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 복음주의 신학자 제임스 패커가 남긴 신학적 유산(5)

오피니언·칼럼
기고

XI. 자유주의와 현대주의 신학의 도전 속에서 보수적 복음주의 가치를 옹호

1. 자유주의와 현대주의 신학의 도전 속에서 정통 기독교 교리 변호

김영한 박사

패커가 영국 옥스포드에서 공부하고, 교수사역을 하던 당시에는 교계와 신학계는 근본주의, 복음주의, 자유주의로 구분되고 있었다. 영국 복음주의는 반가톨릭적이고 반자유주의적인 태도와 성향을 나타내었다. 영국 복음주의는 자유주의자들에 의해서 근본주의와 더불어 반지성주의와 반계몽주의로 매도(罵倒)되었고, 영국의 신학교와 교회전반적인 신학풍조는 진화론과 고등비평의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 사상이 대세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패커는 청교도적이고 복음주의 전통에 서서 진화론과 고등비평에 대항하면서 성경적 진리를 변호하였다.

크로스웨이 부대표 저스틴 테일러(Justin Taylor)는 「복음주의 연합」(The Gospel Coalition, TGC)에 기고한 글을 통해 패커에 대하여 다음같이 평가했다: “제임스 패커 박사는 자신을 ‘사람들을 옛 진리와 지혜의 길로 되돌아가게 하는 목소리’다.” “그의 전 생애는 ‘새로운 것이 더 진실하고, 최근의 것만이 괜찮고, 모든 변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가고, 모든 최신 단어는 그 주제에 대한 마지막 단어로 환영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저항하는 것이었다.”

2000년 4월 26일 오후2시 캐나다 리전트칼리지에서 패커에게서 신학을 배운 그의 제자요 한인 교포 1.5세인 인터양 목사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은퇴하고 명예교수로 있는 패커는 자신이 젊은 시절인 15세 때 격었던 유니테리안파 목사와의 논쟁을 소개하였다: “열여섯살에 나는 참된 기독교가 무엇인가 진지한 질문에 빠졌다. 그 이유는 유니테리안파 목사들과의 논쟁 때문이었다...유니테리안주의의 교리는 예수의 도덕적 가르침이 세계 역사상 가장 뛰어난 가르침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라 단지 훌륭한 사람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삼위일체가 아니라 단일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타나는 불합리성은 왜 예수의 가르침은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 신약 성경 전체에서 말하는 예수의 신성과 인성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나는 열 다섯살에 그것을 깨달았고, 유니테리안파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제임스 패커 인터뷰 1, 「소금과 빛」, 2000년 7월호 특집. 두란노서원, https://cafe.naver.com/ilumok/16)

패커는 참된 기독교에 대한 질문을 하였고 복음주의자들의 책들을 읽으면서 정통 기독교 신자가 되었고, 옥스포드대에 들어가서 정통 기독교 신앙을 인격적으로 내면화하는 회심을 경험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참된 기독교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독서했다. 나는 C.S. 루이스를 비롯하여 다양한 사람들의 책을 읽었는데 그 저자들이 다 복음주의자는 아니었다. 나는 내가 자란 영국 로스터의 공공 도서관에서 찾은 책들을 읽었다. 옥스포드에 입학했을 때 나는 정통 신앙을 가진 신자였다. 나는 삼위일체, 성육신, 예수의 부활 등 사도신경에 나타난 정통교리를 믿었고 옹호했다. 나는 그것이 진리라고 확신했다. 다만 그 당시에 내게 없었던 것은 구원자 예수와의 인격적 관계였다. 그러다가 옥스포드에 입학한 후 2주가 지났을 때 그런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옥스포드 기독인 연합예배의 말씀을 통해서였다. 이것이 나의 구원의 간증이다.”

2. “근본주의” 용어의 올바른 사용: 기독교 근본진리 믿고 수호함

2000년 4월 제자 목사와 인터뷰에서 피력한 바같이 패커는 1956년 당시 영국의 자유주의자들이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믿는 복음주의자들을 “근본주의”라고 비판한 것에 대하여 근본주의 진리를 변호하였다. 패커는 IVF 졸업생들의 모임에서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믿는 것이 자유주의자들이 비판하는 것 같이 ”좁은 마음인가, 좁은 길인가?"(Narrow Mind or Narrow Way?)라는 강연을 하면서 근본주의 진리를 변호하였다. 이 강연이 성공하자 출간 요청에 응하여 강연 원고를 확장시켜 그의 첫 번째 책 『근본주의와 하나님 말씀』이 저술되었다고 그는 회고하였다. 패커는 근본주의 용어를 부끄러워 하지 않고, 근본주의란 기독교 신자는 기독교의 근본진리인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자유주의자들이 사용하는 근본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패커는 근본주의란 용어를 기독교 근본 진리를 지킴,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받아들인다는 의미에서 근본주의를 해석한다. 그는 1930년대 미국의 신근본주의의 사고방식, 해외 선교와 목회만을 가치있는 것을 여기고 반지성적이고 사회적 이슈에 무관심하며 역사적 교회와 단절하는 독단적인 행동을 취하는 근본주의와는 결별하는 태도를 취했다 : “복음주의는 광범위한 원천에서 유래하고 있다. 한 극단은 분리주의자들, 근본주의자들 가운데 논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이다. 또 다른쪽 극단은 나를 포함해 존 스토트, 해롤드 오켕거 등이 있다. 우리는 교회가 물러받은 역사적 유산이 있다고 주장한다. 교회가 존재해 온 2천년 동안 역사와 우리와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복음주의가 2천년 역사와 단절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일부 근본주의가 있는데 나는 그러한 근본주의에 반대한다.”

여기서 패커가 사용한 근본주의 용어는 오늘날 극단한 이슬람 종파나 이데올로기 집단이 선전하는 의미에서 파당적이고 혐오적이고 전투적이고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사고방식을 지칭하지 않는다. 페커가 변호하는 근본주의는 기독교의 근본진리, 2천년 기독교의 근본 진리인 사도적 복음 진리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것의 핵심은 하나님 말씀인 성경의 영감과 무오성, 삼위일체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진리, 그의 신성, 부활 교리를 믿고 지키는 것이다.

현대 복음주의 좌파의 열린 유신론과 자유주의 신학의 단일신론의 도전 속에서 패커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는 것과 기도하는 것, 하나님과의 연합을 강조했다. 그는 교회를 향해 회개와 거룩을 촉구했으며 성령 안에서의 동행, 자신의 죄와 싸우라고 말했다. 또 성경적 권위를 지키는 데 힘썼다.패커 교수는 자신을 일컬어 ‘사람들을 진리와 지혜의 오래된 길로 부르는 목소리’로 지칭했다. 그는 ‘새로울수록 진실하다’ ‘최근의 것만 괜찮다’는 식의 현대적 의식의 흐름에 역행하고 저항하는 데 일생(一生)의 삶을 바쳤다. 미국 내 보수적인 신학을 지탱하는 남침례교 신학대학원의 교수 앨버트 몰러(R. Albert Mohler Jr.)는 제임스 패커 박사에 대해 “영어를 사용하는 복음주의권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며 “그의 저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18세 그리스도인이 되었던 내게 생명선이 되었다”고 말했다.

XII. 알미니안주의에 대한 칼빈주의의 대화와 협력: 개혁적 복음주의 전통 제시

1. 알미니안주의에 대한 칼빈주의의 대화와 협력

패커는 저서 『알미니우스주의』에서 전통적인 칼빈주의 입장을 독선적으로 고집하기보다는 알미니우스의 입장의 긍정적인 면을 수용하고자 하였다. 그의 저서 『알미니우스주의』는 도르트 400주년의 격에 맞지 않는 소책자이다. 그러나 독자들이 도르트 신조 작성 400주년을 맞아 ‘알미니우스주의’를 명료하게 파악한다면, 그 가치는 대작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칼빈주의자들은 인간의 자유를 강조하는 알미니안주의를 배격하는 신학 자세에 있어서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명료한 이해를 가진 연구자는 많지 않다. 패커는 『알미니우스주의』의 저술 목적에 대해 “칼빈주의와 알미니우스주의가 대립하는 현실에서 분열이 아닌 협력을 위한 것”이라고 제시했다.

즉 대립에서 치유, 은혜와 하나님의 주권으로 당 짓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가 인지해야 할 것은 패커는 영국 국교회 저교회 신학자(Anglican Church of Canada)라는 점이다. 국교회의 저교회 그룹은 국교회(성공회) 안에 있는 좀 더 철저한 개혁을 주장하는 세력이었다.

17-18세기 청교도주의자들은 알미니우스주의에 대해 너무 철저하게 배격했다. 그런데 21세기 국교회 저교회 신학자인 패커는 알미니우스주의와 조건(은혜와 하나님의 주권)에서 협력, 통합을 제언하고 있다.

패커는 그의 저서에서 항변파 알미니우스주의와 웨슬리안 알미니우스주의를 비교했다. 알미니우스주의와 감리교의 일치와 차이를 파악하는 것은 유익할 것이다. 패커는 알미니우스주의의 칭의 개념이 율법주의적 행위 개념이 있음을 제시하면서, 반청교도적·반칼빈주의적 성공회주의자들을 제시했다. 그리고 백스터주의(신율법주의), 아미랄두스주의(수정된 칼빈주의) 등 다양하게 분화된 신학 계통을 제시한다. 패커는 웨슬리를 복음적 알미니우스주의자로 분류한다. 패커의 ‘알미니우스주의’ 이해는 모든 알미니우스와 연결된 분들을 총망라했다. 그리고 인간의 책임을 도외시하려는 칼빈주의의 편협함에 대한 보완책으로, 인간의 자유를 인정하는 알미니우스주의의 긍정적 기능을 제시하고 있다.

2. 개혁적 복음주의

패커는 2000년 인터뷰에서 자신을 “개혁적 복음주의자” (a reformed evangelical)로 자리매김한다: "나는 내 자신이 개혁 복음주의자라고 확신하고 있다. 기독교 역사의 시작에 있어서 신학 및 그리스도인의 헌신에 있어서 개혁적 복음주의자의 위치와 관점이 기독교 역사상 주류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로마 가톨릭교회도 한쪽으로 치우친 면이 있고, 개신교도 한 쪽으로 치우친 면이 있다고 생각하고 개혁적 복음주의(a reformed evangelicalism)가 기독교의 주류라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영적 유산을 이어 받은 신학자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물러받은 기독교 유산에 대해 좀 알고 있다. 그것은 교부시대, 2,3,4,5 세기를 거쳐 중세를 지나 스콜라철학을 거쳐 동방정교회의 유산까지 이어져 왔다. 동방 정교회는 잠간 다른 점이 있긴 하나 주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내가 받은 복음주의 유산은 루터, 칼빈 그리고 서구의 모든 개혁자들로부터 온 것이며 그것이 여러 가지 운동과 다양하게 등장한 신학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개혁적 복음주의”(a reformed evangelicalism)는 좁은 의미의 개혁파가 아니라 종교개혁 전통을 계승하는 개신교 신앙 전통을 의미하고 있다. 패커는 넓은 개혁적 복음주의에는 “복음주의 영국 국교회, 복음주의 장로교, 복음주의 침례교”도 들어간다고 말한다. 그리고 패커는 1950년대 뉴욕과 로스안젤레스의 빌리 그래이험 전도 집회의 성공을 통하여 복음주의자들이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그것은 세계적으로 2-3억에 이르는 복음주의자들이 교단의 제한을 넘어서서 복음을 위하여 합께 협력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1950년대 뉴욕에서 빌리 그래이험의 큰 집회가 열리고 로스안젤레스에서 열렸는데 두 번에 걸친 빌리 그래이험 전도사역의 성공은 복음주의자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를 제시해주었다. 그리고 복음주의자들이 하나의 사명으로 연합하고 신학으로 연합하는 것이 각 교단에서 일하는 것 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복음주의자들이 교단에 대한 관심을 잃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인들이 2-3억 사람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복음주의 교회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일은 1960년대 말에 일어났고 그것이 오늘날에는 표준적인 관습과 생각이 되었다.”

패커는 2000년대 세계 기독교지도가 바뀌고 있고 아시아 선교사들이 구미지역으로 파송되는 역선교사 현상이 일어나며 세계 복음주의 신자들이 5억 이상으로 급증하고 있다고 피력한다: “직업 선교사가 아직도 필요하긴 하지만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는 직업선교사를 받아들이기를 꺼리고 있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텐트 메이커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가 하면 역사가 짧은 지역의 교회에서 역사가 오랜 유럽 세계로 벌써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20세기 초보다는 다른 모습들이다. 모든 것들이 개선되고 있고 복음주의는 50년, 80년, 100년 전보다 더 강해졌다. 하나님은 놀라운 방법으로 복음주의자들을 수적으로 증가시키셨다. 그래서 은사주의와 오순절파 사람들을 포함시킨다면(당연히 포함해야 한다) 개신교 인구들 가운데 복음주의자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 통계적으로 다수라는 것이다. 5억 이상의 복음주의자들이 있고 자유주의자들은 많아야 2억에 불과하다. 아마도 그보다 적을 것이다.”

그리고 패커는 20세기 후반기에 복음주의자들은 단지 교회와 선교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신자의 삶을 실현하는데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20세기 후반부에는 복음주의 공동체 안에서 지적 삶이 회복되었고 복음주의 세계 전체에서도 선교사나 목사가 되는 것 이외에도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이 있다는 자각이 일어났다. 리젠트에서도 사회생활의 모든 측면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새롭게 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즉 그리스도인들을 무장시킴으로써 그들이 각 영역으로 나아가 언행이 일치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 세상사람들에게 도전을 주게 하여 기독교 신앙으로 모든 것을 재정의하고 새롬게 하고자 한다, 온 세상의 복음주의자들이 점차 그러한 생각을 가져가고 있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패커는 교회와 선교에만 정향된 전통적 복음주의의 편협성에서 벗어나 인간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실천하는 루터와 칼빈의 성속일치론을 오늘날 복음주의의 새로운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이미 19세기 후반부와 20세기초 네덜란드의 정통개혁신학자 아브라함의 신칼빈주의(neo-calvinism) 사상과 일치하고 있다. (계속)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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