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인 스데반 집사는 예수님을 구원의 주로 전하다가 예수님을 미워하고, 죽인 이들에 의해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성령을 받고 은혜를 받았던 이들은 박해로 인해 여러 곳으로 흩어져 베니게, 구브로, 안디옥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했습니다. 은혜와 성령을 받았지만 유대인의 우월주의와 율법주의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이방인도 택하고 구원하시며 성령 부으신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성령을 받았더라도 육신적인 가치관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학연, 지연, 혈연, 보수, 진보 등으로 나누지 않고 예수님 안에서 하나 되어야 합니다.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행11:20)
안디옥 교회의 사역을 시작하면서 헬라인에게 예수님을 전파했습니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행11:21)
안디옥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행11:23)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고 권함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건강한 교회의 특징입니다. 굳건한 마음을 갖게 하신 주님이 함께 하시며, 성령의 감동과 성령의 열매가 있는 곳입니다.
1. 안디옥 교회가 미치는 영향이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건강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건강한 성도는 좋은 교회를 만들어갑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행11:24)
선한 인성을 가졌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바나바로 인해 큰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성령의 사람은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좋은 성도는 말씀을 믿고 문제와 부족을 자신에게서 먼저 찾습니다. 우리나라 초대교회 시절 조만식 장로님, 주기철 목사님 같은 분이 계셔서 교회에 큰 부흥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 사자와 곰을 이길 수 있는 실력을 가졌고 그가 왕이 되었을 때 나라가 안정되고 부강했습니다. 이방 나라인 애굽도 야곱의 아들 요셉으로 인하여 흉년을 극복하고 왕권이 굳건해지고 백성이 행복해졌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로 인하여 바울의 복음이 힘을 얻고 성도들이 변화되는 은혜가 충만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2-47)
초대교회는 가르침과 교제와 떡을 떼는 것이 바탕이 되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은 말씀과 순종, 세상으로 가는 훈련을 받았고 바나바도 그 훈련에 참여한 사람입니다. 우리도 바나바와 같이 말씀에 붙들려 있으면 세상의 바람을 이길 수 있습니다.
2. 바나바는 성령의 사람 사울을 청빙했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11:25-26)
바나바는 교회를 위하여 성령받은 사울을 청빙했습니다.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사람입니다. 초기의 한국교회는 성령 받은 목회자에 의해 개척되고 부흥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신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인본에 교회를 양보한 부분이 많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데려온 것은 대단한 결단입니다. 그 당시에 사울은 예수님의 제자를 박해하고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 선 사람으로 소문났었지만 바나바는 과거를 보지 않고 변화된 현재를 보았습니다. 과거에 매이면 현재에서 미래로 갈 수 없습니다. 교회도 가정도 국가도 미래의 청사진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바나바는 이 말씀 그대로 바라보았습니다. 바나바의 가치관으로 살면 현재와 미래에 희망이 있습니다. 바나바는 변화 받은 바울과 함께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말은 안디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그리스도인, 주의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작은 매우 귀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세상의 복지에 선한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선한 영향력은 영혼 구원과 관계가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교회도 시대 속에 건강한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늘의 기업을 가진 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소속적 누림이 있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5:11-12)
영적으로 살면 박해를 받을 수 있지만 그 박해는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상급을 쌓는 것인 줄 알고 기쁨으로 극복하길 바랍니다.
3. 성령은 아가보를 통해 말씀했습니다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행11:27-28)
성령은 시대마다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계시했습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십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7)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꼭 이루어집니다. 성령의 말씀은 논리적, 이성적이지도 않습니다. 과학적이지도 않고, 증명 가능하지 않은 말씀입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고, 홍해수가 갈라지고, 반석에서 샘물이 나는 것은 설명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말씀은 그대로 믿고 준비해야 합니다. 노아처럼 아무 징조가 보이지 않을 때도 방주를 준비해야 합니다. 출애굽 할 때도,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르면 장자를 치는 영이 넘어간다는 말을 그대로 믿고 지키는 자가 보호를 받았습니다. 신분이나 소속에 따라 죽음을 피한 것이 아니라 양의 피를 보고 넘어간 것입니다. 애굽 사람에게는 양의 피도 없고 그 말씀도 듣지 못했으므로 모든 가정의 장자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신분이나 선행을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 때문에 구원받고, 살아나고, 승리하고 병마를 이기고, 환경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요셉의 때에, 바로 왕의 꿈을 통해 애굽에 흉년이 든다고 계시했으나 성령에 감동된 요셉이 그 꿈을 해석함으로 풍년을 잘 관리하고 대 흉년을 극복했습니다. 기도하는 바울 사도는 로마로 재판받으러 갈 때에 이번 항해가 우리 생명에 큰 타격과 손해를 끼칠거라 말했습니다. 그러나 출발을 결정하는 백부장이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들음으로 유라굴로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때뿐 아니라 지금도 성령에 감동되어 말하는 이들의 말을 들으면 행복하고 미래가 있습니다. 바울의 말이 옳았지만 바울은 아무런 힘이 없어서 백부장의 결정에 따라 배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결국 풍랑을 만난 후에야 바울의 말이 옳았음을 깨달았습니다.
힘들어도 진리를 그대로 전하는 복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땀 흘리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나라가 부강해 지려면 학생, 청년들에게 일하는 즐거움을 가르쳐야 합니다. 미래에 세계적인 지도자가 될 수 있는 비전을 심어줘야 합니다. 비전이 아니라 비판만 심어주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제는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집시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기도한 것처럼 환경에 지지 말고 다스리는 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하나님이 시내산 언약으로 주신 구원의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한 주를 승리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