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약 4개월간 투병하다 10월 9일 4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고 이범 집사 추모 및 가족 위로 예배’가 어제 지구촌교회 분당채플에서 열렸다. 이 집사가 다니던 미국 토렌스조은교회에서 10월 16일 천국환송예배를 진행했고, 한국에서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이동원 목사 부부의 자가격리로 뒤늦게 추모예배를 드렸다. 300명에 가까운 친척들과 지인들만 참석해서 가슴 아프나마 아주 뜻 깊고 감동적인 시간을 가졌다.
[2] 설교를 맡은 홍정길 목사는 “이별은 땅에서는 아프고 슬프고 고통스럽지만 천국에서는 어떨까. 우리 범이가 주님의 영접을 받고 품에 안겨 얼마나 좋아할까 생각했다... 상거가 먼데 달려가 껴안은 아버지의 뜨거운 환영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복되다”고 전했다. 이어서 재학 시절 이범 집사의 지도교수였던 에릭 엔로 한동대 로스쿨(Law school) 국제법률대학원장의 추모사가 있었다.
[3] 대학원장은 과거의 이범 집사를 회고하며 감동 깊은 얘기들을 들려줬다. 그는 이 집사가 로스쿨 학생회장으로서 믿음의 삶이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는지를 온몸으로 가르쳐 준 사랑하는 제자였다고 회상했다. 이 집사가 한동대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한 사실은 매스컴을 통해 잘 알고 있는 바였다. 그런데 이 집사가 한동대 로스쿨에 지원할 당시 합격할 만한 성적이 되지 못해서 겨우 턱걸이로 입학한 사실을 엔로 교수가 처음으로 털어놨다.
[4] 하지만 거기서 공부하는 동안 엄청난 노력과 성실함으로 수석졸업을 하게 됐다는 얘기와 이런 일로 인해 한동대의 입학 기준이 성적이 아니라 사람으로 변경되기까지 했다는 얘기도 마저 소개했다. 뿐만 아니라 그가 한동대 사상 최초로 유명법률회사에 취직함으로 이후로 한동대 로스쿨의 위상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했음도 알려줬다.
[5] 이범 집사가 동료들과 교수들로부터 사랑받고 인기 최고일 정도로, 유머도 많고 온화하고 따뜻한 학생이었음을 여러 명이 증언을 했다. 친구들의 계속되는 증언을 통해서 이범 집사가 얼마나 멋진 삶을 잘 살아왔는지를 확인하면서 우리 모두는 흐르는 눈물을 닦느라 정신이 없었다. 삶의 자취 자취마다 그리스도인다운 아름다운 향기를 남기고 떠난 그가 한없이 존경스럽고 부러웠다.
[6]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에 감동을 줬던 것은 그가 부친의 70주년 기념예배 시 직접 읽었던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를 그의 사촌 동생이 다시 읽은 일이었다. 그때 나는 이 목사님의 칠순을 기념해서 집필한 『이동원 목사의 설교 세계』의 저자로서 그와 단상에 함께 앉아 있었다. 그때 이범 집사가 직접 낭독해서 감동 받았던 내용을 다시 듣게 되니 더욱 가슴이 아팠다. 지금도 지울 수 없는 그 내용이 가슴에 새롭게 새겨진다.
[7] “우리 아버지는 너무 바쁘셔서 충분히 가정적이지 못하셨음을 늘 미안해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미안해하지 마세요. 아버지는 바쁘신 중에도 충분히 가정적이셨어요.... 우리 아버지는 설교하시는 대로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가 증인입니다.” 얼마나 감동적인 내용인지 알 수 없다. ‘부전자전’이라 했던가. ‘그 아버지에 그 아들.’
가족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다.
[8] 사람이 평소 어떻게 살았는지는 장례식 때가 되면 잘 알 수 있다 했는데, 정말 그렇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하루였다. 마지막엔 가족대표로 이범 집사의 부친인 이동원 목사의 인사말이 있었다. 이 목사는 생전의 아들과의 에피소드들을 짧게 소개했다. “여러분의 말처럼 범이는 유머가 많은 친구였다.
[9] 한번은 범이에게 ‘아빠 죽으면 장례식 어떻게 해줄래’라고 물었더니 ‘아빠 부활 믿어? 부활 믿지? 그런데 무슨 걱정이야. 아무 데나 던져도 부활할 것 아니야’라고 했다. 이제 제가 그 말을 거꾸로 하는 시간이 되었다... 43세, 인생의 절정에서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를 기억하며 슬픔의 시간 동안 그의 절정은 언제였을까 생각해 봤다.
[10] (그것은) 학교에서 수석으로 졸업한 것도, 좋은 직장에 취직한 것도 아니다. 어릴 때 게임 중독을 걱정할 정도였는데 나중에 게임회사 변호사가 되더라. 하지만 그것이 절정이 아니라, 어쩌면 투병하는 이 시간이 내 아들의 인생의 절정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암 수술을 했을 때 ‘어떠니’라고 묻자 ‘아빠, 그냥 하루하루 즐기고 감사할 거야’라고 답했다. 아들이 이런 자리에 있는 부모라면 치유와 기적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기도제목을 바꿨다.
[11] ‘하나님과 정말 가까워지는 시간이 되게 해달라’고”라고 했다. 이어 “그가 다니던 LA 교회 담임 목사님이 범이를 만날 때마다 어떠냐고 물으면 일관성 있게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가 떠난 후 남긴 카톡을 보니 마지막으로 올린 아들과 찍은 사진 아래 세 단어 ‘Faith, Hope, Love’(믿음, 소망, 사랑)이 있었다. 믿음, 소망, 사랑이 완성된 그 나라에 도착했다는 사실 때문에 위로받는다.”
[12] 이렇게 전했다. 예배를 마친 후 자식을 앞서 보낸 이 목사님 부부와 목례로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너무도 수척해진 두 분의 모습이 내 마음을 많이 아프게 했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세상에 와서 별 영향 끼치지 못하고 가는 인생도 많은데, 이범 집사는 너무도 많은 영향을 구석구석 군데군데 큰 발자취로 남기고 우리 곁을 먼저 떠났다.
[13] 멋진 아들을 낳아서 기르고 영향 끼치신 이 목사님과 사모님께 한없는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표하고 싶다. 추모예배는 끝이 났다. 이제 남은 건 우리의 몫이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매일 매순간 라틴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를 가슴에 새기고 사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다.
신성욱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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