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나왔던 카멀라 헤리스는 최초의 여성 부통령 후보이면서 흑인, 아시아계로 인해 관심을 모았는데요. 그의 아버지는 자메이카, 어머니는 남인도의 타밀나두 브라만 출신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타밀나두의 브라만들을 ‘탐브라힘’(Tambrahm)이라고 하는데요. 북인도의 카쉬미리 브라만과 더불어 유명세를 자랑하는 브라만 그룹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남인도는 데칸고원을 중심으로 이남의 땅을 가리키던 지역적 개념입니다. 이러한 지형적인 조건으로 외부 세계로부터의 침입을 막을 수 있었고, 오랫동안 자신들의 문화를 지켜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원전 4세기경, 북인도에서는 모리아 왕조가 시작되면서 불교의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 왕들은 힌두교의 제사장 그룹인 브라만들이 아니었기에 힌두교를 대체할 만한 다른 종교적 세력을 찾았고 그 결과 불교의 발흥이 일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브라만들이 배척을 당하자 그들은 남인도로 이주를 시작했고, 가장 남단에 있는 타밀나두에 도착하였습니다. 힌두교는 크게 나누어서 보면 쉬바파와 바쉬누파로 나눌 수 있는데요. 원래 타밀나두는 이러한 구분 없이 자신들만의 종교적인 색채를 가지고 있었지만, 북인도로부터 브라만들이 유입하면서 타밀나두 브라만들도 자연스럽게 이러한 분파에 따르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타밀나두 브라만들은 쉬바파와 비쉬누파 외에도 천여 년 전 베단타 철학의 기초를 세운 아디 샹카라의 사상을 따라 베다 시대의 의식을 중요시하는 분파가 있습니다.
오랜 세월 브라만들은 자신들만이 가진 종교의식과 특별한 지식으로 말미암아 특권계층을 형성하였고, 땅을 소유하면서 경제적인 특권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종교와 정치뿐만 아니라 교육, 미디어, 법조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도가 독립하면서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모델은 그동안 정치적으로 억눌려왔던 낮은 카스트 그룹의 정치적 입지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타밀나두는 탐브라힘과 넌브라민(Non-Brahmin, Anti-Brahminism)이라는 두 편으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숫자가 힘이 되기 때문에 타밀 브라만들은 정치적인 특권을 상실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독립 이후 많은 탐브라힘이 해외 이주를 시작하면서 주로 미국에 이민을 가게 되었습니다.
탐브라힘들은 타밀나두 인구의 3%를 형성하는데, 이들 중 약 60만 명이 해외 이주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해리스의 어머니는 1958년 19살의 나이에 다른 외국인 학생들처럼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는데요. 인도의 카스트 전통에 비추어보면, 그녀의 어머니가 유방암 전문가라는 사회적 지위를 확립할 수 있었던 것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그녀의 외할아버지도 타밀나두 고위직 공무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외가 쪽으로 정치적 기반과 교육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가 아프리카-아메리칸과 결혼한 것을 보면 카스트의 전통을 뛰어넘는 자유분방함과 용기가 있었던 여인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해리스는 이런 어머니를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해리스의 외할아버지가 출생한 툴라센드라뿌람이라는 마을에서는 이번 대통령 선거 기간 내내 해리스의 대형사진이 마을 어귀에 놓여 있었는데요. 미국뿐만 아니라 타밀나두에서도 그녀의 부통령 진출은 매우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해리스는 그녀의 숙모에게 이 마을에서 108개의 코코넛을 깨뜨려서 코끼리신 가네쉬의 신전인 바라시디 비나야가르 신전에서 제사를 드려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가네쉬는 쉬바의 아들로서 행운의 신입니다. 이제 미국 정치에서 갈수록 힌두교와 무슬림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세상의 정치는 권력을 잡기 위한 약육강식의 벌판과도 같습니다. 세상에서 외치는 자유와 정의는 진정한 의미에서 화려한 포장을 하고 있는 가짜 명품과도 같습니다. 모든 종교와 언어와 카스트를 뛰어넘는 새로운 세상은 오직 하나님 나라에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세상 정치에서도 공의와 정의를 찾아볼 수 있는 그런 날이 있기를 소망합니다.(yoonsik.lee201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