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적 세계관의 메타네러티브

오피니언·칼럼
기고
류현모 교수

유교가 종교냐 학문이냐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대체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인간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 국가의 통치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루는 학문으로 보는 견해가 강하다. 특히 논어에서 “공자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괴력난신, 즉 초자연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언명을 통해 유교가 무신론임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민간의 정령 신앙적 요소가 유교의 충효사상과 만나 조상의 영에 제사드리는 종교적 색채를 띠게 된 것으로 본다.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인재를 등용하는 과거제도에 유학을 시험과목으로 사용함으로써 국가의 교육과 통치이념을 유교적 세계관으로 통일하는 효과가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 근세 500년을 지속한 조선왕조는 유교적인 국가관과 통치이념 위에 건설되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근세를 지배한 전통적인 세계관은 유교적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전통과 문화라는 이름으로 우리 세계관에 혼합되어 있는 유교적 요소를 기독교 세계관과 분명하게 분별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유교의 형이상학(만물의 기원이나 존재의 근원을 다루는 학문)은 모든 것의 근원 혹은 우주의 시작을 無極而太極 무극(끝없음) 혹은 태극(너무 커서 끝을 알 수 없음)으로 설명한다. 태극기에도 나오는 태극은 움직이거나(動) 멈추면서(靜) 음양이 생기고, 음양의 조화로 만물이 생성한다. 성리학에서는 태극을 만물의 근원 혹은 근본 원리로 생각하여 이(理, principle)로, 여기서 생겨난 자연 만물을 기(氣, master, 우주를 이루는 원질)로 본다.

유교의 우주론은 태극의 원리에 따라 기의 변화로 우주가 생성 되었다고 보는 기의 진화론이다. 태극 외에는 아무 물질도 없는 상태에서 우주가 생겨났다고 본다. 생명도 이런 음양의 조화로 하늘(비인격적)에 의해 생성되는데 하늘은 理, 사람은 氣가 된다. 왕과 신하,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 스승과 제자도 이와 같은 논리에 따라 관계가 성립된다. 기가 이를 따르는 것을 순리로 규정하기 때문에, 권위에 순종하는 유교문화의 논리적 근거가 된다.

나의 문제의 원인은 무엇인가?

유교에서는 理에 의한 氣의 조절이 원활하지 못한 것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다. 하늘과 인간의 관계 혹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理에 의한 氣의 다스림이 원활할 때 관계가 안정된다. 즉 권위에 순종하고 도덕(삼강오륜)과 법질서도 잘 지키면 순리적이고 평화로운 세상, 그에 어긋나면 역리적이고 어지러운 세상이 되는 것이다.

한편 개인의 내면세계에는 4단7정(四端七情)이 있다. 4단은 인간의 본성에 해당하는 4가지 마음인 인의예지(仁義禮智)인데 인은 측은지심(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의는 수오지심(악을 부끄러워하는 마음), 예는 사양지심(사양하는 마음), 지는 시비지심(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다. 7정은 희노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慾)으로 기쁘고, 화나고, 슬프고, 두렵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원하는 감정들을 나타낸다. 개인의 마음은 理에서 유래한 四端(이성)에 의해 氣에서 유래한 七情(감정)이 잘 조절되지 않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고 본다.

그 문제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인간 개인의 내면세계의 질서, 인간과 외부세계와의 관계 문제 등 모든 문제에 理와 氣의 질서가 깨어지는 것이 원인이라면 그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책이 될 것이다. 결국 인간의 선한 본성인 4단을 밝히 드러내어 자신을 닦고,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새롭게 하여 선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유교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 교육의 방법론은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재가, 치국, 평천하 즉 사물을 잘 살펴서, 쌓은 지식을 넓히고, 뜻을 진실하게 세우고, 마음을 바르게 하여, 자신의 몸을 수련하고, 가정을 다스린 후, 나라를 잘 다스려, 세상을 평안하게 하는 것이다. 修己治人 즉 자신을 먼저 수련한 후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군자가 되는 것이다.

결국 나는 어디로 가는가?

유교의 삶과 죽음에 대한 관념을 사생관(死生觀)이라 하는데 죽음을 먼저 앞세우는 것은 모든 일에서 끝을 먼저 생각하는 유교적 사고방식 때문이다. 사후 세계를 따로 설정하지는 않지만, 서양의 인본주의처럼 죽음으로서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손을 통해 자신의 삶이 지속된다고 본다. 따라서 유교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은 가문의 사회적 평판 때문에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손의 번영을 위해 그들의 교육뿐만 아니라 조상의 묏자리도 풍수지리에 따른 명당을 찾으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중용에서는 귀(鬼)는 음의 영, 신(神)은 양의 영이라 했고, 논어에서는 음과 양의 영험한 기운이 귀신이기 때문에 공경하지만 멀리해야 한다고 하였다. 영에 대해 불가지론적 입장이지만 존재를 무시하지 않는다. 기가 모이면 생명이고 기가 흩어지면 죽음이라 한다. 양의 영이 모이면 혼(영혼)이, 음의 영이 모이면 백(육체)이 되어 혼백이 합쳐져 생명이 된다. 반대로 혼백이 흩어지면 죽음이며, 혼은 흩어져서 하늘로, 백은 흩어져서 흙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즉, 삶과 죽음의 관계는 기의 이합집산의 변화일 뿐 완전한 단절은 아니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유교적 세계관은 국가의 통치와 교육철학을 장악하여 삶의 모든 방면에 기준이 될 수 있는 온전한 세계관을 제공한다. 유교가 제공하는 철학적 이념이나 윤리적 지향은 훌륭하다. 그러나 문제의 해결책으로 개개인이 성인군자가 되는 것을 제시하지만, 자신의 힘으로 도달할 수 없는 목표임을 간과하였다.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했는데, 이는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하게 되는 부딪칠 돌에 부딪친 것이다.”라는 로마서의 말씀처럼, 유교도 동일한 문제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다. 유대교나 이슬람교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의를 이루려는 자력종교에는 항상 위선적이고 형식적이고 억압적인 요소가 개입되게 마련임을 자신의 내부 정보를 통해 우리는 알고 있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과 부활의 능력에 힘입어 의를 얻는 방법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좋은 말씀을 모두 모아둔다고 진리는 아니다.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길에서 사람을 벗어나지 못하게 묶어두는 것은 그 어떤 아름다운 모습을 가진 것이라 해도 진리가 아니다.

묵상: 기독교인인 나에게 아직도 남아있는 유교적 삶의 기준은 무엇인가?

류현모(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분자유전학-약리학교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