, 보수집회는 불법으로 엄단하면서 진보집회는 합법화해 주는 이율배반은 이제 정부를 믿고 고통을 감내해온 대다수 국민들의 마음까지 요동치게 하고 있다.
정세균 총리는 사회적 거리두기 1.5단계 격상을 발표하면서 “어렵게 이어온 방역과 일상의 균형이 다시 위기에 처한 만큼 모두 경각심을 높일 때”라며 “방역수칙 준수만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지만 이런 위기를 불러온 책임에 대해선 일언반구 반성의 표현을 찾을 수 없다.
이에 대해 SNS에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병 주고 약주는 식”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와 방역 당국의 대응 능력이 코로나 장기화로 피로감을 호소하는 국민들의 인내심을 자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