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기 자신, 직업이나 가족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교회에 가야만 한다. 그리고 만약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 되신다면,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모든 시간 계획에 있어서 중심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것은 많은 자칭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너무 지나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예배가 자신들의 삶의 다른 모든 활동들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여전히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동떨어진 채 자신들의 집에서나 공원을 혼자 거닐며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잘 예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만큼 말이다.
- 제프리 존슨, <교회가 귀찮아!>
루터는 “참된 용서와 구원을 가져오는 진정한 마음의 변화는 오직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고,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 곧 은총에서 비롯된다”라고 설교하며, “면죄부는 죄를 허용케 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효화하는 허가증이 된다”라고 비판했다.
- 오광석, <간추린 종교개혁사>
십자가 정신은 사회생활에서도 유용하다. 사회에서는 전문성과 다양성을 갖춘 T자형 인재를 원한다. 나는 청년들을 위한 강의를 할 때 “기독교인은 T자형 인재에 영성을 추가하여 ‘십(十)자형 인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십자형 인재가 되어 상하 좌우로 대화하는 십자형 소통을 하면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중시되는 4차산업혁명시대에 필요한 인재는 공감능력과 창의적 상상력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십자형 인재, 십자형 소통을 추구하면 황금률을 잘 적용하는 창의적인 인재가 될 수 있다.
- 양병무, <행복한 성경 읽기>
현지교회들은 해석학적 공동체의 테이블에 앉아 있어야만 한다. 그들만이 복음의 적절한 상황화를 위해 필요한 내부자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지인들이 성경적으로나 신학적으로 훈련될 때까지 선교사들이 문법과 역사적 해석을 제공하고 비판적 상황화(Critical Contextualization)를 적당한 한도로 제공해야 한다..
- 데이비드 실즈, <선교사역을 위한 가르침의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