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신학아카데미가 지난 14일부터 11월 23일까지(총6회) ‘생태신학과 하나님나라’라는 주제로 온라인 강좌를 개최했다. 14일 1주차 강좌를 맡게 된 조영호 교수(안양대)는 ‘기후 위기 시대 신학과 교회’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조 교수는 “21세기 인류는 유례없는 기후 위기의 징후들을 경험하고 있다.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독립적인 쟁점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주요 문제들 속에서 인식되어야 한다”며 “기후변화는 인간의 삶과 생활 방식, 그리고 사고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영향을 받는다. 이런 의미에서 기후변화의 문제는 인간 자신의 문제”라고 했다.
이어 “기후 위기를 ‘인간의 문제’라고 하는 이유는 기후변화의 원인이 인간 자신에게 있을 뿐 아니라, 인간이 창조한 문화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인간은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문화를 창조했으며, 자연을 새로운 창조를 위한 원자재로 사용했다. 그리고 인간은 근대 이후 ‘진보’라는 깃발 아래 자연을 착취하고 남용하여 창조질서를 파괴했다. 이 과정에서 기후 위기는 진보의 막다른 골목에서 만난 불청객이다. 이런 점에서 기후 위기는 더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문화적인 현상’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불어 “기후 위기는 경제적 손실과 인명 손실을 야기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과정에서 1차적인 피해 대상이 가난한 국가들이라는 데 있다”며 “전 세계의 굶주리는 인구 15억 명과 식수 부족에 시달리는 13억 명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식량 가격 폭등과 물 부족 현상일 것이다. 결국 기후변화는 ‘환경 재난’을 통해 ‘환경 난민’을 발생시킴으로써 사회적, 국제적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이처럼 기후변화는 생태정의의 문제와 평화의 문제를 야기한다”고 했다.
그는 “간혹 우리는 기후와 날씨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날씨’는 매일 우리가 경험하는 기온, 바람, 비 등의 대기 상태를 말하며, ‘기후’는 수십 년 동안 한 지역의 날씨를 평균화한 것”이라며 “기후변화는 수십 년 또는 그 이상 지속되는 통계적으로 중요한 기후의 변동을 의미합니다. 기후변화는 날씨의 변화를 말하지 않는다. 기후변화는 날씨의 변화를 포함하지만, 날씨로 국한되는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기후변화는 날씨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했다.
이어 “기후 위기의 현상은 크게 두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며 “지구 평균기온 상승과 해수면의 상승을 들 수 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만약에 기후문제가 인간 삶의 문제이고 인간 문화의 문제라면, 그리고 만약에 인간 문화가 산업 사회의 정신 혹은 근대적 기획을 자신의 근거로 삼고 있다면, 오늘의 신학은 기후 변화라는 문제 상황으로부터 나오는 인간의 질문을 신학적 물음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왜냐하면 신학과 인간 문화는 별개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기후변화를 신학의 과제로 삼을 때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물음은 ‘인간은 누구인가.’라는 인간론의 문제이다. 그러나 기후 변화는 신학에게 인간론적 문제만을 제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며 “이것은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신론적 문제를 제기한다. 이 문제의 중심적 주제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의 관계에 대한 문제이다 그리고 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 할 것인가. 즉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와 하나님과 세계의 관계 그리고 세계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이해의 문제도 새롭게 제기된다”고 했다.
조 교수는 “기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학이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사람됨 혹은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인 됨을 주장하는 것”이라며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 속에서 본다는 것을 기억하고 오직 예수를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한다”고 했다.
그리고 “성육신 하신 하나님, 가난한 자 중의 가난한 자로서, 고난 받는 자들 중의 고난 받는 자로서 우리에게 생명과 평화를 선물하신 그 분 예수, 우리는 예수의 십자가를 기억해야 한다”며 “예수는 온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죽으셨다. 예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과 연대하면서 사는 것이 때로는 희생과 수난이라고 해도 유일한 생명의 길이라는 것을 그리고 온 생명과 함께 살아가는 길임을 제시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후변화는 인간의 문화 혹은 인간 삶의 양식의 문제임과 동시에 그것의 변화를 의미한다”며 “따라서 기후변화를 완화 혹은 해결하기 위한 인간적 활동 역시 새로운 문화적 이해와 윤리적 이해에 의해 규정되어야 한다. 즉 기후변화와 그것으로 인해 야기될 생태정의의 문제는 문화적인 동시에 윤리적이다. 기후변화를 완화하거나 적응하기 위한 인간적 활동은 결국 근대적 프로젝트에 대항하는 새로운 문화적·윤리적 프로젝트로 정의될 수 있다”고 했다.
더불어 “소비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무한경쟁과 경제성장을 추구하던 경제적 인간은 더는 경제성장 중심의 사회 체계를 유지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며 “오늘 인류가 경험하는 위기 곧 인간 보편의 문제이자 전 지구적 문제인 기후변화를 통해 우리는 지속 가능한 발전의 가능성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지속 가능성’은 기후변화와 관련해서 우리의 생활양식, 사회, 그리고 경제체제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핵심이자 윤리의 중심 개념이다. 지속 가능성은 생태 보호, 빈곤퇴치를 위한 경제성장, 그리고 사회적 정의와 통합을 말한다. 그리고 미래 세대에서도 지속 가능해야 한다는 ‘간 세대적 윤리’를 추구한다. 그러므로 기후변화가 윤리에 요청하는 주제는 크게 세 가지로, 즉 생태 정의, 지속 가능성, 간 세대적 윤리”라고 했다.
그는 “교회의 실천적 사회 원칙은 사랑, 정의, 평화 그리고 생명을 새로운 사회 윤리의 개념으로 수용하면서 ‘공공선’을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공공선은 기후 위기 시대에서 인류 전체와 미래 세대에 영향을 미치는 생태 보존과 ‘공공복지’를 중요한 범주로 한다. 즉, 공공선은 교회의 복음적 공공성을 기초하는 개념을 말한다”며 “이것은 정확히 ‘연대성’이라는 개념 아래에서 묘사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생태학적 사회 윤리는 오늘날 사회적 관계의 문제와 생태학적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즉, 생태적 사회 윤리는 창조 세계로서의 자연 문제와 사회 문제를 결합한다”며 “기후 위기가 교회에 요청하는 것은 새로운 생활양식, 즉 조율된 삶의 방식이다. 그것은 생명에 대한 긍정과 공동체적 삶”이라고 덧붙였다.
또 “우리는 우리의 시간과 공간이 무엇이든 하나님을 벗어난 시간과 공간에서 존재할 수 없다”며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인간이 책임적 존재임을 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창조 세계를 단지 인간에게 그리고 개인에게만 제공하시는 은혜가 아니라 온 생명과 공동체에게 제공하시는 ‘은혜의 선물’이라는 것”이라며 “따라서 온 생명은 생명의 그물망, 즉 창조 세계 안에서 상호 연관되어 있으며 생명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 “기후 위기 시대 교회는 구원의 목적을 인간의 개인적 영혼의 구원 뿐 만 아니라 온 생명의 구원과 생명 공동체의 구원을 노래해야 한다”며 “교회가 새롭게 인식하는 온 생명과 생명 공동체의 구원은 오늘 세대와 미래 세대를 포괄하는 지속 가능한 생명 공동체와 사랑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교회는 공동체성을 회복해야 하고 개인적 문제 뿐 아니라 사회적 공공성의 영역에서도 우리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 우리의 신앙이 공론장에서 소통할 수 있는 대화하는 신앙이 되고 대중의 다원주의에 대한 기호와 윤리적 충동을 조율하고 새로운 생태적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 오늘을 새롭게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며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다원주의 사회, 혹은 유동하는 근대성 안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앙은 기독교적 가치를 주장할 때, 개인의 도덕적 실천뿐 아니라 공공선으로 향한 사회적 헌신과 생체적 책임을 지니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기후 위기가 생명 위기의 세계화를 초래하고 있다. 이 시기 교회는 생명과 삶의 가치를 물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인간의 죄, 즉 인간의 오만과 탐욕에 의해 파멸되어 가는 창조 세계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 교회는 이야기해야 한다”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말하는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우리 이웃들의 생명, 놀이, 공간인 이 땅과 창조 세계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환경과 개발 문제는 창조신학의 이해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창조와 화해에 대한 갈망을 약속해야 한다. 상호 인식과 생명에 대한 긍정 그리고 인간에 대한 긍정 또한 필요하다”며 “화해란 미래에도 인간이 존재하고 생명이 창조 세계를 송영하는 것을 포함해야 한다. 이것은 기후 위기에 의해 위협받는 창조 세계에 대한 윤리적인 동시에 영적인 교회의 과제이자 기회”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후 위기 시대, 교회에게 요구되는 정치적 활동은 반정치적 정치 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며 “반 정치적 정치란 기후 위기 시대 교회는 공론의 장에서 생태 윤리의 문제뿐만 아니라 생태 정치적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이어 “하나님의 꿈은 정의와 공의다. 하나님이 꿈꾸는 정의는 분배적 정의이다. 분배 정의에 대한 하나님의 꿈은 세상을 창조에 근거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 세계, 즉 이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라며 “하나님이 꿈꾸는 정의로서의 분배 정의는 더불어 나누며 살아가는 사회, 지속 가능한 사회를 의미한다”고 했다.
아울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꿈을 꾸는 사람이다. 따라서 교회와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 물론 더 나은 세상이 더 나은 삶을 자동으로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며 “그러나 최소한 더 나은 삶을 창조해야 더 나은 세상이 조성될 수는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반 정치적 정치인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