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은 9.11 테러 11주년이 되는 해다. 인류가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 실제 상황으로 벌어져 수천 명이 생명을 잃은 일로 온 세상이 슬퍼할 때 이슬람권에서는 대규모 테러의 성공을 기뻐하여 축포를 쏘며 거리에 나와 춤을 추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서양을 미워하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남이 볼까 무서워서 동굴에 숨어서 혼자 춤추는 것이 아니라 대도시의 길거리에 쏟아져 나와서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이 방영됐을 때 눈을 의심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이런 현상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라마단 이야기로 시작해 보기로 한다. 이슬람 신자들은 매년 아랍 달력으로 9월 라마단 달이 되면 단식을 지키기 위하여 아침 해 뜰 때부터 저녁에 해가 질 때까지 물이나 음식 심지어는 담배와 부부생활까지도 금한다. 평소에는 그다지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지 않던 무슬림들까지도 가능하면 라마단 기간 한 달간의 단식만은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슬람 교리에 의하면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라마단 달에 지브리일 천사로부터 꾸란을 받았으므로 그 한 달간은 천국 문이 열리고 지옥의 문이 닫히기 때문에 거룩하게 단식을 지키면 특별한 은총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신앙생활한지 수십 년이 지나도 1 주일 이상 금식 기도 같은 것을 해 본적이 없는 기독교인들도 많은데 무슬림들은 초신자라도 매년 한 달간 단식을 한다니 그들의 경건을 따라간다는 것이 엄두가 안 날 지경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라마단 달에 금식을 하는 무슬림들은 일상생활에서 더욱 경건해지고 더욱 거룩해져갈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더 난폭해지고 테러가 급증하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황당한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평화롭게 집에서 조용히 금식을 하는 것을 부인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해마다 라마단을 맞는 이슬람권의 뉴스를 살펴보면 이번 라마단을 기해서 대규모 테러를 준비하고 있다든가 혹은 , “피로 물든 라마단” 같은 제목들이 눈을 의심케 한다.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와 말씀묵상과 선행에 전념해야 할 사람들이 테러가 웬 말인가?
2012년 라마단은 7월20일경에 시작하여 8월18일경에 끝났는데 경찰과 보건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AFP통신이 보도한 바에 의하면 이라크에서만 금년 라마단 기간 한 달 동안에 폭력과 테러와 총기난사 사건으로 사망한 사람만 409명이며 부상당한 사람은 975명이라고 한다.(뉴스한국 2012.8.21) 그러니까 한 달을 30일로 계산해 보면 이라크에서만 매일 하루에 평균 13명 이상이 살해되고 32명 이상이 부상당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라마단이 시작된 3일째 되는 날 하루 동안에만 14개 지역에서 22건의 테러가 발생하여 107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코리아데일리 2012.7.23)
더욱 놀라운 것은 이라크에서 사망자들이 거의 모두 무슬림들이었다는 것이다. 이슬람의 경전 꾸란에 보면 무슬림은 절대로 무슬림을 죽여서는 안 되며 만일 실수로 죽였다면 보상을 해줘야 하며 혹 전쟁 중 적진에 있는 무슬림을 살해했을 경우에는 노예 한 명을 풀어주고 노예가 없을 경우에는 두 달간 단식하라고 명하고 있다.(꾸란2:92) 그러나 고의로 무슬림을 죽였을 경우에는 그 대가는 영원한 지옥이며 무서운 벌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꾸란2:93) 그런데 이들이 죽인 것은 실수로 죽인 것이 아니라 완전히 계획적이며 일부러 더 많은 무슬림들을 죽이기 위해서 고성능 폭발물을 사용했다.
이는 비단 이라크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지구상 곳곳에서 무슬림들이 라마단을 기해서 중요한 테러를 기획하고 실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예외 없이 폭발물을 터뜨리기 전에 반드시 “알라후 아크바르” 즉 알라는 위대하다는 구호를 외치고 터뜨린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개인적인 원한을 갚는다거나 어떤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알라를 위해서 혹은 알라의 명령을 실천에 옮기기 위한 신앙적인 목적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상징적인 행위이다. 그래야 순교자로 분류가 되고 알라께서 천국으로 들인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살 폭탄으로 혹은 적군들과 싸우다가 죽은 자들의 장례는 일반적으로 질병이나 사고로 죽은 자들과 전혀 다른 절차로 진행된다. 즉 일반적으로 사망한 자들의 장례는 옷을 벗기고 시신을 깨끗이 씻긴 후 깨끗한 천으로 시신을 싸서 관에 넣어 묻거나 혹은 그대로 땅에 매장하는 방법으로 장례를 지내지만 알라를 위해서 싸우는 전쟁인 지하드 혹은 자살폭탄 테러로 죽은 자들의 장례는 시신을 절대로 씻으면 안 된다. 피 묻은 옷을 입힌 채로 그대로 장례를 지낸다. 그래야 천국에서 심판을 할 때 순교자라는 것을 쉽게 식별하여 72명의 처녀들을 제공받는 낙원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필자가 이란에 있을 때 텔레비전을 통해서 여러 차례 반복해서 들을 수 있었던 시야 이슬람의 영웅 이맘 호메이니의 연설 중에 “에슬럼 훈 밐허핟(Eslam khun mikhahad)”이라는 말이 귓전에 맴돈다. 이는 “이슬람은 피를 원한다.”는 말이다. 이슬람을 대적하는 원수들의 피를 보기를 원한다는 말이기도 하며 이 목적을 위해서 장렬하게 나가서 싸우다가 죽을 수 있는 헌신된 용사들의 순교의 피를 원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무함마드가 천국은 칼의 그늘 아래 있다”고 한 말은 부카리의 하디스에 있는 말로 유명한 이슬람의 구호가 되었다.
스승의 날에 이란의 최고 지도자(Supreme Leader)가 교육부 장관을 비롯해서 대학교수들 및 교육계에 종사하는 국가의 지도자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할 때 필자가 직접 들은 충격적인 말이 생각난다.
“여러분들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최고의 실력을 갖춘 학자나 기술자 혹은 예술가나 전문가들을 길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감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은 이슬람을 위해 싸우는 전사들을 길러내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전쟁을 하는데 군인들을 열심히 훈련시켜서 최고의 사격 실력을 갖춘 백발백중의 명사수들과 한 사람이 100명 정도를 물리칠 수 있는 태권도와 격투기 실력을 갖춘 군대를 만들어 놨어도 적을 보고 ‘나가 싸우라!’고 하면 ‘저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더 좋을 텐데 도대체 왜 싸우라고 하는 거야?’라며 싸움을 망설이거나 못 마땅해 하는 군인들은 아무리 실력이 좋고 숫자가 많더라도 전혀 쓸모없는 군인들입니다.
비록 실력이 조금 모자랄지라도 명령이 떨어지면 손톱과 발톱과 이빨로 물어뜯어서라도 목숨을 내던지고 싸우고자 이슬람을 위한 전사들을 길러내는 것입니다.”
만일 국방부 관계자들이나 군인을 모아놓고 이런 연설을 했다면 이해가 가겠지만 교육자들에게 이런 연설을 한다는 것이 그 당시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고 그저 놀라기만 했었는데 나중에 이슬람의 속성을 깨닫고부터는 그 말이 이해가 되었다.
이슬람은 전쟁의 종교다. 그래서 세상을 전쟁지역(Dar al Harb)과 평화지역(Dar al Salam)으로 나눈다.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610년 계시를 받았다며 새로운 종교를 평화롭게 시작했으나 622년 메카에서 핍박을 피해 메디나로 이주한 후 623년 메카의 대상 떼들을 공격하는 바드르(Badr) 전투로 시작하여 630년 메카를 점령할 때까지 약 7년 반 동안 총 27회나 직접 군대를 진두지휘하여 전쟁을 치렀다.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한 말은 이슬람의 율법의 근원이다.
그런데 그의 생애의 가장 찬란했던 시절은 메디나에 있을 때였으며 그 때는 일 년에 평균 네 차례나 직접 군사들을 이끌고 전쟁터에서 보냈으니 그 때 그가 한 말들은 거의가 전쟁 중에 한 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의 말들이 율법의 기준이 된다면 이슬람의 율법은 전쟁 상황의 윤리가 기초가 된 체제라고 말할 수 있다고 본다.
전쟁 상황이라면 그 때는 승리보다 더 높은 가치가 없으며 승리를 위해서는 윤리나 도덕 혹은 정직이나 양심 같은 것들은 사치에 지나지 않는 특수 상황이다. 그런 것들을 다 챙기다가는 자신과 아군들의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며 좀 몰인정하거나 잔인하게 보일지 몰라도 본인이 살고 아군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거짓말이나 살인도 하나의 승리를 위한 작전의 일환으로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슬람의 꾸란에는 인륜의 기본인 십계명이 존재하지 않는다.
전쟁상황 중이라면 아군끼리는 절대로 죽여서는 안 되기 때문에 무슬림은 무슬림을 죽이지 않아야 하는데 왜 무슬림들끼리 죽일까?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순니파 무슬림들과 시야파 무슬림들은 서로를 아군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꾸란과 하디스에 헌신되어 알라를 위해서라면 언제나 목숨을 바쳐 순교할 각오가 되어 있는 지하드 전사를 자처하는 무슬림들은 비무슬림들과의 평화공존을 외치는 세속화된 무슬림 혹은 온건한 무슬림들을 아군으로 보지 않는다. 그저 무슬림인척 하는 위선자들로 보는 것이다. 위선자들은 죽이라는 것이 꾸란의 가르침이다.(꾸란4:145)
이제 라마단에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단식하면서도 타종교인들 심지어는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무슬림들에게 까지도 테러를 가하는 현상은 우리가 보기에는 테러지만 그들에게는 모든 무슬림들이 본받아야 할 가장 헌신된 신앙의 표현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슬림들의 표가 필요한 정치인들이나 매스컴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나 순진한 인권운동가들의 입을 통해서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라고 미화시켜 놓은 이미지에 속고 있는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의 안젬 초다리는 “이슬람은 지하드를 해야 하기 때문에 평화의 종교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고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무슬림 지도자들 중 한 사람으로서 스스로 방송 인터뷰를 통해서 고백하는 모습을 인터넷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http://www.youtube.com/watch?v=64V09tTIjR4)
이슬람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계를 정복하여 샤리야로 다스리는 세상을 만들고자 다양한 방법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은 9.11 테러나 기타 전세계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대규모 테러들을 통해서 증명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라고 말한다든지 혹은 이슬람의 정체를 알면서도 침묵하는 일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목적달성을 돕는 행위이며 스스로 빠질 구덩이를 파는 행위라고 생각해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유럽에서는 이슬람의 정체를 밝히지 못하도록 법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이는 국가 안보를 위해서도 해롭지만 그 이전에 개인의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이만석 선교사 (한국이란인교회, 4HI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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