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복음주의를 생각하다
근래 미국의 역사를 통해서 나타나는 현상 가운데 두드러진 것은 교회가 정치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단편적인 예로서 지난 2016년에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들 수 있다. 당시 개표 결과를 통해서 나타난 놀라운 사실은 트럼프의 당선에 백인 복음주의자들이 압도적으로 공헌을 했다는 것이다. 통계를 보면 가톨릭과 개신교인들은 힐러리보다 트럼프에게 더 많은 표를 주었고 유대교 및 기타 종교인들은 그 반대로 나타났다.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개신교인들 가운데 '거듭났다'는 백인 복음주의 신자들만 따로 뽑아 볼 때 무려 81%가 트럼프를 지지함으로써 트럼프를 당선시키는데 절대적으로 공헌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백인 복음주의자들은 압도적으로 트럼프에게 지지를 보냈을까? 그 이유는 그들이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몇 가지 이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중에도 오바마 정부에서 이루어진 동성 결혼 합법화를 뒤집고 임신 중절을 금지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그를 지지해야 했던 것이다. 2016년 선거 당시 연방 대법원은 보수와 진보 진영이 4:4로 균형을 잡고 있었는데 연방 대법원을 보수적으로 바꾸기 위해서 트럼프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말이다. 이에 백인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인 프랭클린 그레이엄은 트럼프의 당선을 축하하면서 "최근 일어난 가장 중요한 정치적 변화"라고 반겼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이 보여준 압도적인 트럼프 지지의 당위성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그가 그들이 기대하는 만큼 기독교의 가치에 부합한 인물인가 하는 점이다. 유감스럽지만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사실을 보더라도 트럼프의 언행이나 삶의 이력 그리고 정책들이 상당 부분 성경의 가르침에 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당장 그의 성적인 부정행위를 비롯해서 소수 인종을 대하는 태도며 미국만의 이익을 위하겠다는 수많은 정책을 보더라도 그렇다. 그의 정책들 중에는 성경에서 가르치는 핵심인 이웃 사랑과 약자를 보호하는 정신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인 중심의 복음주의자들이 그를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현실은 모순적이지 않을 수 없다.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떠나서라도 이처럼 언행이나 삶의 이력에 있어서 기독교적 가치를 저버린 사람을 아낌없이 응원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인가 하는 말이다. 다른 쪽 사람에 대한 거부감에 따라 이 사람이 아니기에 저 사람이라는 울며 겨자 먹기의 선택을 하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복음의 가치를 전체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한 두 가지 지엽적인 문제에 묶여서 끌려 다니는 복음주의자들의 위험천만한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서 복음적인 선택을 해야 할 소위 '거듭났다'고 고백하는 백인 복음주의자들의 선택이 기껏 편 가르기 정도로 비쳐지는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는 미국 기독교의 민 낯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데 미국 기독교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백인 복음주의가 이처럼 정략적인 선택을 일삼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트럼프의 신앙을 진단하다
한 사람의 신앙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필자는 밖으로 드러나고 있는 사례들을 중심으로 그 사람의 신앙을 진단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6월 흑인이 공권력에 의에 사망하는 사건에 따르는 폭력시위의 와중에 있었던 일을 지금도 기억한다. 당시 트럼프는 최루탄을 사용해서 시위대를 해산시킨 후 성경을 든 채 취재진 앞에 나타나 의도적 연출이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심지어 워싱턴 교구의 메리엔 버드 주교는 CNN 인터뷰에서 이를 두고 대통령은 성경을 배경으로 이용했을 뿐이라고 지적했을 정도이다.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트럼프가 백악관이나 기타 장소에서 사람들로부터 기도를 받는 사진을 보면서 그의 신앙을 나름대로 가늠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누구도 그의 실체적인 신앙의 면면을 아는 바가 없는 실정이다. 사람들은 트럼프가 동성애에 대해 반대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지만 그의 자유분방한 성적 편력을 감안해 볼 때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공개된 장소에서 동성애 문제를 한 번도 거론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낙태문제에 대해서도 유권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생명을 중시한다고 발언했을 뿐 그의 말과 행동에서 생명에 대한 존중심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트럼프는 최근 등장한 미국의 대통령들 가운데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특별히 이렇다 하고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언젠가 성경을 들어 보이면서 자신은 장로교 교인이며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일이 있다. 그때 한 기자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에 대해서 물으니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대답한 바 있다. 이는 예수님이 무제한적인 사랑을 가르치신 내용으로서 복수하라는 것이 아니라 복수를 제한하는 율법인데 그가 얼마나 그 의미를 이해하고 대답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그에게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듯한 오만한 표정, 선동적인 언어 구사, 절제하지 못하는 태도 등 성경의 가르침과는 너무도 거리가 있는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트럼프는 그 무엇으로도 다 채울 수 없는 거대한 자아를 가지고 있어서 무슨 일이든지 창조주보다도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이처럼 어떤 일도 나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의 자아도취에 젖어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역사상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던 지도자들을 보면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고 사람 앞에서도 겸손할 줄 알았는데 과연 트럼프에게서 그러한 신앙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임지석 목사(나성세계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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