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보다 보면, ‘믿는다’라는 단어 대신 ‘보다, 바라보다’라는 표현을 같은 의미로 자주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15). 불뱀에 물렸어도 모세의 놋뱀을 바라본 자는 살았다. 이처럼 인자를 믿는 자도 살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한편 세례 요한은 다음과 같이 설교한 적이 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라고 초대하고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뭐라고 말하는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이처럼 ‘믿다’와 ‘바라보다’가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 될 수있는 이유는,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 영적 시각이기 때문이다.
-다니엘 김, <가야 하는 길>
인간이 신적 정신의 가장 본질적 현상양태다. 자기의식 속에서 사유하는 정신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땅 위에 있는 가장 분명한 신적 정신의 현상양태다. 그는 신적 정신, 곧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헤겔은 하나님이 자연의 돌이나 나무나 짐승에게 자기를 계시하지 않고 인간에게 계시한다고 말한다. 헤겔 자신이 말하는 대로, 하나님이 “어디에나” 계신다면(1968a, 60), 그는 무엇보다 먼저 인간 안에 있을 수밖에 없다.
-김균진, <헤겔의 역사철학>
“그런데 나오미가 어렵사리 돌아오는 인생의 결단을 한 선택은 매우 중요했다. 기근을 피해 모압으로 이주한 것이 많은 사람에게 세속적인 선택이었다고 인식된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그 결말이 빈손으로 사람들을 다 잃고 돌아오는 것이었다면 실패한 귀환이 틀림없다. 하지만 아무리 좌절하고 인생의 실패를 겪었더라도 ‘돌아옴’의 선택은 잘한 결단으로 칭찬받을 만하다. 사람의 눈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한 것 같으나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이 돌아옴이 성공이고 복받은 선택이다. 잃었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원해서 베들레헴 행을 택한 나오미의 결단은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맞닥뜨릴 수 있는 중요한 선택이다. 하나님은 이런 선택의 기로를 우리의 인생 앞에 놓아두실 것이다. 어디로 갈 것인가? 우리의 인생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화의 과정을 밟아가야 하는데, 과연 어떤 방향으로 갈지 우리는 결단해야만 한다.”
-원용일, <우연히, 바로 그때! 하나님의 인도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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