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뮤직 경배와 찬양 컨퍼런스 ‘씽! 글로벌 2020’이 미국 현지시간 지난달 30일부터 9월 2일까지 일정으로 진행 중인 가운데 한국 공식 파트너로 선정된 TCG코리아가 이 컨퍼런스의 강연을 1일부터 5일까지 차례로 소개한다. 첫 강사로 페이지 브라운(미국 내슈빌에 있는 웨스트엔드교회 성경교사)이 여호수아 4장을 중심으로 ‘가정에서의 말씀의 중요성’이란 제목으로 강연했다.
페이지 브라운은 “이시간 하나님 말씀에 관해 뭔가를 권면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들어 실제로 뭔가를 보여주는 일을 하려한다. 이제 두 본문을 살펴볼 것이다. 이 두 본문은 구약 성경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 줄 뿐 아니라 해석의 틀을 제공하기도 한다. 자녀를 사랑하는 최고의 방법에 대한 지침과 경고를 해석할 수 있는 틀”이라며 “여호수아 4장을 보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애굽에서 끌어내시고 인도하신다. 시내산에서는 자기 앞에 그들을 세우셨다. 거기서 율법을 주시고 나라로 세우셨을 뿐 아니라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다. 그런데 그들은 광야에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실패했다. 그리하여 이전 세대는 광야에서 죽고 새로운 세대가 일어나서 모세가 요단 동편에서 그들을 가르쳤다. 그 후에 여호수아의 지도를 따라 요단 서편으로 건너가게 됐다. 그리고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진다”고 했다.
이어 그녀는 “여호수아가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된다. 여호수아 4장에 이르면 그들은 요단강을 다 건너간다. 이 장을 읽게 되면 추가적인 내용을 보게 된다. 왜냐면 요단강을 건너는 것에 관해서는 몇 구절밖에 안 된다. 그보다는 돌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렇게 언급되는 돌은 열두 지파에서 각 지파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요단강 가운데서 취해야 했다. 그리고 길갈에 기념비로 세우게 된다”며 “여호수아 4장 20~24절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다음세대를 위한 공인된 교육 방침’이 주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이 직접 세우시는 교육 방침이다. 성경의 많은 본문에서 그러한 방침이 주어지지만 여기서는 요단강에서 가져온 돌을 가지고 교육하라는 방침이 주어진다. 무엇을 기념하는 돌인가? 돌은 성취감, 믿음이 얼마나 강한지를 기념하거나 그들이 경험한 즐거움이나 안도감을 기념하는 돌이 아니었다. 그것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기념하는 돌이었다.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서 행하신 일을 기념하는 돌이었다. 하나님이 애굽에서 백성을 건져 바다를 지나가게 하신 일의 반복이었다. 여호수아 4장 22절부터 다시 주목하면 실제 역사가 기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녀는 “이제는 기념하는 돌들이 약속의 땅 안에 세워졌기 때문에 그들은 애굽으로 돌아가 홍해 근처에서 기념할 일을 찾을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그들을 거기까지 인도하신 사실을 보여주는 돌들이었다. 22절을 보면 그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23절을 보면 하나님이 이 일을 하셨음을 알라고 한다. 모두 다 하나님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여호수아 4장에서 반복되는 내용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행하셨다는 것이다. 24절을 보면 그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바로 이 땅에 있는 모든 백성이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아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은 단지 ‘그’ 하나님이 아니라 그분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고 ‘너희’ 하나님으로 표현된다. 이처럼 성경은 인칭대명사를 사용한다. 그분은 우리를 그분의 백성이라고 부르고 우리는 그분을 우리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자녀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알려주실 때,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단지 ‘우리’ 하나님이라고 부를 게 아니라 ‘너희’ 하나님이라고 부르라고 하신다. 이 하나님이 이제 너희 하나님이라는 뜻”이라며 “바로 이 동일한 하나님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요단강을 건넌 과거의 일이지만 그분은 현재의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이 모든 게 무슨 뜻일까? 이는 자녀들에게 주는 교육이다. 다음 세대에게 주는 교육이다. ‘하나님 중심적 논리’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언제나 큰일에서 작은 일로 추론하는 논리를 말한다. 만일 하나님이 바다를 지나가게 하셨다면, 또 강을 지나가게 하셨다면 그분은 기르가스 족속, 여부스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가나안 족속 등 이 땅의 모든 족속을 물리치실 수 있고 자신의 약속을 지켜 이 땅을 주실 수 있다는 추론”이라고 했다.
이어 “그분이 공인하신 교육 방침의 장점을 볼 수 있다. 돌들을 거기에 세운 사실은 뭔가 특별한 사건이 있었음을 의미하고 돌들이 불변하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늘 동일하심을 의미한다. 그러한 일은 역사상 유일하게 발생한 사건일지 모르지만, 다시 말해 그분의 능력과 사랑과 목적은 동일하다는 뜻이다. 단지 우리 하나님이 아니라 이제는 너희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이다. 이게 자녀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내용이었다. 이런 내용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 우리가 자녀를 교육하는 방법에서 중심에 있어야 하는 내용이고 자녀에게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하는 방법에서도 중심에 있어야 하는 내용”이라며 “일반적인 청소년 집회에 가보면 곧바로 어떤 메시지가 주어지냐면 ‘청소년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나님에 대해 어떤 감정을 품어야 하는지,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는지’ 말하는데 이는 성경의 중심적인 가르침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녀는 “하나님의 교육 방침에서 중심이 되는 내용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무슨 일을 행하셨는가이다. 언제나 초점은 하나님이 하신 일에 있다. 여호수아는 성경 전체에서 이러한 교육에 가장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여호수아 23, 24장에 여호수아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교육하며 하나님이 행하신 일과 또 지키신 약속을 다 상기시키면서 ‘나와 내 집은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말한다. 이에 모든 백성은 똑같이 우리도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한다. 이처럼 여호수아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사사기로 이어진다”며 “사사기를 보면 얼마 안 가서 순식간에 이스라엘 백성이 몰락한다. 우리가 여호수아에서 본 대로 교육 방침이 제정된 후 사사기를 보게 되면 당황스러운 상황을 목격하게 된다”고 했다.
이어 “사사기 첫 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지 않은 일을 전부 이야기한다. 하나님이 하라 명하신 것인데 바로 다음 세대가 하나님이 약속의 땅에서 그들에게 주신 바를 취해야 했다. 거기에 있는 족속들을 정복하기를 마침으로써 땅을 차지하는 일이었다. 바로 1장에서부터 그 일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2장에서는 하나님의 사자가 돌들이 세워진 길갈에서부터 온다. 사자는 보김에 와서 너희는 실패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2장 11절부터 보면 죄악상이 드러난다. 사사기 전체에 걸쳐 보게 되는 죄악상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영적으로 우상숭배에 빠지고 그들의 마음이 음란해져서 바알과 같은 가나안의 우상을 섬긴다. 그 우상을 높이고 그 앞에 절한다. 심지어 자기 자식을 그런 우상에게 바친다.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완고해지는 악순환을 사사기에서 발견하게 된다”고 했다.
그녀는 “사사기의 이런 문제가 시작되는 이유는 그들은 하나님을 몰랐다. 이는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거부하고 그에 반역했음을 의미하지만, 하나님이 사사기에서 이런 말씀을 주시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에 관해 배우지 못해 그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분이 그들을 위하여 행하신 위대한 일을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사실(FACT)을 몰랐던 것”이라며 “그들은 언약이 맺어지고 약속이 주어져서 기적적으로 성취되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몰랐다. 그들은 갈라진 바다도 알지 못했고, 갈라진 강도 알지 못했다.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도 알지 못했다. 무너진 성벽도 알지 못했으며 해가 멈춘 일도 알지 못했다. 백성은 서 있고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싸우시며 적군이 자기들끼리 죽인 일도 알지 못했다. 이처럼 하나님이 하신 위대한 일을 알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랄프 데이비드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역사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자녀의 신앙을 보장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역사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지 않는 일은 반드시 그들의 불신앙을 가져온다’라고 말했다”며 “여호수아에 제시된 하나님의 교육 방침을 다시 보면 너희가 자녀에게 말해줘야 한다고 한다. 자녀들이 돌들에 대해 물을 때 부모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해줘야 했다. 이러한 교육에 대한 책임은, 하나님 말씀의 중심성을 가르쳐야 할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 자녀들이 배어야 할 가장 중요한 교육은 하나님을 올바르게 생각하는 법이다. 이를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장소는 그들의 가정이다. 또,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가장 훌륭한 교사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나아가 하나님 말씀만이 그러한 교육의 근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녀는 “우리가 자녀들을 구원할 순 없다. 그러나 자녀들이 예수님을 모른다면 자녀들이 예수님을 알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자녀들에 대한 예수님의 기대가 어떠할지만 생각하고 그분이 실제로 하신 일보다는 해주시기를 바라는 일에만 관심을 두지 않는가? 사사기에서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음란해져 바알을 섬겼다고 한다”며 “왜 하나님을 버렸을까? 이는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 아니다. 또는 그들이 생각을 바꿨기 때문도 아니다. 이는 그들의 생각이 그분으로 채워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도 그분에게 몰입되지 않았던 것이다. 세상과 다르게 생각하지 않았기에 일어난 일이다. 그래서 더 큰 소리가 들리거나 더 분명해 보이거나 더 직면하게 되는 문화를 따랐다. 세상과 달리 이야기하는 어떤 내용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전혀 다른 급선무를 몰랐다”고 했다.
그녀는 “사사기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들이 겪은 어두운 결과이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진짜 미스터리가 있다. 단지 이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 전체에 자리한 미스터리다. 눈부시게 빛나는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이 드러내는 미스터리이다. 이는 철학적 관념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로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에 자리한 사랑”이라며 “하나님이 행하신 사역은 성경에서 점점 더 작아지는 게 아니라 점점 더 크게 드러나서 어떠한 지점에, 어떠한 사역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안다. 자기 백성을 이끌어서 바다를 건너고 강을 건너게 하신 분은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이 땅에 오셨다. 그런데 팔을 펼쳐 손에 못이 박혀서 자기 백성의 죗값을 치르셨다. 그리고 영광스럽지만, 상처가 있는 손으로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이끌어서 자기 자녀들로 세우신다. 이게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다. 이 일이 하나님 말씀에서 중심이 되는 사실이다. 또한, 제 마음의 중심을 차지해야 하는 말씀이다. 그 말씀이 제 마음의 중심을 차지할 때 제 가정에서도 중심을 차지하게 된다. 매일 자녀들과 나누는 대화에서도 중심을 차지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생각할 때 하나님 중심적 논리를 갖게 된다”고 했다.
그녀는 “십자가와 빈 무덤에서 자기 아들을 통해 행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 그러한 ‘하나님 중심적 논리’를 우리 자녀들에게 전해줘야 한다. 자녀들을 격려하고 지도하며 답변을 주는 일은 그들이 씨름하는 문제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일이 아니다. 또는 그들이 겪는 세상의 문제를 회피하는 일도 아니다. 그보다는 자녀들에게 보여주는 일”이라며 “하나님이 더 크심을 보여주고 그분이 더 강하심을 보여주며 또한 더 아름다우심을 보여주어 그렇게 더 크고 강하고 아름다우신 하나님이 그들을 자신의 품에 끌어안으심을 보여주는 일이다. 또한, 그 누구도 그분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일이다. 우리 마음에 자리하고 있는 말씀의 중심성은 우리 입에서 흘러나와서 우리 자녀들에게 전해진다. 이에 그들의 삶에서 반복되는 후렴은 그들이 위대한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는 노래가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