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과 생물은 창조된 속성대로 살아갑니다. 물고기는 물에서 헤엄을 치며 수초 속에서 놀고, 새는 창공을 날며 먹이를 찾고 나무에 둥지를 틀어 자신을 보호합니다. 그들 나름대로 거처와 사는 방식이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법과 삶의 우선순위에 차이가 있습니다. 육신 중심으로 사는 사람이 신앙인을 보면 매우 어리석고 답답해 보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사람은 현실 중심으로 사는 사람을 어리석다 생각하고 불쌍히 여깁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구별하신 곳, 하나님의 성전이 마음 깊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기원전 605년,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바벨론의 총리가 되었지만 그의 마음은 늘 예루살렘 성전에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해 있는 창문을 열고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을 시기하는 이들은 다니엘의 약점을 찾다가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악법을 만들었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
그러나 다니엘은 변함없이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기도했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집, 예루살렘 성전을 늘 마음에 두고 가고싶어 합니다.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행8:27)
에디오피아 여왕의 내시도 상당히 먼 곳에서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그리고 돌아가는 수레 위에서는 성경을 읽었습니다.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행8:28)
그가 읽는 것은 이사야 53장에 있는 말씀으로 예수님의 사역과 그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53:2~3)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은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4~6)
신앙생활하며 환경과 사람을 볼 때, 외모로 판단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1. 택한 백성은 성전을 사랑하고 예배를 사랑합니다
내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성령은 성경을 읽으며 가는 내시에게 빌립을 보냈습니다.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행8:30)
성경을 소리 내어 읽으면 갑절의 유익이 있습니다. 눈으로 읽고, 귀로도 들으면 마음에 깊이 새겨집니다. 때로는 성경을 읽으며 깨닫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내시도 성경을 읽고 있지만 계시 속에 흘러가는 진리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빌립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다가가니 내시는 빌립에게 수레에 올라 같이 앉기를 청했습니다. 내시는 성령의 사람을 영접했습니다.
성령의 사람을 영접하면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영접하고 누구와 동행하십니까? 무슨 책을 읽고, 무슨 말을 하고 있습니까? 내가 하는 말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좋은 말, 감사의 말, 성령에 감동된 말을 하길 바랍니다.
택함받은 자들은 성전을 사랑하고 예배를 사랑합니다. 예배하기 위해 먼 길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간다게 여왕의 내시는 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 흔들리는 마차에서도 성경 말씀을 읽고 그 내용을 알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성령의 감동된 사람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를 원했습니다.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행8:31)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배울 자세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행8:34)
2. 예수님의 복음을 접한 사람은 결단합니다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행8:35)
빌립이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내시가 복음을 받았습니다. 복음을 받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음부의 권세를 이깁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음부의 권세는 십자가를 외면하게 하고 기도와 예배를 막지만 성령의 사람은 모든 것을 이깁니다. 내시는 자신의 집으로 가는 것을 멈추고 물에 내려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행8:38)
내시는 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은혜 받을 때를 알았습니다. 내시의 지혜는 수레를 멈출 때를 알았습니다.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행8:39)
물세례가 성령의 세례로 연결되었습니다. 예수님도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막1:9~11)
내시는 우선순위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 할 때는 하던 일을 멈추고, 신앙생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눅9:59~60)
복음 앞에서 결단하여, 삶의 우선순위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일이 되길 바랍니다.
3. 빌립은 성령의 능력을 입었습니다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행8:40)
성령이 붙잡으면 그를 통해 예수님이 전파되고, 성경이 해석되고 능력을 입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예수님은 전하는 우리에게도, 예수님의 복음을 받는 상대에게도 최고의 복이요, 능력이요, 영광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안전한 길, 불변의 진리, 영원한 생명이 예수님께 있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따라가면 안전하고 행복합니다.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과 접붙임을 받을 때 영원한 생명으로 연결됩니다. 예수님을 깨달은 사람은 순교의 길도 기쁨으로 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를 금하는 이들에게 나라 사랑, 사람 사랑의 실천이 바로 경건한 예배임을 알려야 합니다. 차 안에서, 가정에서 예배를 지키는 부모님을 보며 아이들의 신앙이 굳건해질 것입니다.
한 주간 기도하고 새로운 각오를 합시다. 수레를 멈추었던 내시의 결단이 우리 모두의 결단이 되길 바랍니다.
예수님 안에서 거룩한 결단을 하여 복된 삶을 열어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