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된 김홍걸 의원을 전격적으로 제명하는 초강수를 뒀다. 당 소속 인사들과 관련한 잇단 악재에 신속 대응하겠다는 이낙연 대표의 쇄신 의지가 상징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김 의원은 비례대표 신분으로 당의 제명 결정에도 의원직은 계속 유지할 수 있어 민주당의 부실 검증에 대한 책임론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민주당 최고위는 18일 오후 윤리감찰단에 회부된 김 의원에 대한 제명을 의결했다.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소통관 브리핑을 통해 "윤리감찰단장인 최기상 의원이 김 의원에 대한 비상 징계 절차 및 제명을 대표에게 요청했다"며 "최고위는 비상 징계 및 제명 필요성에 이의 없이 동의했다"고 밝혔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삼남인 김 의원은 4·15 총선 비례대표 후보 등록 당시 10억원대 분양권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재산 신고에 누락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데 이어 2016년 연달아 주택 3채를 구입했다는 의혹이 더해지며 투기 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지난 16일 민주당이 당대표 직속으로 설치한 윤리감찰단에 이스타항공 대량해고 사태 책임론에 휩싸인 이상직 의원과 함께 첫 조사대상으로 회부된 바 있다. 그러나 김 의원은 감찰단의 조사에 제대로 응하지 않고 소명도 거부했다고 한다.
최 수석대변인은 "윤리감찰단이 조사하면서 소명이나 본인의 주관도 들어보려했으나, 성실히 응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해 최기상 단장이 당 대표에게 제명을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의원이 당의 부동산 정책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부동산 다보유로 당의 품위를 훼손하였다고 판단, 이 대표는 10차 긴급최고위원회의를 긴급히 소집해 의견을 거쳐 김 의원에 대한 제명을 결정했다.
민주당의 김 의원에 대한 결단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DJ의 비서관을 지낸 김한정 의원은 이날 오전 페이스북을 통해 "기다리면 피할 수 있는 소나기가 아니다. 김 의원이 결단을 내리기 바란다"고 작심 발언을 했다.
이는 김 의원에게 탈당이나 자진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김 의원은 감찰단 조사 협조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탈당 권유도 물리친 것으로 전해졌다.
최 수석대변인은 "본인이 탈당 의사는 없었던 걸로 안다"며 '탈당에 대한 언급이 있었냐'는 질문에 대해선 "그렇다"고 답했다.
결국 김 의원이 버티기에 들어가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판단해 신속 제명을 선택한 것이다. 여기에는 김 의원을 설득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여론 악화를 수수방관할 수 없다는 이 대표의 판단이 반영됐으리라는 관측이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당 쇄신을 내걸었던 이 대표는 지난 9일 당 최고위원회의 공개 발언을 통해 윤영찬 의원의 카카오 뉴스 편집 항의 문자 논란에 대해 "저를 포함해 모든 의원이 국민들의 오해를 사거나 걱정을 드리는 언동을 하지 않도록 새삼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윤리감찰단 신설도 이 대표가 전당대회 과정에서 내건 공약이었다.
실제 이 대표는 이날 최기상 윤리감찰단장으로부터 김 의원에 대한 조사 상황 보고를 받고 시장 방문 일정을 앞당겨 가진 뒤 예정에 없던 긴급 최고위를 소집해 제명 조치를 서둘러 의결했다고 한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의 기풍을 쇄신하고자 하는 이 대표의 속전속결과 기민한 대응 의지가 드러난 결정"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당 소속 지자체장의 연이은 성추문에 부동산 사태까지 겹쳐 하락한 지지율을 회복할 틈도 없이 김 의원을 비롯한 소속 의원들의 잇따른 논란으로 악재를 자초해 왔다.
최근에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복무 시절 휴가 의혹을 엄호하는 과정에서 설화를 빚어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에 이 대표는 김 의원에 대한 신속 제명이라는 극약처방을 통해 당내 기강을 바로잡고 대외적으로는 쇄신 의지를 보임으로써 여론의 지지를 회복하겠다는 복안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김 의원이 갖는 'DJ의 아들'이란 상징성을 감안할 때 이번 결정은 더욱 파격인 동시에 당 쇄신에 대한 이 대표의 강력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고 민주당 관계자들은 전했다.
하지만 이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김 의원은 의원직을 계속 유지하게 돼 논란이 곧장 가라앉을지는 미지수다.
김 의원은 비례대표로 당선돼 자진 탈당이나 사퇴를 하지 않으면 의원직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김 의원의 버티기로 인해 제명 수순을 밟을 수 밖에 없었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하자가 있는 인사를 비례대표로 영입하며 민주당이 부실 검증을 했다는 책임론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415 총선 이후 민주당이 자당 의원에 대한 제명 결정을 내린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인데 첫 사례였던 양정숙 의원도 비례대표 출신이었다.
양 의원은 부동산 차명 거래 및 투기 의혹 논란으로 제명됐는데 이 역시 부실 검증 때문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당장 야권에서는 김 의원의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한 사실 관계는 밝혀내지 못한 채 의원직만 유지시켜주는 '꼬리 자르기'라는 공세를 가하고 있다.
국민의힘 윤희석 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민주 당적만 없어질 뿐 의원직은 유지돼 꼬리 자르기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며 "국민을 기만한 김 의원의 행태가 단순히 '제명' 조치만으로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배현진 원내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당 제명은 의원직과 무관하다"며 "진정 반성한다면 김홍걸 의원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회부해 '의원직 제명'토록 조치하라"고 촉구했다.
배 원내대변인은 "무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도 '의혹만으로' 당 제명이 되었는데 범죄사실이 확인돼 재판에 넘겨지기까지 한 윤미향은 왜 모르쇠인가. 지금처럼 신속하게 국회 윤리위에 동시 회부해 의원직을 박탈하라"며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국민 눈 속이고 꼬리 자르는 서툰 야바위꾼 흉내에 그치지 않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정의당 조혜민 대변인도 논평에서 "민주당은 이번 제명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눈가리고 아웅해서는 안되며 김홍걸 의원 문제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민주당은 급조된 위성정당으로 부실한 검증을 거쳐 김 의원을 당선시킨 책임을 결코 피할 수 없다"며 "김 의원은 더 이상 추한 모습으로 부친의 명예에 누를 끼치지말고 의원직에서 스스로 물러나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당 안팎에서는 김 의원과 함께 윤리감찰단에 회부됐던 이 의원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이 대표의 쇄신 의지가 가려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 의원은 이스타항공의 창업주다. 최근 이스타항공의 600명이 넘는 임직원 대량해고 통보와 250억원대에 달하는 임금체불 문제에 책임자로 지목받고 있다.
그러나 이 의원은 대량해고 사태에 대한 책임론에 선을 긋고 있어 여론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그는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종합정책질의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스타항공 대량 해고 사태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굉장히 안타깝다"면서도 임직원 대량 해고에 "경영할 사람들하고 주관사하고 알아서 다 할 것이다. 저는 (지분을) 헌납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할 것은 없다"고 말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