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가 화두로 떠 오르고 있다. 나라 안팎에서 많은 학자들이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최근 책 한 권을 주목하여 읽으며, 큰 충격과 도전을 받았다. 미국의 정치이야기 인줄 알았는데 우리나라의 이야기 같아서였다.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Steven Levitsky)와 대니얼 지블랏(Daniel Ziblatt). 전통을 자랑하는 민주주의조차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깨달은 그들은 〈뉴욕 타임스〉에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하는 칼럼을 꾸준히 썼다. 그들의 글은 1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큰 주목을 받았고, 마침내 출판사의 요청을 받아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로 거듭난 책이다.
‘오늘 날 민주주의는 위험에 처했는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하는 『어떻게 민주주의는...』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경우를 비교한 끝에 민주주의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과정을 거쳐 무너졌음을 발견하고, 몇 가지 신호를 패턴화한 두 저자들은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다분한 극단주의 포퓰리스트들이 어떤 조건에서 선출되는지, 선출된 독재자들이 어떻게 합법적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 세계 여러 나라의 사례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국민에게 ‘진정한 민주주의 건설’을 약속했던 베네수엘라의 차베스(Hugo Rafael Chavez Frias)는 대통령에 오르자 무서운 독재자로 변했고 결국 나라를 망쳤다. “페루를 더 나은 나라로 만들겠다”고 대통령 취임사에서 다짐했던 후지모리(Alberto Kenya Fujimori)도 의회를 해산하고 헌법을 파괴했다. 러시아의 푸틴(Vladimir Putin)도 똑같은 독재자의 전철을 밟고 있다. 민주주의가 그렇게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잠재적 독재자가 권력을 잡으면 위험에 취약하다. 합법적으로 전복되는 민주주의의 붕괴다.
책은 『이솝우화』를 소개한다. 말과 사슴이 싸움을 벌였다. 말은 사냥꾼을 찾아가 사슴에게 복수하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사냥꾼은 한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사슴을 쫓을 수 있도록 등 위에 안장을 얹고, 고삐로 너를 조종할 수 있도록 입에 마구를 채워야 해.” 말은 기꺼이 동의했다. 드디어 사냥꾼이 사슴을 물리치자 말이 말했다. “이제 그만 내려와요. 입과 등에 채운 것도 풀어주세요.” 사냥꾼이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이제 막 마구를 채웠잖아. 난 지금 이대로가 좋아.”
말과 사냥꾼의 우화는 오늘날 민주주의가 처한 실상을 대변한다. 정치인은 사냥꾼처럼 자기에게 권력을 몰아주면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겠다고 떠벌린다. 하지만 권력을 잡으면 생각이 달라진다. 권력의 속성이 그런 모양이다.
두 저자는 자신들이 파악한 패턴 속에서 후보를 가려내는 역할을 내던진 정당, 경쟁자를 적으로 간주하는 정치인, 언론을 공격하는 선출된 지도자 등 민주주의 붕괴 조짐을 알리는 명백한 신호들을 찾아냈고,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헌법 같은 제도가 아니라 ‘상호인정/존중(mutual tolerance)’과 ‘권력의 절제(forbearance)’와 같은 규범이라고 이야기하면서, 규범들이 무너질 때 민주주의도 함께 허물어진다는 깨달음을 전한다.
우리가 놓치는 민주주의의 위기 신호는 무엇인가. 저자들은 독재자를 감별하는 4개의 리트머스 시험지를 제시한다. 민주주의 규범을 거부하고, 경쟁자의 존재를 부인하고, 폭력을 용인하며, 언론의 자유를 비롯해 반대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는지를 유심히 살피라는 것이다. 이 중 하나만 양성반응을 보이더라도 독재의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들은 최근 민주주의의 붕괴는 군사쿠데타 같은 비합법적인 방식이 아닌 투표로 선출된 권력에 의해 무너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다수결로 뽑는 민주주의는 선동과 포퓰리즘에 매우 취약하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항상 옳다는 환상을 버려야 할듯 싶다. 하지만 다수결 없는 민주주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출발점은 모든 국민이 주권자라는 “국민주권”이지만,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가 하나의 의사로 통일되어 나타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수의 의사를 대체적 국민의 의사로 보아야 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다수결은 중요하다. 대표자를 뽑는 것도 다수결이고 선출된 대표자들, 특히 국회의원들이 위원회나 국회의 이름으로 의사결정을 할 때도 다수결이 적용된다.
‘다수결’이란 양날의 칼과 같아 민주주의를 지키면서 파괴할 수도 있다. 그러면 다수의 결정은 항상 옳은가. 인류 역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준다. 소수당의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다수당은 오만·독선·독재에 쉽게 빠질 수 있다. 다수결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역사적 경험 때문에 현대 민주국가들에서는 다수의 독재, 다수의 횡포를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다수결’이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 방식이지만, 이를 자칫 잘못 사용하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수결을 존중하되, 항상 소수자 보호를 고려해야 하며, 의회 다수당의 주도적인 역할은 인정하되 소수당의 목소리가 일방적으로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건강한 민주주의’란, 민주적 다수란 주권자인 국민을 대신하기 위한 것이며 51%의 다수가 49%의 소수 위에 군림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마치 일시적인 정치적 승리를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고 적과 동지라는 진영 논리에 빠져 소수를 동반자가 아닌 궤멸하여야 할 악으로 규정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무너지게 한다.
책에서 언급하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은 헌법 같은 ‘제도’뿐 아니라 ‘상호인정/존중’과 ‘권력의 절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형식적 법치주의만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다수의 힘에 취해 불합리한 일이라도 합리적인 것으로 둔갑시킬 수 있다는 착각이 나라를 부패하게 하고 망친다. 이런 식의 오만과 독선은 모두를 불행하게 하며, 결국은 다수 자체가 내부적으로 붕괴하게 한다.
‘극단주의 포퓰리스트는 어떻게 권력을 잡는가’ 부분에서 정당의 약화와 정치인의 타락을 다루고 있다. 갈수록 심화하는 경제 격차와 빈곤으로 분노하는 시민들이 희생양을 찾을 때를 틈타,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선동하고 반민주적인 말과 행동을 일삼는 포퓰리스트들은 늘 있었다고 적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를 대입해보면 희생양은 누군지 자연스럽게 답이 나온다.
‘민주주의는 영원하다’고 장담할 사람이 있겠는가. 벼랑 끝에 선 민주주의. 남의 나라만의 위기가 아니다. 문 대통령은 ‘국민 통합’, ‘겸손한 권력’으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도록 ‘소통하겠다’고 권력을 요청했다. 하지만 권좌에 오르더니 스스로 공약을 헌신짝처럼 내던졌다. ‘촛불’을 자신이 가진 전가의 보도(傳家寶刀)로 삼아 반대파는 ‘적폐’라는 이름으로 치고 국민을 나누고 삼권분립의 보루를 허물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과연 건강한가. 저자가 제시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를 사용할 경우, 문 정부는 4곳 모두 양성반응을 나타낼 가능성이 농후하다. ‘서로 적대하는 정당, 양극화된 정치, 무너지는 규범’ 등. 민주규범 뿐 아니라 정의, 공정, 양심 등의 도덕규범까지 무너뜨렸다. 게임의 룰(rule) 인 선거제도를 멋대로 고치더니 헌법까지 자기 입맛대로 바꾸겠다고 떠든다. 상대방의 존재는 애초 안중에도 없다. 기득권 진보는 아직도 운동권인가. 80년대 운동권처럼 바리게이트를 무너뜨리고 적으로 공격하고 짓밟는 일이 허다하다. 자신들의 폭력과 불법은 묵인하고 상대의 위법엔 몽둥이를 휘두른다. 국기기관을 장악하고 경쟁자와 반대자를 처벌한다.
곰을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격이다. 촛불로 전 정권을 내쫓더니 ‘코로나’와 ‘재난지원금’으로 국민의 등에 안장을 얹고 고삐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들은 국가 위기를 즐긴다고 책은 기술하고 있다. 신국가주의의 출현이다. 민주화를 부르짖던 운동권이 민주주의를 잡는 사냥꾼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많은 국민이 뜨거운 마음으로 촛불을 들었던 이유는 단지 지난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동기가 선하다고 결과가 꼭 아름다운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제야 비로소 깨닫지만 나라를 반듯이 세우려면 뜨거운 가슴만으로는 부족했다. ‘두려움’과 ‘분노’만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없다.
민주주의의 위기와 정치 실종의 지금이야말로 이 책 읽기를 권하고 싶다. 지금은 차가운 이성을 소환해야 할 시점이다. ‘소통부재’와 ‘오만한 권력’이라는 현 정권과 전 정권의 행보는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이성의 눈을 뜨고 권력의 독단과 전횡을 똑똑히 살펴야 한다. 갈가리 찢긴 사회, 누군가 경종을 울려야 한다. 자유 민주주의가 무너질 때, 권력의 독단과 전횡을 막으려면 국민 각자가 작지만 자기 몫의 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다.
이효상 원장(칼럼니스트, 근대문화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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