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멜족의 창대
고멜족은 주전 8세기 말 경 마대(스키타이)족에 밀려 코카서스(카프카스) 산맥을 넘어 소아시아의 갑바도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들어왔다. 이들은 루디아(Lydia) 왕국과의 전쟁에서 루디아 왕들 가운데 한 사람인 기게스(Gyges, 주전 685-652)의 왕국을 멸망시킨다. 이 루디아 왕국은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 중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교회가 있던 지역이었다. 따라서 많은 고멜의 후손들이 훗날 이들 교회의 성도들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이들 고멜족들은 앗수르와 싸워 앗수르의 북쪽 지경인 우라르투(Urartu)를 점령하였으며 소아시아 동쪽인 브루기아(Phrygia)와 루디아(Lydia) 지방에 안착하고 다시 서쪽 해안 지대 헬라 여러 성읍들과 대치 상태에서 공존하였다.
이들 일부는 오늘날 프랑스와 스페인의 서쪽까지 이주하였다. 수세기 동안, 프랑스에 정착한 고멜의 자손들은 이후, 고올(Gaul)이라 불려 졌으며, 현재도 스페인의 북서쪽은 갈리시아(Galicia)라 불리고 있다. 고멜 자손들(Gomerites) 일부는 바다 건너 오늘날 잉글랜드 웨일즈(Wales) 지방까지 진출하였다. 웨일즈의 역사학자 데이비스의 기록에 의하면, 전통적인 웨일즈 사람들은 고멜의 자손들이 프랑스로부터 영국의 섬으로 와서 정착한 것이고, 그 시기는 대략 대홍수로부터 약 3백년이 지난 후였다고 믿고 있다. 또한 그의 기록에 의하면, 웨일즈의 언어도 Gomeraeg(그들의 조상인 고멜의 이름에서 비롯된)라 불려 졌었다고 한다.
축구 스타 박지성의 대선배요 명콤비였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일명 맨유)의 “전설” 라이언 긱스(웨일즈 축구 감독)가 바로 웨일즈인이었다. 긱스 기념초상화에 박지성 선수(은퇴)가 등장해 화제가 되었을 정도로 긱스는 후배 박지성의 능력을 인정하고 극찬한 적이 있다. 그런 긱스가 왜 잉글랜드 축구국가대표가 되지 않았는지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답은 간단하다. 그는 잉글랜드인이 아닌 고멜의 후손 웨일즈인이었다. 그만큼 잉글랜드와 웨일즈는 전혀 다른 민족이다.
세계 최초 기독교 국가가 된 고멜족 후손 아르메니아
이들 고멜 족의 또 다른 무리는 아르메니아(Armenia) 땅에 정착하였다.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에 따르면,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자신들을 고멜의 세 아들 중 ‘아스그나스(Ashkenaz)와 도갈마(Togarmah)’의 자손들이라 주장한다. 우리 민족이 관습적으로 단군의 자손이라 하듯 이렇게 아르메니아인들도 자신들만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도 아르메니아는 터키와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고대 아르메니아는 지금의 터키 내륙까지 그 지경이 닿아 있었다. 지금의 북경과 만주가 우리의 고조선과 고구려 등의 활동 영역이었던 것과 유사하다.
아르메니아는 기독교선교사(史)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국가다. 이 나라는 12 제자 중 한사람이었던 유다 다대오가 선교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대오의 활약에 대해 다른 제자들보다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 만큼 예수 제자 중 가장 조용한 제자였던 다대오가 세계 최초 기독교 국가가 된 아르메니아의 선교사요 순교자가 되었다. 유다 다대오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많이 진출한 고대 아르메니아 영역이었던 에뎃싸(Edessa)에서 선교하였다. 안트리시안은 아르메니아 교회사인 <예루살렘과 아르메니아>에서 다대오가 8년간(35-43), 이어서 또 다른 예수 제자인 바돌로매가 16년 동안(44-60) 전도한 후 둘 다 아르메니아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다대오는 아르다제에서 50년에, 바돌로매는 데르베드에서 68년 순교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다대오를 아르메니아 독립교회의 첫 사도적 대감독으로 전하고 있다.
인류의 새 역사가 시작된 아라랏산 주변에 사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최초의 기독교 국가를 세웠다는 것은 우연한 일로 보이지 않는다. 또한 이 작은 나라 아르메니아의 교회가 놀랍게도 오늘날 예루살렘의 구(舊) 시가지 4개 구역(the Four Quarters of Jerusalem, 유대·크리스챤·아르메니아·무슬림 쿼터) 가운데 한 쿼터를 맡고 있음도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우연이 아닌 섭리다.
아르메니아 교회의 신앙과 신학
비록 지금은 국토(남한의 3분지 1)와 인구(약 300만)가 그리 크지 않은 국가이나 아르메니아는 우리나라처럼 고유의 언어를 가진 국가다. 초대 교회가 주로 라틴어와 헬라어를 구사하는 교부(신학자)들 중심으로 신학이 이루어진 관계로, 아르메니아는 최초 기독교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고유 언어를 가지고 독립적인 아르메니아정교의 정체성을 유지해오면서 신학의 주류 교회에서 벗어나 있었다.
아르메니아 정교회는 그 중심을 콘스탄티노플이 아닌 수도 예레반 서쪽 도시 에치미아진에 독립적으로 두고 있다. 에치미아진은 세계 각국으로 흩어진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있어 대부분 아르메니아 정교를 믿는 이들 민족의 일체감과 정체감의 상징이 되고 있다. 남쪽으로 멀리 아라랏산이 보이는 이들 에치미아진이나 수도 예레반은 다른 민족과 차별화된 아르메니아인들의 민족과 신앙의 자부심의 대상이다.
아르메니아의 문자는 396년 성 메스로브에 의해 만들어져 아르메니아 정교회의 신학을 주도하였다. 우리나라처럼 해외로 이주한 동포들이 많았기에 아르메니아어로 된 최초의 책이 나온 것도 아르메니아가 아닌 베네치아(1512년)였으며 학교는 모스크바, 파리, 캘커타 등에 세워졌다.
유다 다대오와 바돌로매의 선교에 이어 3세기 말 왕가 출신의 그레고리우스(일명 아르메니아의 사도)가 당시 국왕 트리다테스를 개종 시키며 시작된 아르메니아 기독교는 주후 301년 로마보다도 먼저 아르메니아를 역사상 최초의 기독교 국가로 만들었다.
다만 헬라어와 라틴어를 쓰는 교부들의 영향에서 소외 된 아르메니아 정교회는 제 4차 공의회인 칼케돈회의(451년)에 전란(戰亂)으로 불참한다. 칼케돈회의는 그리스도의 양성론(兩性論)을 정통으로 규정하며 동서 교회의 대립이 깊어진 모임이었다. 칼케돈회의에 불참한 아르메니아정교회는 6세기 이후 반 칼케돈 입장에 선다. 지리적으로 서로마(가톨릭)보다는 콘스탄티노플(동로마)에 가까웠던 아르메니아는 반 칼케돈 입장에 섰으나 전통적으로 단성론의 입장에 선 교회들(시리아, 콥틱 등)과 교류를 하지는 않았다.
인간은 삼위일체도 성육신한 존재도 아닌 피조물이기에 그리스도의 양성교리 논쟁은 쉽게 합의나 결말이 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이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해 그저 부분적으로 알 뿐이다. 동방교회 신자는 모두 이단이요 서방교회(가톨릭) 신자는 정통이라는 이런 단순한 이분법적 근본주의자가 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만일 서방교회가 정통이면 그럼 16세기 시작된 프로테스탄트들은 모두 반역사적, 반성경적, 신학적 반대자들이란 말인가? 필자도 신학자이지만 특정한 신학의 좁은 소견으로 교회를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요 인간의 이성보다 항상 크신 창조주(Deus semper maior)이심을 명심해야 한다.
작지만 특별하고 대단한 신앙의 나라, 아르메니아
고멜의 후손 아르메니아는 작지만 21세기에도 여전히 독특하고 대단한 국가로 남아있다. 구 소련 연방 조지아(구루지아)와 함께 기독교권 국가 가운데 이슬람권 국가(이란, 터키, 아제르바이잔 등)에 둘러 쌓여있는 유일한 나라다. 그래서 늘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높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메니아인은 핵자기공명영상법(MRI)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였으며, 근대적 성형 수술법을 개발한 나라요 우리가 늘 사용하는 손잡이가 하나인 냉·온수 겸용 수도꼭지도 아르메니아인이 발명하였다. 유명한 구 소련의 미그기 개발자도 아르메니아인이요 유대인이나 우리나라처럼 외국에 자국인이 많이 사는 독특한 민족(총 인구 700여 만 명 가운데 400여 만 명이 외국에서 거주)이다.
노아 가족이 도착한 곳이요 수도 예레반에서 멀리 바라다 보이는 아라랏산은 아르메니아인들 마음속에 자리 잡은 신앙의 명산이다. 정말 작지만 평범한 나라는 분명 아니다.
또 다른 고멜 후손들
오늘날 아라랏산 주변을 중심으로 아르메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터키(Turkey)의 지명은 도갈마와 언어적 유사성을 보인다. 그들 중 일부는 독일로도 이주하였다. 아스그나스(Ashkenaz)는 게르마니(독일, Germany)의 히브리어 명칭이다. 어원적으로도 고멜과 게르마니가 연관되어 있음은 분명하다. 이 고멜 후손 게르만에서 종교 개혁의 마르틴 루터가 나왔다. 최초의 기독교 국가, 종교개혁의 인물이 모두 고멜 족에서 나온 셈이다.
놀랍게도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를 유린한 바벨론을 징벌할 열방으로 지금의 아르메니아 지역에 있던 아라랏과 민니(Minni)와 아스그나스 세 나라를 지목한다(렘 51: 27). 이 세 나라는 예레미야 당시에는 훗날 페르시아에 병합된 메대의 속국들이었다(렘 51: 28). 주전 6세기에도 여전히 고멜의 후손 아스그나스의 이름이 아르메니아를 중심으로 잔존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멜의 세 아들 중 또 다른 아들인 리밧(Riphath)에 대해 주후 70년 예루살렘 함락 후 로마로 가서 헬라어로 기록을 남긴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37?-100?)는 파플라고니안(Paphlagonians, 고대 문명발생지 중의 한 곳인 아나톨리아의 북쪽 흑해 연안 지역에 살던 고대 민족)의 선조임을 밝히고 있다. 미 창조연구소(ICR)의 설립자였던 헨리 모리스(H. M. Morris, 1918-2006)는 유럽(Europe)이라는 이름조차 리밧(Riphath)에서 변형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야벳 아들 고멜의 후손들은 오늘날 서아시아, 중앙아시아와 유럽의 일부를 구성하는 주요 민족이 되었다. 야벳의 장자임이 분명한 고멜의 후손들은 하나님이 야벳의 장막을 창대케 하실 거라는 노아의 예언대로 된 것이다(창 9: 27).
고멜족의 미래
종말 계시의 관점에서 보면, 고멜족은 야벳의 다른 아들들(마곡, 메섹, 두발)과 함의 아들들(구스와 붓)의 후손들과 함께 메섹과 두발의 왕으로 불린 곡(Gog)의 군대를 구성하게 된다(겔 38장). 이들 연합세력은 미래의 언젠가 이스라엘을 침략하게 되며, 하나님은 북방에서 쳐들어 온 이들 군대로부터 초자연적 간섭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시고 북방 군대는 파멸될 것이다(겔 39:3). 이들 침략자들의 시체를 매장하는 데만 7개월이 소요되고(겔 39: 11-15) 그들이 사용하던 무기는 자그마치 7년 동안의 연료로 사용될 것이다(겔 39: 9,10).
도대체 이 전쟁의 때는 언제이고 7년 동안 에너지로 사용될 수 있는 무기는 무엇일까? 과거 해석자들은 이 전쟁을 구(舊) 소련과의 핵전쟁으로 보았다. 그럼 지금은 이란과의 핵전쟁을 말할까? 섣불리 단정하기란 쉽지 않다. 이들 전쟁의 모습이 요한계시록에 묘사된 종말의 때 마지막 시기에 있을 대환난의 아마겟돈 전쟁을 연상케 하는 것은 사실이다(39: 17-20; 계 19:17,18). 그러나 동일한 사건에 대한 묘사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또한 문자적 해석이 이들 계시의 유일한 참 된 해석 방식도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이 문제의 논증은 본고의 범위를 넘어서기에 필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기서 생략한다.
에스겔서에 묘사된 전쟁 계시를 통해 우리는 성경이 고멜족 후손들의 미래 모습을 그리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지 않음을 보게 된다. 최초 기독교 국가(아르메니아)와 프로테스탄트(마르틴 루터)가 모두 고멜의 영역에서 일어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오늘날 고멜족을 구성하는 소아시아와 유럽 지역의 모습은 영적으로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성경은 에스겔서에 계시한 전쟁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과 심판과 능력을 목격할 것이고 이스라엘 민족의 포로 생활과 고난도 죄 때문임을 알게 될 것이라 하였다(겔 39: 21-23). 이스라엘이든 고멜족이든 죄에 대한 심판은 동일하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백성들은 이스라엘사람이든 헬라인이든 어떤 이방인일지라도 자기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시는 주님의 은총을 누릴 것이다.
고멜 자손들이 살던 지역은 대부분 초대교회 복음의 진출로와 일치한다.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지금은 복음의 열정이 많이 식어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멜의 후손인 아르메니아인들은 최초의 기독교 국가를 세웠고 지금도 그 어느 민족보다 경건한 신앙의 삶을 유지하고 있음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고멜의 후손들이 다시금 복음의 은총을 누리고, 하나님이 야벳의 후손들에게 셈의 축복을 함께 누리게 하실 거라는 노아의 예언(창 9:27)이 성취되기를 기원한다. <계속>
조덕영(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창조론오픈포럼 공동대표, 조직신학, Th.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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