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또 다시 코로나19 재확산의 책임을 한국교회에 돌리는 듯한 발언을 했다. 지난 27일 청와대에서 가진 기독교 주요 교단 대표 간담회 자리에서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도 전광훈 목사와 사랑제일교회, 8.15 반정부 집회 참가자들을 싸잡아 “몰상식”, “적반하장” 등의 거친 표현을 동원해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앞서 8.15 광화문 집회에 참석한 국민을 향해 “용서할 수 없다”, “공권력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라”고 한 바 있다.
이번 문 대통령의 교단 대표 간담회 자리는 코로나19 사태로 앞서 천주교 대표를 청와대에 초청한데 이어 두 번째 종교계 간담회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이번 간담회에서 교계 대표를 부른 의미는 보다 분명했다. 그래서 참석한 교단 대표들은 대통령이 일부 기독교인으로 지칭한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 8.15 광복절 집회가 국민 생명에 위해를 가했다는 문 대통령의 거듭된 지적에 저절로 고개를 숙여야 했을지 모른다.
이 자리에서 한교총 공동 대표회장 김태영 목사는 문 대통령이 “종교의 자유를 너무 쉽게 공권력으로 제한할 수 있고, 중단을 명령할 수 있다는 뜻으로 들려서 크게 놀랐다”는 말로 응수했다. 이 말은 문 대통령이 지난 24일 “어떤 종교적 자유도, 집회의 자유도, 표현의 자유도 국민들에게 그와 같은 엄청난 피해를 주면서까지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헌법상 기본권의 제한 가능성을 시사한 발언에 대한 답변 성격이다.
대통령이 교계 지도자를 청와대로 부르는 것은 주로 정부의 정책에 대해 종교계의 이해와 협조가 필요할 때이다. 그러나 막상 그 자리에서 중요한 대화가 오고갔어도 정책으로 실현되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그야말로 서로 덕담이나 나누고 식사하고 사진 찍어 언론에 보여주는 요식행위로 끝날 때가 더 많았다는 말이다. 그것도 소통의 한 방법이긴 하다.
이번 청와대 교단 대표 초청 간담회도 일부 언론의 보도와는 달리 좋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언론에는 문 대통령과 교계 인사들의 입장이 확연히 다른 것으로 보도됐으나 공개하지 않기로 한 대화 내용이 무엇인지, 그것이 교계에 긍정적인 신호가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코로나19 재확산의 책임을 일부 교회에 돌리고 교계에 책임있는 행동을 요구하고 있는 대통령과 예배를 금지당한 교계의 절박성이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는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요원해 보인다.
코로나19가 재 확산되고 있는 현실에서 대통령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걱정해 종교계에 협조를 요청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나 형식은 이해와 협조 요청인데 내용이 강요나 지시면 곤란하다. 문제는 문 대통령이 이미 종교의 자유에 대해 선전포고를 해버린데 있다. 집회와 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까지 도매금으로 묶어 폐기처분할 수 있음을 이미 밝혔다. 그 명분은 오로지 “국민을 위해서”이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대통령의 권한 남용이 될 수 있다. 아무리 코로나19 상황이 엄중하다 해도 대통령은 끝까지 그런 말을 입밖에 꺼내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과거 군사정부 시절에도 “국민을 위해서”라는 말은 수 없이 등장했다. 그 시대 통치자들은 국민을 위해 삼선개헌을 하고, 유신헌법을 만들고, 군사독재를 했다. 대통령이 헌법의 질서와 가치를 지키는데 있어 자꾸 시대적 상황과 환경을 이유와 핑계로 대기 시작하면 민주주의는 망가질 수밖에 없다.
원로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모 언론에 기고한 칼럼에서 “코로나19 사태를 걱정하지 않는 국민이 어디 있는가. 자신의 생명과 연결되는 병마를 종식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는 국민은 없다. 그 위험을 무릅쓰고 비를 맞으면서 광화문광장으로 운집했던 애국시민들의 심정을 현 집권자들이 정치 수단으로 삼거나, 정책의 방향 전환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썼다. 그리고 끝으로 “그들도 우리 국민의 한 사람이다”라고 했다.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제19대 대통령 취임사에도 “그 국민”이 등장한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 한분 한분도 저의 국민이고 섬기겠습니다. (중략) 군림하고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이번에 문 대통령이 청와대로 초정한 교단 대표들은 정부 당국의 조치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는 분들이다. 한교총은 이미 정부의 비대면 예배 조치를 수용했다. 그러니 굳이 대통령이 청와대까지 불러 다시 협조를 요청할 필요가 없다. 차라리 문 대통령이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던 그 국민, 끝까지 대면예배를 사수하겠다고 한 그 국민 한분 한분을 청와대로 불렀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대통령의 취임사가 국민들 가슴에 더 깊이 더 오래 남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