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계속해서 조직신학 구원론의 핵심을 구성하는 구원의 서정(order of salvation, ordo salutis)에 대해서 논의 하고 있다. 그동안 칭의, 성화, 견인, 믿음이라는 주제에 관하여 논의하였고, 오늘은 거듭남(being born again) 또는 중생(regeneration)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당신은 거듭나셨습니까?" "Are you born again?" 복음전도의 현장에서 자주 듣게 되는 말이다. 신학적 용어로는 '중생' (거듭 중, 날생)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우리가 잊지말고 기억해야할 것은 거듭남에 대해서 강조하여 가르치신 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시라는 사실이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 왔을 때 주님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3)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5)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거듭남이라는 말은 다시 태어난다라는 말이므로 어떤 것이 먼저 죽었었음을 전제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먼저 죽었었기에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인가? 성경은 그것이 우리의 영혼이라고 말씀한다. 바울은 에베소서 2장 1절에서 우리가 죄와 허물로 죽었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살리셨다고 말씀한다. 즉 우리의 영혼이 죽었었는데 그 영혼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혼이 죽었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죄로 인하여 우리 영혼의 생명력이 사라지게 되었음을 뜻한다. 그리고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우리의 영적관계 또한 끊어졌음을 의미한다. 죄의 삯이 사망이라는 로마서의 6:23절의 말씀은 죄로 인하여 우리의 영혼의 죽음(spiritual death), 육신의 죽음(physical/biological death), 영원한 죽음(eternal death)이 초래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거듭난다는 것은 죄로 인하여 죽었던 우리의 영혼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뜻한다. 죽은 영혼이 부활하는 것 즉 영적부활(spiritual resurrection)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거듭남과 중생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우리의 죽은 영혼을 다시 살게 하는 분은 누구인가?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죽은 영혼이 죽은 영혼 스스로를 다시 살려낼 수는 없다. 죽은 영혼은 절대 무능력, 전적 무능력의 상태에 있다. 죽은 영혼에게 새로운 생명력을 주셔서 그 영혼을 되살릴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 그래서 주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죽은 영혼을 다시 살려내시는 분은 성령님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듭남과 중생은 오로지 성령의 역사이다.
그런데 여기서 "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러 가지 해석들이 분분하지만 성령은 반드시 말씀과 더불어 역사하시기에, 여기서 "물"은 말씀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야고보는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약 1:18)고 말씀하심으로 우리 영혼의 거듭남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임을 확증하였다. 요컨대 거듭남과 중생은 성령님이 말씀을 사용하여 이루시는 역사요 사건이다.
그렇다면 거듭남과 중생의 사건에서 죄인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이 질문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충돌하고 있다. 하나는 거듭남과 중생의 사건에 앞서는 죄인의 역할은 없다는 주장이다. 즉 성령님이 먼저 주권적으로 죄인에게 다가오셔서 그 죄인의 영혼을 다시 살려내시며, 성령의 능력으로 그 영혼이 다시 살아나게 된 중생인이 회개하고 믿게 된다는 견해이다. 다시 말하면 "중생 - 회개 - 믿음"의 순서라는 것이다.
또 다른 견해는 죄인이 성령의 은혜를 힘입어 먼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그 믿음의 순간에 성령님이 죄인의 영혼을 거듭나고 중생하게 하신다는 견해이다. 다시 말하면 "회개 - 믿음 - 중생"의 순서라는 것이다.
첫 번째 견해는 강경한 개혁주의권에서 널리 수용되는 견해이고, 두 번째 견해는 좀 더 온건한 걔혁주의권에서 널리 주창되는 견해이다. 필자는 첫째의 견해를 정죄하지 않으면서, 둘째의 견해를 수용한다. 어느 견해를 수용하든 바뀔 수 없는 사실은 거듭남과 중생은 전적으로 성령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역사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거듭남과 중생의 결과는 무엇인가? 우리의 영혼이 거듭나고 중생하게 되면 그 결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adoption)되게 된다. 다시 살아난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자녀의 지위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온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의 로열 패밀리(royal family)의 일원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성령님은 우리의 영혼을 거듭나게 하신 후 우리 영혼 안에 내주하시기 시작하신다. 우리 영혼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우리의 죄로 인하여 근심하실지라도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신다. 성령님의 내주는 영원하고 영구적인 내주이다(eternal and permanent indwelling).
그리고 성령은 우리의 영혼을 인치셔서(sealing of the Holy Spirit) 우리의 영혼이 완전히 당신의 소유임을 확정하신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 1:13-14). 그러므로 한번 거듭난 영혼은 결코 다시 죽을 수 없다. 즉 단번에 거듭난 영혼이 다시 죄로 인하여 구원을 잃어버릴 정도로 타락할 수는 없는 것이다. 중생의 단회성이 구원받은 자의 영원한 안전(eternal security)을 보장하는 것이다.
영혼이 거듭날 때 그 영혼은 성숙한 또는 장성한 영혼으로 거듭나는가? 아니면 영적인 어린 아기로 태어나는가? 성경의 여러 증거들을 고려할 때 분명한 것은 영혼이 거듭날 때 성숙하고 장성한 영혼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어린 아기로 태어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처음창조시 아담이 성인으로 창조된 것과 대조된다. 새창조의 사건에서 영적인 어린 아기로 거듭난 영혼은 영혼의 양식을 먹으면서 점점 영적으로 성숙한 자로 자라나는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영적으로 성숙한 단계로 자라가는 과정을 성경은 '성화'라고 부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성도의 중생시 그가 영적인 어린 아기로 태어났기에 지속적인 영적 성숙과 성장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영혼이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육신의 부모가 어린 아기를 낳았을 때에 그 어린 아기가 아직 장성하고 성숙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는 그를 낳아준 부모의 온전한 자녀이다. 그의 자녀권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마찬가지이다. 죄인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그가 영적인 아기로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그는 완전한 하나님의 자녀권을 가진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다. 우리는 이 점에서 결코 흔들리면 안됀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거듭남과 중생에 직결된 사안이다. 믿음으로 중생한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서 적절한 시간과 공간과 여건을 허락하시면 영적 성장과 성숙의 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다. 중생 이후 우리가 얼마나 성장하고 성숙하는 가는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리는 풍성한 삶 즉 영생의 질과 농도 그리고 영원한 새하늘과 새땅에서 누리게 될 상급과 관련되어 있다.
거듭남과 중생의 사건을 통하여 우리는 새로운 생명, 새로운 마음, 새로운 이해력, 새로운 성향, 새로운 소욕을 얻게 되고, 내주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거듭남과 중생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주시는 가장 탁월한 선물들 중의 하나이다.
정성욱 교수(덴버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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