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6천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레바논 베이루트 대폭발 피해 현장에서 레바논 한인교회를 중심으로 현지 한인 사역자들이 생수와 마스크, 식량 등 구호품을 현지인들에게 신속하게 지원하며 피해 복구에 작은 힘을 보태고 있다.
2012년부터 레바논에서 시리아를 섬겨 온 조창현 선교사는 8일(이하 현지시간) “사고 발생 이튿날인 5일부터 매일 레바논 한인교회와 한인 사역자들이 피해 현장으로 달려가 생수, 마스크, 식량 등을 현지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고 밝혔다. 한인교회는 구호물품 구매팀과 현장팀으로 나눠 긴급구호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조 선교사는 “아직 국제구호개발 NGO들의 긴급구호활동이 셋업 전이고, 내국인 단체들이 다섯 곳 정도 구호활동을 하고 있어 외국인 단체는 저희가 유일한 실정”이라며 “아마 내일(9일)부터는 구호단체들이 더 많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피해 현장은 복구하는 사람들과 시위하는 사람이 뒤엉켜 있다고 전했다. 외신에 따르면, 폭발 참사와 관련하여 8일 5천여 명 규모의 시위대가 정권 퇴진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다 경찰과 충돌해 1명이 사망하고, 17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조창현 선교사는 현지 병원 사정이 매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인구 450만 정도의 레바논에서 8월 5일부터 매일 200~300명의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며 “폭발 참사 3일 전부터 이미 레바논 병원이 코로나 환자로 병상이 꽉 찼다는 뉴스가 나왔는데, 그 상황에서 부상자들이 대거 발생했기 때문에 병실과 의료진 부족 상황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지난 4일 레바논 베이루트 항에서는 창고에 적재된 2,750t의 질산암모늄이 폭발했다. 엄청난 폭발 충격으로 항구 주변은 초토화됐으며, 반경 2~3km 내 모든 건물의 출입구와 창문이 심하게 파괴되고 노후 건물은 붕괴하면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고 지점에서 10km 떨어진 지역까지 건물 창문이 깨지는 등 피해가 컸다. 레바논 정부는 현재까지 160여 명이 사망하고 6천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했으나 사상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 5일 생수 나눠주는데 바로 옆 건물 무너져 내려”
사고 지점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거주하는 조 선교사는 4일 오후 6시 10분쯤 폭발 당시, 비행기가 없는 레바논에서 마치 비행기 소리 같은 굉음을 듣고 의아했다고 말했다. 4일 밤 10시쯤이 돼서야 정확한 소식을 알게 된 조 선교사는 급한 대로 생수와 식량을 구해 이튿날 오전 피해 현장을 방문했다.
조 선교사는 “현장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큰 도로에서는 앰뷸런스가 다녔지만, 작은 도로는 건물 잔해와 파편, 잔해에 깔린 차량들, 떨어진 에어컨 실외기 등으로 진입 자체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소방관들과 인근에서 달려온 현지인들은 건물 내에 있던 부상자들을 밖으로 끄집어내 병원으로 보내고 청소를 했다. 항구 주변에 세 들어 살던 외국인 노무자들은 파괴된 집 앞에서 귀중품을 가방이나 비닐봉투에 담아 지키고 있었다고 했다. 조 선교사는 “5일 테이블을 펴놓고 생수를 나눠주는데 바로 옆 4층 규모 건물이 갑자기 무너져 내려 아비규환이 되기도 했다”며 “코로나로 사재기를 막기 위해 생수도 대량 구매를 할 수 없어 슈퍼를 돌아다니며 100개씩 구입해 첫날 500개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조 선교사는 “생수와 식량을 거의 다 나눠주었을 무렵 청소하던 현지인들, 붕대를 감고 있는 현지인들이 동양인인 저에게 다가와 오히려 구호금과 빵, 생수를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면서 엄지를 펼쳐 보이고 갔다”며 “기부 플랫폼이 필요한 현지인들에게 우리가 그렇게 보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현지에서 차별받는 동양인, 크리스천 소수자로서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고, 교회가 외형적 교회가 아닌 현장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에클레시아 현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조창현 선교사는 “빗자루만 들고 전국에서 모여든 수천 명의 레바논 청년은 바로 저의 모습이기도 했고, 불쌍한 레바논의 모습이기도 했다”며 “한국교회에서도 레바논을 향한 관심과 기도를 멈추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