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만 명이 기도할 때, 영적 전성기 다시 맞을 수 있을 것”

교회일반
인터뷰
조성호 기자
josungho200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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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차 온라인 기도회 준비하는 캄선교회 데이비드 차 선교사
캄선교회 대표를 맡고 있는 데이비드 차 선교사. 최근 40일 동안 매일 1만 명 이상의 접속자를 기록한 4차 라이트하우스 기도회를 이끌었다. ©김상고 기자

KAM(Kingdom Army Ministry) 선교회(이하 캄선교회, 대표 데이비드 차 선교사)가 주최해 온라인으로 열렸던 4차 ‘라이트하우스 기도회’가 최근 마무리됐다. 40일의 기도회 기간 동안 매일 1만명 이상이 접속했고 4억원 이상의 헌금이 모이기도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었을까? 4차 기도회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18일 캄선교회를 찾아 직접 대표인 데이비드 차 선교사를 만났다. 아래는 일문일답.

-먼저 4차 기도회를 마무리한 소감과 많은 분들이 참여한 요인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40일 간의 4차 라이트하우스 기도회가 잘 마무리 됐습니다. 매일 오전에 1만 명에서 1만 3~4천명씩 들어오신다는 게 불가능한 일인데 하나님께서 기적을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특별한 요인이 내부적으로 있었던 건 없고요. 한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7년 전에 이곳에서 기도하면 열방의 중보자를 모아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주셔서 기도자리를 지켰을 뿐인데 코로나 상황이 발생하면서 많이 갈급한 분들이 연합한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 생각하고요. 또 삶의 일터에서 신실하게 기도와 영성을 지켜냈던 평신도 사역자들이 강사로 오셔서 생명력 있는 메시지를 전해주신 것들이 참여하시는 많은 분들에게 공감이 되고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또한 4차 기도회 때는 함께 참여하기 원하는 분들에게 사전 신청을 받았습니다. 그 분들에게 2만5천 부의 기도책자를 발송해드렸는데 거기에 출결 체크란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거룩한 부담이 되어 많은 분들이 오지 않으셨나 싶습니다.”

-많은 분들이 데이비드 차 선교사님에 대해 궁금해하실 것 같습니다. 본인 소개 부탁 드립니다.

“지금은 캄선교회 대표로 섬기고 있고요. 제가 언론 인터뷰나 대중적인 홍보를 지난 10년 동안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성격이 내성적이기도 하고요(웃음). 저는 20대 후반에 ‘마지막 신호’와 ‘마지막 성도’라는 두 권의 책을 쓰기도 했었습니다. 장로교 통합 측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때부터 3대째 신앙생활을 해오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장로님이시고 제가 첫 째 아들인데 어린 시절에는 종교인으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곤고한 20대를 맞이하며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부잣집 형들과 어울리면서 방탕한 삶, 사치스럽고 화려한 삶을 살다가 양심에 가책이 되어 군대에 가게 됐습니다. 군생활에서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로 신앙인으로 거듭나는 계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을 모른 채 여의도에서 사업체를 운영해보기도 하고 회계사를 준비하는 시간도 있었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뜨거워져서 책도 쓰게 됐습니다. 출판사 사장님께서 안 팔릴 책이니까 지인들 나눠주라고 1천5백 권을 출간해주셨는데, 뜻밖에 20만권이 팔렸습니다.

제가 당시 29살이었는데 전 세계를 다니며 마지막 때에 관한 내용 등으로 강연을 했습니다. 그런데 내 신앙에 복음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책 관련 강연 사역을 중지하게 됐습니다. 오직 복음만이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복음을 전하고 말씀 안에 있으니까 제 자신이 기쁘더라고요. 그러면서 침례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마치게 됐고 현재는 전도사이며 내년 정도에는 목사 안수를 받지 않을까 싶습니다.

캄선교회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미국에 가서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을 때, 여기 기도회 자리에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인도함이 있어서 입니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들어와 버틴 세월이 벌서 7년이 지났습니다.

데이비드란 이름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인물인 다윗에서 따온 것입니다. 예전에 여의도에서 회사생활을 할 때 같은 회사 기도멤버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한 분이셨던 한 장로님께서 제가 쓴 책을 보시고 그 이름을 추천해주셔서, 책 초판에 들어갔고 그 때부터 데이비드 차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본명은 차형규입니다.

선교사 직분은 제가 과거에 신학 하기 전에 평신도로 강연 사역을 많이 다니니까 제가 다니는 더크로스처치의 박호종 목사님께서 평신도 사역자로서 임명해 주실 때 받았습니다.

지금도 많이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군생활 하던 때였습니다. 많이 갈급하고 방황하던 시절이었는데 그때 가정도 경제적으로 부도를 맞아 힘든 시기였고 휴가를 나가면 제 컴퓨터까지 압류딱지가 붙어 있던 상황이었는데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군종병을 하게 됐고 새벽기도를 매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루는 잠언서를 보는데 ‘나를 간절히 찾는 자는 만날 것이다’는 말씀이 주님의 음성처럼 다가왔습니다. 그때부터 주님을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간절히 기도하다가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고 이끄심에 순종하면서 지금까지 순종하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캄선교회에 대한 소개 부탁 드립니다.

“여기에서 지낸 지 벌써 7년째인데요. 제 인생의 30대를 이곳에서 다 보냈습니다. 감격스러운 곳입니다. 7년 전에 주님께서, 나라와 통일, 이스라엘, 다음세대, 거룩한 문화를 위해 기도하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붙들고 7년 동안 같은 기도만 해왔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기도하다가 2명, 3명, 나중에는 100여 명이 모여 기도하는 목요기도회가 됐습니다.

또 기도회를 하면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강남 대로변에 있는 전광판에 예수님 광고를 실었던 적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라는 문구를 12월 내내 띄워 놓기도 했었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강남에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주께 돌아오는 일들이 있을 거라는 기대로 진행했었습니다.

강남에 M스테이지라고,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찍힌 그 공간에서 찬양콘서트도 토요일마다 여러 차례 열었습니다. 많은 연예인들, 귀한 목사님들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또 탈북민들을 섬기는 일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복음통일이 되었을 때 이런 기도회가 공적인 한국교회의 기도회 역할을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특정 교회가 몇 백 군데의 교회를 돕기가 재정적으로 쉽지 않은데, 저희는 몸이 가볍기 때문에 전액을 다 섬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라이트하우스 기도회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희가 계속 기도하다 보니까 어느 날은 이 자리가 꽉 차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참석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온라인 기도회를 시작하기로 해서 4~5년 전에 유튜브에 ‘홀리튜브’라는 채널을 개설했습니다. 그때는 매주 5백 명에서 1천 명 정도 참여하는 기도회였습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현장에서 기도와 예배를 드리지 못하면서 많은 분들이 찾아온 것 같습니다. 저는 올해 해외사역들이 취소되면서 안식년을 주시나 보다 했는데 오히려 부흥의 파도가 올 거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서핑을 타고 파도에 뛰어드는 것처럼 올 3월에 매일 기도회로 전환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1차 라이트하우스 온라인 기도회 때 2~3천 명이 들어왔습니다. 어떻게 저희 같은 작은 단체에 평일 오전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들어오시지 하면서 3차 기도회까지 이어갔습니다. 마스크도 모아서 보내기도 하고 미자립교회도 도우며 저희는 너무 행복하고 기쁘게 3차 기도회를 했는데 마지막 날 접속자가 7천 명을 돌파했습니다. 저희는 펑펑 울고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7월에 끝날 것 같았던 코로나가 끝나지 않아 4차 기도회를 시작했고 첫 날 1만4천 명이 들어오셨습니다. 4차 기도회 20일 차가 되는 날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1만 명 이상이 들어오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에게 어떻게 사람을 모으냐고 물어오는데 사실 저는 유튜브 전문가도 아니고 좋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한 명의 엔지니어와 음향 담당 스태프가 기도회를 준비하고 있는데요. 20일 째 되는 날 너무 감사해서 헌금을 모아 어려운 교회를 돕자는 광고를 했는데, 남은 20일 동안 무려 4억3천2백만 원이 모였습니다. 제가 너무 놀라서 임의로 집행하기에 부담이 되어 지도위원으로 계시는 분들에게 심사해 달라고 했더니 흔쾌히 오셔서 해주셨습니다. 지도 위원 중에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신 김성이 장로님이 계셔서 아주 좋은 행정적인 노하우로 집행해주셨습니다. 이외에도 훌륭한 믿음의 선배님들이 지도위원으로 함께 해주시는데요. 20대 중반에 사업할 때 알고 지냈던 선배님들입니다.”

-그밖에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과연 오늘 통일이 된다면 나는 무엇을 할지 10년 동안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통일 이후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북한 아이들을 위한 세계관과 철학, 신학 등의 내용을 콘텐츠화 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물맷돌 수학’입니다. 통일이 되면 북한을 돕기 위해 만들었는데 대한민국의 다음세대를 돕고 코로나 때문에 홈스쿨링 수요가 굉장히 많아져서 요즘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있습니다. 또 아크에서 운영하는 캄스쿨이라는 온라인 사이트에서 세계관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5차 기도회 때는 탈북민들과 고아, 홀사모님, 과부들을 섬기는 사회복지재단 설립을 진행해보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예정되어 있는 5차 기도회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5차 기도회는 서로 사과하고 용서하고 화해하고 예수님 안에서 다시 하나가 되는 것, 이제는 분열하지 않고 2021년의 부흥을 향해서 나아가면 좋겠다는 주제로 진행해보려고 합니다. KWMA 황성주 박사님께서 저를 차세대 기도사역 단장으로 임명해주셨는데요. 저는 그런 직함을 받을만한 자격이나 능력이 전혀 안 되는데 한국교회를 더 겸손하게 기도로 섬기라는 뜻인줄 알고 감당해 보려고 합니다.

KWMA에 ‘타킷 2030’이라는 목표가 있는데요. 2020년부터 2030년까지 한국교회의 골든타임인데, 이 시기를 잘 활용하지 못하면 한국교회가 서구 교회처럼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닙니다. 다시 한 번 한국교회가 부흥하는 나라, 선교하는 나라가 되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통일된 나라를 감당해야 하는데 기도가 그 사역의 처음이라 생각합니다. 5차 기도회 때는 ‘타킷 2030’ 목표를 따라 다시 한 번 10만 명의 정병 선교사들, 100만 명의 자비량선교사를 파송하는 비전을 세웠습니다. 이 비전은 사실 74년도에 있었던 ‘엑스플로 대회’ 주제와 동일합니다. 50년 전 믿음의 선배들이 꿈꿨던 한국교회 전성기의 운동을 온라인으로 1백만 명이 모여서 기도할 때 다시 한 번 교회들이 영적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때 통역하셨던 김장환 목사님이라든지, 돌아가신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아들 프랭클린 그래함 목사님, 그리고 CCC의 어른들을 모시고 강연을 들으며 선배들의 믿음을 다음세대가 이어받아갔으면 합니다.

저도 4명의 자녀를 키우는 아빠인데요. 자기들끼리 싸우는 게 제일 속상합니다. 그런 뒤 서로 사과하고 화해할 때 부모가 기쁘듯 하나님도 우리의 화해와 하나 됨을 기뻐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주장과 분노가 나라를 바꿀 수 없습니다. 기독교인의 강력한 경쟁력은 용서라고 생각합니다. 용서하고 사랑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이 나라를 고쳐주시리라 믿습니다.”

-그 밖에 더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주신 사명 잘 감당하도록 하겠습니다. 많이 부족합니다. 젊을 때는 진보적인 생각을 많이 하지 않습니까. 제가 한국교회를 사랑했기 때문에 과거에는 비판적인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나부터 잘하자는 마음으로 부르심을 쫓아 가고 있습니다. 부족한 모습이 보일 때 권면해주시면 잘 지도 받고 겸손하게 배우면서 한국교회를 섬길 수 있는 역할을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있을 5차 기도회에 많이 참여해주셔서 하나님 나라 확장에 큰 열매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다시 기독교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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