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년간 트로트를 중심으로 영화 OST, 동요, 로고송 등 다양한 장르에서 1,500여 곡을 작곡한 베테랑 작곡가 박현우 선생(79). 작년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서 신인 트로트 가수로 도전하는 유재석을 위해 15분 만에 트로트곡을 작곡해주며 ‘박토벤’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지금은 작곡 의뢰는 물론 방송 출연, CF, 화보 촬영까지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며 대세 작곡가로서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아내와 ‘사별’한 지 시간이 흐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불과 한 달여 전, 박 선생의 여동생이 적극적으로 주선하여 34년 만에 ‘살아 있던’ 아내 고금주 씨와 해후할 수 있었다. 6개월의 짧은 결혼 생활 가운데 남편에 대한 오해와 상처가 쌓였던 고 씨는 당시 그대로 집을 나와 해외로 떠났고,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된 뒤에는 27년째 알코올중독자, 지적장애인, 지체장애인 등 사회의 소외된 이들을 보살피는 사역을 해왔다. 18일 주일 저녁, 고사라 임마누엘사랑의교회 목사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긴 세월 돌고 돌아 다시 만난 부부
고전무용과 현대무용을 전공한 고 목사는 25세에 무대에서 무용가와 작곡가로 박 선생을 처음 만났다. 18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 차는 물론,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결혼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못 했다고 했다.
“구라파에서 3년간 활동한 후 한국에 와서 공연하면서 박 선생님께 ‘선생님, 저 공연 끝나고 외국으로 떠나요’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때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고, 나이도 있는데 나에게 시집이나 와라’고 하시는 거예요. 별생각 없이 듣고 집에 와서 생각해보는데, 그때도 잘나가는 작곡가로 경제력도 있으셨고 그 당시 잘생기시고 옷도 잘 입으시고… ‘그래, 결혼해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퇴계로 행복예식장에서, 지금은 없어졌지만. 황문평 선생님(작곡가)의 주례로, 길옥윤 작곡가님(패티김 남편)부터 작곡가, 가수, 연예인들이 총출동해서 축하해주었어요.”
그러나 신혼생활은 생각하던 것과는 달랐다. 인기 있는 작곡가 주변엔 곡을 받으려는 여성들이 많았다. 자가용이 많지 않던 때라 박 선생은 가수들을 차로 데려다주곤 했는데, 한번은 립스틱이 묻은 음료수병이 운전석 옆자리에 놓여 있었다. 나이가 어렸고 소심했던 고 목사는 직접 물어보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앓다 결국 말없이 집을 떠났다. 긴 시간이 흘러 남편을 다시 만나 설명을 듣고 난 뒤에야 혼자 오해한 것이었음을 알게 됐다.
“당시에는 더는 살고 싶지 않았어요. 여기(한국)서도 약을(수면제) 먹었었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죽으러 일본에 가서 수면제 수십 알을 먹었는데 죽지 않았어요. 그때 일본에서 색소폰을 하는 선생님을 만나 전도 받았어요. 일본에서 한 미국교회를 갔는데 눈물이 나왔고, 다음 주에 일본순복음교회에 갔는데 또 눈물이 났어요. 하나님의 강권적인 붙드심에 일본에서 전도부장, 구역장까지 하고 한국에 와서 신학을 했습니다.”
충남 서산에 임마누엘기도원을 세우고 임마누엘사랑의교회와 지교회를 개척했다. 장애인 사역을 하면서 부흥강사로 세계 각국을 다녔다. 버클리선교신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도 받았다. 장애인 사역을 27년간이나 이어온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했다.
“일본에서 앉지도 못하고 누워만 있던 때가 있었는데, 병명이 없었어요. 그때는 믿음이 약한데도 ‘일어만 서면, 걸을 수만 있다면 장애인들을 위해 손발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 후로부터 일주일 있다가 앉게 되고, 그다음 또 서게 되고, 그다음 또 걷게 됐어요. 하나님이 무서워서 믿었어요. 또 저를 그렇게 (누워있게만) 만드실까 봐…. 교회에 다니다 보니 하나님을 만났어요. ‘내가 너를 불렀단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후로부터, 그러니까 88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설교하면서 노방전도하고, 교도소, 병원, 장애인 사역을 했습니다. 부흥강사로 미국, 일본에서도 활동하고, 15년간 필리핀 마닐라, 두마게티에서 교회, 학교, 고아원 사역도 하고요.”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32년의 긴 세월이 훌쩍 흘렀다. 몸이 좋지 않아 여생은 하와이에서 목회하기로 결심했다. 하와이 사역 중 알게 된 성도들이 개척을 준비해주겠다 했다. 그 와중에 지난 6월 박현우 선생이 방송에 나와 사별한 지 좀 지났다고 말하는 것을 봤다. 목사니까 전도라도 하고, 예수 안에서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용기를 내 연락했다. “저 알아보겠어요?” “내가 왜 니 목소리를 몰라보겠냐. 어디야?” “저 목사됐어요.”
전도라도 하고 싶어 연락했는데, 시누 부부가 서산까지 찾아와 보고 가더니 서울에 볼일이 있어 올라오면 식사라도 하자고 했다. ‘식사하면 뭐하겠어요. 이미 지나간 추억은 간직하고 끝나렵니다’고 거절했다.
“선생님이 4대 독자이고, 딸 넷에 아들 하나에요. 시누로부터 식사하자는 전화가 세 번이나 왔는데, 목사라는 사람이 계속 거절하면 덕이 안 될 것 같아서 서울에서 볼일 끝나고 간다고 했어요. 갔더니 자기 오빠를 모시고 왔어요. 지난 9월 초에요. 34년 만에 만난 사람이 할 말이 많이 있겠어요. 옆에 앉았는데 제 안경을 보고 ‘눈이 많이 나쁘네’ 한마디 하셨어요. ‘오빠가 식사 대접했으니 제가 차 사겠다’고 했고, 차를 마시고 시간이 늦어지니 시누에게 ‘목사님이니 좋은 호텔 모셔다 달라’고 부탁해 H호텔에 데려다주었어요.”
일주일 후 고사라 목사는 생애 두 번째 프러포즈를 받았다. “‘너는 내가 나이 먹어서 나에게 하나님이 준 선물 같아. 나쁜 짓 안 하고 베풀며 살다 보니 복을 주신 것 같다. 남은 생애를 너를 위해 살아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제가 왜 그냥 집을 나갔는지 이야기하니 자기는 그런 고통이 있는 줄 몰랐고, 이제 생각하니 참 무지했고 무심했던 것 같다고 하셨어요.”
박현우 선생도 아내가 집을 나간 후 거의 10년을 고통 속에 폐인처럼 살았다고 했다. 잠시 만났다가도 곧 각각의 목적지로 갈라지는 길처럼, 두 사람은 부부였지만 지난 34년을 전혀 다른 곳에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다른 길을 걸었다. 그 길에서 박 작곡가는 새 반려자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34년 만에 만난 박 선생은 고 목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는 내 유일한 부인이야.”
60이 넘어 다시 받는 프러포즈는 20대 중반에 받았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꽃을 선물 받고 반지를 맞추고 사무실에 갔을 때, 자신이 좋아한다고 말했던 곡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을 박 선생이 피아노로 연주하며 불러주었다. 집에서 나올 때 결혼식 사진을 모두 찢어 버려 사진이 한 장도 남지 않았다는 고 목사는 19일 웨딩촬영 일정을 잡았다가 박 선생의 방송 스케줄 때문에 28일로 연기했다고 했다. 긴 세월을 돌고 돌아 두 사람이 다시 한 길에서 만났고, 남은 생은 같은 길을 걸어가기로 하나님께 기도했다. 서울 석관동에서 제2의 신혼기를, 그리고 두 사람 모두의 전성기를 기쁨과 감사로 누리고 있었다. 신앙생활은 인근 서울씨티교회(조희서 목사)에서 할 예정이다.
“복음성가 50여 곡 제작, 기도하며 곡 줄 가수 찾고 있어”
고사라 목사는 34년 만에 박현우 선생과 연락하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했다. ‘여기에 새 영혼이 있지 않니. 나는 이 일도 중요하단다’라는 응답을 받았다. “연예인들이 선생님을 위해 기도 많이 하고 있어요. 박 선생님은 친구가 개척교회를 할 때 반주도 하고, 피아노 기증도 했고, M교회를 다니다 바쁘니 쉬고 계셨어요. 그런 와중에 저를 만났어요. 그분을 다시 만나면서 하나님께 ‘그 달란트를 하나님을 위해, 남은 생애를 진짜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릴 수 있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고사라 목사는 “지금 코로나 때문에 다 힘든 가운데 살고 있다”며 “가만히 보니 이분의 달란트와 제 달란트를 가지고 지금의 때 쓰라고 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사무실에 나가니 믿는 사람들이 많이 오는데, 완전히 성령 받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사람들, 지쳐있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잠깐 앉아 믿음의 말씀을 해주니 이분들의 믿음과 신앙의 뿌리가 잡히는 것 같아요. 이쪽에 제가 할 일이 있어서인 것 같아요.”
남편의 훌륭한 면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알렸다. “많이 베푸는 사람이고, 인정받고 존경받는 작곡가에요. 이분 나름으로 간증이 있고 달란트가 많습니다. 악기를 11개 하고, 못하는 음악 장르가 없어요. 그 달란트가 최대한 하나님께 쓰임 받고, 저도 같이 활동하려고 기도하고 있어요.”
고사라 목사는 박 선생이 제작한 복음성가 50여 곡을 줄 가수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고 목사 자신도 복음성가 작사를 하고 있다. 코로나 상황이 끝나면 전처럼 해외에 성령캠프 강사로도 활동할 예정이다. “남은 생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죽기 전에 복음성가이든 어떤 곡이든 명곡을 남기는 것이 우리의 기도제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