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 때에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보내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시어 십자가에서 우리를 구속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마음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의 영을 주사 우리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계획(성부께서 구속을 의도하셨고, 성자께서 이 구속을 유효하게 하셨으며, 성령께서 이것을 적용하심)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구속해 우리가 노예살이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것이었다.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는 영광이 여기에 있다. 우리가 이것을 자유로 경험하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삶에서 하시는 일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길 원하는 것은 그분이 우리의 삶에서 은혜로 하시는 일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을 보내셨기에, 우리는 마음으로 그분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른다. 내가 이곳 외에 있고 싶은 곳이 없는데 어떻게 이것을 노예살이로 보겠는가? 이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자유다.
- 존 파이퍼 외, <복음, 자유를 선포하다>
들판에 아직 퍼내지 않은 진흙이 있었는데 어느날 포클레인이 들어오더니 그 진흙을 파내어 트럭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그 진흙은 큰 컨베이어에 들어가 잘게 부수어졌습니다. 그러자 진흙은 너무나도 아파서 까무러칠 뻔했습니다. 그러더니 다시 큰 떡메가 이리 치고 저리 쳐 진흙은 완전히 혼절했습니다. 겨우 깨어보니 자신이 토기로 만들어져 화로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끝났겠지 생각했지만, 고통은 더 커졌습니다. 유약을 바르고 채색을 하고는 활활 타오르는 불화로 속에 다시 들어갔습니다. 그러고는 이틀 후에 불화로 밖으로 나온 자신을 보고 진흙은 깜짝 놀랐습니다. 몰라보게 아름다워진 자기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들판에 널려있던 보잘것없는 진흙이 아름다운 도자기로 변화된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의 고통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아름답게 변화될 기회입니다.
- 정은주, <염려 아웃!>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고 함께 한 공동체를 이루어 예배를 드리는 것은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교회 말고 이렇게 각계각층이 정기적으로 모여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사례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한 장소에 모여있다고 해서 제대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로마서 15장은 이 문제에 아주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교회안에는 늘 강자와 약자가 있습니다. 이들이 진정으로 하나 되는 길은 강자가 약자의 짐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그 결과 서로가 진정으로 한마음이 되어 하나님을 경배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것이 로마서의 최종 결론입니다.
- 이성호, <예배를 알면 교회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