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 오전 10시에 진행되는 ‘탈북민센터 북한구원 화요모임’에서 22일 연모세 전도사(탈북민, 탈북민센터)가 간증을 했다. 연모세 전도사는 “저는 함경남도 리원군이라는 곳에서 1980년에 출생했다. 아버지는 제가 12살 때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저희 어머니가 형제를 어렵게 키웠다”며 “이모부가 고난의 행군때 중국에 밀수를 하다가 고문치사로 돌아가셨다. 그때 젊은 혈기에 견디기 힘들어 술 3병을 마시고 보위부 간부를 구타했다. 죽지 않을 정도로 때리고 그집 살림을 다 부시고 나오다 체포됐다. 그래서 감옥에 갔다”고 했다.
이어 “복수에 의한 구타사건인데, 돈이 없다보니 강도죄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인간 이하의 천대를 받았다. 2001년 9월 23일 함경북도 해령시 22호 교화소에 도착했다. 강제노역을 하는데 석달 만에 영양실조가 왔다. 영양실조 3도가 됐다. 먹을 게 없어서 화장실에 온 쥐를 잡아먹으려고 했다. 한 번은 옥수수를 운반하는 일이 있었는데 몰래 옥수수를 훔칠 수 있어 감사했다. 몰래 먹다가 경비병에 들켰다. 발로 밟히고 개머리판으로 맞으면서도 옥수수를 씹어 삼켰다”며 “그 해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거기서 본의 아니게 살인을 하게 됐다. 제가 자면서 팔을 펼쳤는데 그 팔이 옆사람 목을 눌렀다. 죽은 사람은 영양실조로 힘이없어 그 팔을 들지 못해 죽게 됐다. 그 사실을 안 순간 감당못할 두려움에 빠졌다. 원래는 살인죄로 처벌을 받아야 했지만, 죽을 사람이었다며 그냥 넘어가게 됐다”고 했다.
이어 “중국은 정말 잘 산다는 이야기를 감옥에서 들었었다. 그래서 가족을 먹여살리려 구정 당일에 두만강을 넘어 중국에 갔다. 강을 넘어가는데 북한군이 서라는 소리를 하며 총을 장전했다. 그래서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숨도 안 쉬고 순간에 산을 두 개 넘어갔다. 초인적인 힘이 나왔다. 산을 두개 넘고 지쳐서 쓰러졌다”며 “오후 3시쯤 됐는데 해가 넘어갔다. 개짖는 소리가나 내려가 보니 집이 있었다. 중국 사람인 줄 알고 손짓 발짓으로 먹을 걸 달라고 하는데, 한국 말을 했다. 새 옷을 주고 목욕할 물을 주셨다. 그리고 음식을 주셨다. 그때 콜라를 처음 마셨다”고 했다.
연 전도사는 “알고보니 그 분은 선교사님이었다. 그 집은 전기가 없다보니 밤에 시간이 많아 책을 읽었다”며 “처음 본건 성경이었다. 펼쳐보니 창세기가 있는데,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하고 읽지 않았다. 그리고 봤던 책이 박종훈 목사님의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였다. 그 책은 암 걸린 사람들이 낫고, 어려움이 해결되는 내용이었다”고 했다.
이어 “책을 읽던 차에 북한에서 아빠, 아들, 삼촌 이렇게 남자 3명이 왔다. 그런데 아침에 그분들을 보내고 느낌이 이상해 가보니 창고에 도둑이 들었다. 발자국을 보니 아침에 북한 분들에게 준 신발무늬였다”며 “벽에 걸려있는 나무를 정리하는 큰 칼을 챙기고 그 사람들을 붙잡기 위해 우회해서 덮쳐서 아들을 칼로 위협하며 3명을 창고 기둥에 묶고 마구 때렸다. 그리고 칭찬받을 걸 기대하며 선교사님을 기다렸다. 선교사님이 오시더니 저에게 어떻게 같은 동족을 이렇게 만드냐며 마구 욕을 하셨다. 그분들은 추운 겨울에 창고에 묶여 있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고 했다.
연 전도사는 “선교사님은 묶었던 것을 다 풀어주시고 그분들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를 했다. 선교사님이 도둑질한 3명에게 내가 필요한 것을 물어보고 줬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이렇게 훔친 것이라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사람이 선하고 착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저 사람이 믿는 하나님을 나도 믿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교사님은 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성경책을 주고 보냈다”고 헀다.
이어 “그렇게 믿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성경책을 펼쳐 읽었다. 당시에 불면증이 있었는데, 성경책을 보니 잠이 잘 왔다. 읽다 보니 이해가 안되는 게 너무 많아 물어봤다. 그 분은 신학을 하지 않아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었다. 그래서 저를 신학교에 보내셨다. 신학교에 도착하고 다음날 자매 2명을 파송했다. 자매 선교사 두분에게 중국돈을 주는 걸 봤다. 6000위완(약 100만원)을 주는 걸 보고 여기서 시키는 걸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신학교에 오자마자 말씀, 찬송을 암송하게 하고 성경을 통독하게 하고 신학을 가르치시고 전도훈련을 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밤 11시에 자는 생활을 하는데 말씀 암송을 못하면 밥도 주지 않았다. 신학교에서 지내며 은혜를 받고 새벽기도 하는 중에 출애굽하는 장면이 보이는 환상을 보게 됐다. 그리고 귀에 출애굽기 3장 10절 말씀이 들렸다. 이틀 동안 떼굴떼굴 굴면서 회개하고 방언을 받게 됐다”고 했다.
연 전도사는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북한에 가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지만 성경책 26권, 4영리, 반도체 라디오, 성경 관련 CD, 책, 십자가를 가지고 북한에 들어갔다. 미친 짓이지만 당시에 성령에 취해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북한에 파송되어서 들어가게 됐는데, 두려웠다. 아무 생각도 안났다. 검열하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마침 트랙터가 오고 있었다. 검열하는 사람과 트랙터 운전수가 친한지 대화를 하러 자리를 비웠다. 그래서 무사히 지나가게 됐다”며 “그 자리에서 검열 당했다면 정치범수용소에 갔을 것이다. 먼저 파송된 선교사님들에게 성경책을 나눠주고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보위부에 잡혔다. 석달 간 조사를 받고 정치범수용수에는 가지 않게 됐다. 8년 형을 받고 처음에 갔던 감옥에 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큰 철문이 두렵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선교사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매달 음식을 공급해 주셨다. 제 밥은 영양실조 걸린 분들에게 나눠줬다. 사식을 넣어줘서 잘 먹다 보니 일을 잘해 좋은 자리에서 편하게 보내게 됐다. 그러다가 통나무를 나르는 일을 했는데 앞에 있는 사람이 넘어져서 제가 통나무에 깔리게 됐다. 깨어나니 하나님께 원망이 들었다”며 “모세처럼 백성을 인도하라면서 왜 이런 일을 겪게 하시냐고 항변했다. 그 와중에도 의지할 곳은 하나님 뿐이었다. 하나님이 허리를 고쳐 주셨다. 처음 출소할 때는 45 kg이었지만 두번 째 출소할때는 80kg이었다. 북한에서는 전무후무한 일이었다”고 헀다.
연 전도사는 “감옥에서 나오니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성경책을 나눠줬던 선교사님 가족들이 다 하나님을 믿고 있고, 아내도 준비해 주셨다. 감옥에서 결혼도 못했다고 항변했던 것도 들어주셨다. 북한에서도 감옥 갔다오면 장가가기 어렵다. 하나님이 모든걸 하시고 인도하셨다”며 “제가 할 수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부르시고 인도하셨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 하나님이 북한을 구원하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