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길을 걷다보면 발자국이 남습니다. 길 위에 난 발자국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됩니다. 저도 어릴 때 어른들의 발자국을 따라 눈길을 안전하게 걸어간 경험이 있습니다.
인생에는 연습이 없습니다. 한 번 뿐인 인생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를 따르고, 누군가와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만남은 매우 소중합니다. 좋은 친구와의 만남, 부모와 자녀의 만남, 부부의 만남은 일생의 행복과 불행을 좌우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만남 가운데 지식과 행동이 결정되고 어떤 결과에 도달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만남은 영원을 좌우하는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고 옛 삶을 버립니다. 고집불통의 성격과, 싸우고 다투는 육신의 습관은 깨어지고 하나님의 자녀의 반열에 굳게 설 수 있습니다. 인간의 타락한 본성 속에는 교만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3:4-5)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뱀의 말을 듣고 아담과 하와는 금단의 과일인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그 후로 죄가 인류의 역사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인생은 죄로 인해 사망의 지배를 받고 고통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인생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사,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고 대속의 은혜를 우리에게 입히셨습니다.
인간은 평생을 죄와 불화와 교만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조금 낫다고 생각되면 교만해지고 칭찬을 받으면 쉽게 자신을 드러냅니다. 육신의 소욕을 체험했던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1. 그리스도 안에서 권면하라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빌립보서2:1) 권면이란 잘못된 것, 혹은 잘못되려고 하는 일을 바로 잡아줍니다. 성공을 꿈꾸면서도 하나님을 떠나 세상의 방법으로 사는 사람, 불효하고 불화하는 사람, 어려운 일이 와도 기도와 회개가 없는 사람, 고난에 결박된 사람에게 말씀대로 살라고 권면하여 문제를 해결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개척교회를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신복윤 박사님께서 저에게 “목회는 평생 하는 것이니 젊어서는 힘들어도 열심히 공부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라고 권면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오십이 넘도록 공부했습니다. 여러분은 말씀으로 권면하는 자를 만났습니까? 권면이 필요한 자에게 권면하지 않으면 그는 계속 잘못된 길로 걷게 됩니다.
권면이 바르게 붙잡아 주는 것이라면 사랑의 위로는 감싸 주는 것입니다. 보호하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품어줍니다. 우리 주위에는 자신의 잘못된 행위로 실패한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라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목소리를 낮추고, 편안하게 다가가 주님의 사랑으로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조건 없는 아가페 사랑 안에 이해와 용서가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바른 교제가 있습니다. 말씀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제가 성령의 교제입니다. 교제는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교제는 좋은 것이지만 성령 밖에서 하는 교제는 유익이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인간적인 만남을 가지다가 큰 상처를 입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재정 보증이나 돈 거래는 교회 안에서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인간적인 교제는 많은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령 안에서의 교제를 강조했습니다. 초대교회부터 교회는 성도 간의 교제를 가르쳤습니다. 이 교제는 사도들의 가르침 안에서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긍휼과 자비는 남의 고난을 자기의 고난처럼 여겨 같이 아파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늘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예수님을 기준으로 균형 잡힌 생각과 행동을 해야 아름다운 역사가 나타납니다.
2. 한 마음을 품어라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빌2:2)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 마음도 다르고 생각도 각각 다릅니다. 한 가정의 자녀들도, 평생을 함께 살아온 부부도 마음이 다른 것 때문에 갈등합니다. 교회에 모인 성도들도 각각 주장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했습니다. 복음의 진리 안에서 이기주의를 버리고 주님과 같이 희생해야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1:10) 남녀 간의 사랑도 같은 사랑이어야 합니다. 육적인 사랑도 그럴진대 하물며 영적인 사랑을 육신적으로 이해하면 불행해집니다. 영적인 사랑은 영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선거철이 되면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국회의원 후보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을 만날 때마다 잘될 거라고 희망을 말해줍니다. 그분들의 영혼을 사랑해서 하는 말인데 그 말을 자신을 지지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오해는 갈등과 시비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영적 사랑을 육신의 상황 내에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 성도들은 그분의 뜻을 이해하고 그 뜻에 합하게 살아야 합니다. 자기의 뜻만 주장하면 조화가 깨집니다. 몸 된 교회를 세우고 각자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뜻이 합해지면 행동이 통일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삶을 원하십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2:3) 다툼이나 허영은 신앙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다툼은 서로 다른 의견의 충돌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계보를 만들고 당을 지어 대적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어떤 형편에도 교회 내에서 계보가 만들어져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국회가 아닙니다. 기도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완전한 하나님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허영으로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허영은 겉으로 치장하는 것입니다. 허영대신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겸손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겸손해지면 남이 나보다 나아 보입니다. 그러나 교만은 스스로 높아져 상대를 무시합니다. 어리석고 교만한 이들은 배운 것과 가진 것 등 인간적인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합니다. 교만한 자는 망하지만 겸손한 자에게는 존귀함이 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6:18-19)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보이신 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신 것과 낮아져 섬긴 것입니다.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요13:12-17)
3.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말라
우리나라 초대교회 지도자였던 조만식 장로님이 바쁜 일이 생겨 예배에 늦었습니다. 당시 교회 담임목사는 장로님의 제자였던 주기철 목사님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예배에 늦은 장로님을 보고 뒤편에서 서서 예배를 드리라고 하자 장로님은 뒷자리에 서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목사님이 장로님에게 기도하라고 하자 “하나님 아버지, 저를 용서하여 주소서. 사람을 만나느라 주님을 만나는 시간에 늦게 왔습니다. 또 주의 종이 말씀을 전하는데 늦게 들어와 주의 종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예배드리는데 어려움을 끼쳤습니다. 용서해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겸손히 회개의 기도를 드린 장로님을 보고 성도들은 행복해 했고 목사님도 장로님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겸손은 존경의 길잡이입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의 말대로 겸손히 주님을 섬기고 사람 사랑하는 지혜를 가져야합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2:4) 성도는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일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으며 상대방의 일까지 돌보아주는 사랑의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와 사람을 위한 사랑의 실천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현입니다. 도와주는 자가 큰 자요, 섬기는 자가 큰 자입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부지런합니다. 영적인 일도 부지런한 사람이 잘합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잠6:6) 부지런히 복음으로 권면하여 사람들로 바른 길을 가게하고, 사랑으로 위로하며, 소망을 주며, 말씀으로 하나 되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