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가 되면서 기독교를 아편이라고 하며 기성 권위 체제의 억압에 반하여 혁명을 하자는 공산주의 사상이 수많은 반항심에 들끓던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1920년대 러시아의 프로레타리아 공산혁명이 야만과 폭력으로 흐르자 서구의 맑시스트들은 실망과 좌절에 빠졌다. 그들은 다른 방향에서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함으로 맑시즘을 지속하려 하였다. 그런 새로운 맑시즘의 한 방편으로 “성의 해방”에 눈을 돌리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 1897~1957)이다. 그는 프로이트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정신분석가였으며, 동시에 공산주의자(맑시스트)였다. 라이히에 의해 맑시즘과 “객관적” 과학(즉 정신분석)이 합쳐졌다. 그는 맑스의 소외이론을 성적 소외(sexual alienation)로 대치하였다.
프로이트는 『문명과 그 불만』이라는 저술에서, 성욕을 억제(통제)함으로 인류문명이 발달하였지만, 대신 사람들은 불만(노이로제)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였다. 프로이트는 성욕을 창조로 승화함으로 사회에 발달에 기여하라고 조언하였다. 그런데 라이히는 성욕을 발산함으로 불만에서 벗어나 행복을 찾자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는 결국 정신분석학회 뿐 아니라 1933년 공산당에서도 쫒겨 났다.
라이히에 의하면, 인간은 육체적 필요(욕구)의 묶음에 지나지 않으며(유물론이다), 성적 표현(오르가즘)은 자연스러우며 이를 사회가 억압하는 것은 인간에 해를 끼치는 행동이다. 그 억압하는 사회란 결국 가족, 국가 학교, 교회, 그리고 국가이다. 그는 성적 억압은 인류역사 6,000년간 문명이 아니라, 전쟁, 프로레타리아의 착취, “종교적 신비주의” 그리고 파시즘 등, 전 세계 인간들을 병들게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결론은 성은 쾌락을 위한 것이므로 절대적인 성의 자유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성적 욕망을 만족시켜라, 그러면 당신은 지상에 낙원(유토피아)을 창조할 것이다.”라고 외쳤다. 라이히는 프로이트의 리비도이론을 단순화하여, 건강해지고, 또한 혁명의 시민으로서 계급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동성이든 이성이든 파트너를 바꾸든, 주 3회 오르가즘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자녀를 양육하기 위한 “의무적 결혼” 또는 “의무적 가족“은 없어져야만 했다.
라이히는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이 성적으로 활발하며 그러면서도 어떤 권위에도 저항하는 타고난 혁명가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가족적 연결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새로운 성교육을 하지고 하였다. 예를 들어 “금욕의 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으로 자위를 권장하였고, “(젊은이들의) 성적 억압은 의무적 결혼과 가정 뿐 아니라 복종적 시민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청소년 때 자유로이 성교를 시작하도록 권장하였다. 낙태를 법적으로 인정하자고 주장하였다. 비정상적 성도 해방(인정)하자고 하면서 동성애를 인정하였다. 이런 주장은 현재 우리 사회와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 그대로이다. 이런 주장은 궁극적으로 맑시즘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나치스를 피해 북유럽 국가들을 전전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갔다. 거기서 그는 개업하면서, 여러 망상증적 증상을 보였다. 그는 “오르가즘을 만들어 주는 기계”를 만들어 판매하다가 미국 당국에 의해 사기죄로 2년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는 연방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1957년 사망하였다. 같이 사기행각을 하였던 그의 동료는 일 년 후 석방되었으나 곧 자살하였다. 그의 결말은 그의 사상이 결국 망상증으로 보이게 한다.
라이히도 불행한 소아시절을 보냈다. 그는 11살 때부터 하녀들과 성교하였다고 고백하였다. 14살 때, 어머니의 불륜을 아버지에게 고자질하여 어머니가 자살하게 만들었다. 라이히는 15세 때부터 매춘업소를 들락거렸다. 그의 딸은 나중에 정신과의사가 되었는데, 아버지가 어려서 성적 학대를 받았다고 하였다.
사후에 그의 저술들은 1960년대 후반의 문화 (성)혁명을 통해 부활되었다. 그가 1930년대에 쓴 『The Sexual Revolution』은 1968년 학생 혁명의 성서였고, 이후 에로티시즘 문화의 발전(성혁명)의 청사진이 되었다. 그의 메시지들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이론으로 옷 입혀졌다.
라이히는 계급투쟁을 “성 억압에 대한 투쟁”으로 바꾸었으나, 이후 자본주의는 성생활을 억압하지 않았으며, 여전히 번성하고 있다. 라이히의 주장은 전통적 성윤리에 위배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고 기독교의 비판도 받는다. 세상문제의 해결을 성기와 오르가즘에서 찾는 것 같은 모양새는 정신분석의 평판을 나쁘게 만든다는 비판도 받는다.
민성길(연세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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