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을 경외하는 예배자를 실종시킨다
구약과 신약에서 사용한 ‘예배’라는 단어는 ‘종이 주인을 섬긴다’는 뜻, ‘이마를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구약과 신약 모두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가져야 할 합당하고 기본적인 자세를 가르쳐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런 단어를 쓴 이유는 구약예배(제사)는 종이 주인을 섬겨서 일하는 것처럼 힘들었기 때문이다. 제물을 갖고 성전에 오는 것, 제물(동물)을 죽여서 씻고 불태워서 드리는 것 등등 예배드리는 것은 힘든 노동이다. 초대교회 시대에는 예배 장소에 참석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 예배자들이 힘든 것과 순교까지 감수하고 예배드린 이유는 하나님이 예배 받으시기 합당한 유일신이며 창조주이신 것과 독생자까지 주는 은혜를 베푸신 것을 믿고 이에 합당한 감사와 경외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온라인 예배(TV, 컴퓨터, 핸드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예배자를 실종시키고, 경외감 없는 또 행함이 없는 머리만 큰 예배 시청자만 양산할 뿐이다. 온라인 예배자들 중에는 올바른 예배자들도 있지만, 편안한 복장과 편안한 자세로 드리는 분들도 있다. 심지어 다른 일을 하면서 2배속으로 설교만 시청 또는 청취하는 분들도 있다. 더욱이 예배 시간도 정시가 아닌, 자신이 한가할 때마다 시청(청취)하는 분들도 있다.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편안한 예배시청자들은 점차 증가할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과 섬김이 없는 예배는 예배가 아니라 지식만 쌓는 것이며, 형식적 신앙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온라인 예배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현장 예배를 못 드릴 경우에만 대안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코로나19 상황은 피치 못할 상황이 절대 아니다. 매일 직장, 쇼핑센터, 식당, 커피숍, 클럽, 대중교통 등을 다 이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교회당 예배만 위험하다고 기피하는 것은 비의학적이고 비이성적이다. 세뇌 당했거나 핑계에 불과하다. 진짜로 직장, 쇼핑센터, 식당, 커피숍, 클럽, 대중교통 등을 이용할 수 없을 때는 온라인 예배도 대안이 될 수 있다.
2. 소천한 목회자(목사, 전도사) 설교로 예배하는 부작용을 발생시킨다.
약 7년 전에 한 목회자가 죽은 후, 그분이 개척한 교회 공동체는 새로운 목회자를 초청하지 않고 생전에 녹화한 설교동영상으로 예배를 드려서 한국교회에 문제가 됐다. 온라인 예배는 이런 문제점을 심화시킨다. 성도들이 온라인 생방송예배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녹화방송으로도 드리는데, 점점 자신들의 기호에 맞는 설교자들을 골라서 예배(시청, 청취)하고, 그러한 성향은 5년 전, 10년 전의 설교 동영상도 선택하게 된다.
이렇게 선이 무너진 예배는 특정 공동체가 아닌 성도들까지 소천한 목회자가 생전에 설교한 동영상을 선택하여 예배드리는 데까지 이르게 되고, 소천한 목회자의 설교에 향수 젖은 성도들과, 소천한 목회자의 설교지만 자신에게 은혜가 된다고 생각하는 성도들이, 소천한 목회자의 설교로 예배드리는 것을 선호하게 된다. 이런 일은 더 증가한다. 온라인 예배를 주장하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이런 부작용은 생각해봤는가?
한국교회는 온라인 예배를 도입하기 전에 온라인 예배가 가져올 부작용에 대해 신학적으로 깊이 고민하고 논의하여 해답을 제시했어야 했다. 정말 온라인 예배가 정당한가? 생방송만 되는가? 녹화방송도 괜찮은가? 소천한 목회자의 설교로 예배드리는 것도 괜찮은가? 괜찮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고, 안 된다면 또 그 이유는 무엇인가?
소천(사망)한 목회자의 설교로 예배하는 것과 온라인 예배가 정당하다면, 성도들이 생존 목회자들이 인도하는 예배에 참석할 필요성이 없어진다. 주일예배만 드리는 성도의 경우 1년이 52주이므로 5,200개의 녹화된 예배방송 파일만 있으면 온라인에 접속하지 않아도 100년 동안 집에서 편하게 예배드릴 수 있다.
한국교회는 지금이라도 모여서 논의하고 신학적, 성경적 해답을 제시해야 한다. 필자는 온라인 예배는 전도나 성경공부, 개인적으로 은혜 받는 용도로는 괜찮지만 정상적인 예배로는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특히, 소천한 분의 설교로 예배드리는 것은 ‘귀신예배’라고 해야 할까? 목회자가 소천했는데 ‘귀신’은 어울리지 않으니 적당한 단어도 떠오르지 않는다. 왜 깊은 고민도 없이 급하게 온라인 예배를 도입했을까? 당장의 현실적 어려움을 회피하기 위한 인간적 수단이고 무책임한 행동이다. 더 늦기 전에, 성도들이 잘못된 예배의 늪에 빠지기 전에, 책임있게 행동하라. 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해답을 제시하라.
3. AI(인공지능) 로봇 목사의 예배가 등장할 것이다.
소천한 목회자(목사, 전도사)의 설교로 예배드리는 것보다 더 심각한 걱정은 Al 로봇 예배의 등장이다. 온라인으로 생존한 목회자 또는 소천한 목회자의 설교를 들으며 예배드리는 것은, 머지않아 내·외국인 목회자들의 설교를 수십만, 수백만 개 이상 저장하고 나타날 A.I 로봇 목사를 통해 예배드리는 형태를 불러오게 될 것이다. 초기에는 저장해 놓은 설교 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것을 선택하겠지만, 나중에는 A.I 로봇 목사가 조합해내는 설교로 예배드리게 될 것이다. AI 로봇 목사는 모든 데이터를 활용해 그 성도에게 가장 잘 맞는 은혜로운 설교를 할 것이다.
AI 로봇 목사가 등장할 경우에 목양과 상담에 있어서도 인간 목회자는 수백만 개의 사례 데이터를 저장하고 활용하는 면에서는 AI 로봇 목사를 따라갈 수가 없다. 따라서 성도는 인간 목회자보다 AI 로봇 목사가 더 객관적이고 더 합리적인 대답을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또한 인간처럼 주관적이지도 않고, 돈 문제 등 시험에 들게 할 실수들도 하지 않을 것이다. 성구를 제시할 때도 인간 목회자는 암기력으로 어려움을 겪지만, AI 로봇 목사는 1초도 안 걸린다. 그 결과 성도들이 점점 인간 목회자보다 AI 로봇 목사를 신뢰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목회자는 필요하다. AI 로봇 목사가 인간 목회자를 절대 따라갈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등 영적인 영역이다. 하지만 온라인 예배에 익숙해진 성도들이 그 필요성을 알 수 있을까?
지나친 염려이고 너무 앞서간 공상일까? 그러나 이미 타종교에서는 A.I 로봇 성직자가 등장했고 계속 발전할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말하는 우상이 A.I 로봇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만약 A.I 로봇 목사가 등장한다면 인간 목회자들은 얼마나 살아남을까? 인간 목회자들이 희귀해졌을 때, 그리고 A.I 로봇 목사가 권력자 또는 사악한 세력에 의해 조종당한다면 A.I 로봇 목사들에게 설교 듣는 성도들은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불행한 일이다. 이러한 예측이 맞으면, 불행의 시작은 온라인 예배이며, 온라인 예배의 정당성을 주장한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판도라 상자를 연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죽은 영혼은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는가?
4. 통제 당할 경우에 진리를 전파할 수 없다.
온라인(인터넷) 예배 설교는 세상에 여과 없이 노출되므로 설교내용은 법적 소송거리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몇 년 전에 한 국무총리 후보자가 간증한 동영상의 내용을 청문회에서 문제 삼아 사퇴시킨 일도 있고, 목회자의 설교를 비난하는 일은 종종 발생하고 있다. 반성경적인 법이 통과될 경우에 목회자들은 진리를 선포하는데 있어서 처벌을 감수해야 하므로 진리를 선포하기 어렵다. 중국에서 온라인 예배나 회의 도중에 공안에 의해 단속되어 중단되고 처벌되고 폐쇄되는 사례가 보도되고 있다.
이처럼 온라인 예배는 검열과 통제에 자유로울 수 없다. 만약 한국교회가 온라인 예배를 정당화하고 정착시켜서 현장 예배를 소멸시켰다가, 이런 통제를 당하게 되면 그때는 어떻게 예배드리고 신앙교육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한 번 무너진 예배와 끊어진 성도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다. 쉽고 넓은 길을 찾지 말라. 믿음의 길은 좁은 길로 걸어가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5. 이단과 음란물에 접근하게 된다.
온라인 예배를 주장하는 분들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안전하게 예배드릴 수 있다는 장점을 말한다. 그러나 성도들이 예배에만 접속하게 될까? 유튜브를 예로 들면, 예배 동영상을 검색하면 예배뿐만 아니라 이단과 음란물도 줄이어 나온다. 성도들, 특히 청소년들이 순수하게 예배에만 접속하기를 기도해야 할까?
필자는 한국교회의 부흥과 발전을 위해 ‘목회와 세상’ 밴드와 개인 페이스북을 개설했다. 그런데 가만히 있어도 이단들과 음란물을 퍼트리기 위한 친구요청이 너무 많았다. 한 달 동안 차단한 것만 100개가 넘는다.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 특히 청소년들까지 이런 위험에 노출되는데 온라인 예배를 주장하고 정당화하는 것이 주님의 뜻일까?
온라인 예배에 대한 환상을 버려라. 온라인 예배는 잘못된 예배자들을 양산하고 성도들의 영혼을 위험에 빠뜨리며, 수많은 문제들을 발생시킨다. 온라인 예배는 재앙을 부를 뿐이다.
6.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
첫째, 용감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이기에 이웃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교회당에서 예배 안 드린다는 분들이 직장, 쇼핑센터, 식당, 커피숍, 대중교통 등은 다 이용한다. 교회당이 코로나 발원지라도 되는가? 이런 비합리적인 현상은 교회당 예배를 기피하는 것이 비겁한 거짓말임을 보여준다. 직장, 식당, 커피숍, 대중교통도 이용하지 말라. 그래야 진짜 이웃사랑이다. 그런데 교인이 교회당을 기피하는 기현상은 목회자들의 연약함에서 비롯되었다. 부디 목회자부터 정직해지고 용감해지자.
둘째, 교회예배를 평일에도 드려야 한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원수의 제한을 받으면 주일예배를 1-7부까지 만들고, 그래도 안 되면 토요일에도 주일예배를 드리고, 그래도 안 되면 평일에도 주일예배를 드리면 된다. 목회자는 성도를 섬기는 직분이니 주일부터 토요일까지 예배로 섬기면 된다.
셋째, 소그룹예배와 평신도 예배 인도자를 준비해야 한다. 코로나19 보다 더 심각한 재난 또는 기독교 탄압이 올 수 있다. 그럴 경우에는 현장 예배가 불가능해진다. 초대교회시대는 수많은 소그룹이 있었다. 그래서 탄압으로 인해 한 그룹이 사라져도 남은 그룹들이 교회 역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 교회 예배당에서 예배드릴 수 없는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카타콤에서 목회자 없이 소그룹 예배 인도와 기독교신앙을 교육할 수 있는 수준을 갖춘 평신도 예배 인도자를 양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신학교육은 필수이다. 지금부터 한국교회는 어떠한 전염병과 탄압에도 굴복하지 않고 카타콤에서 예배드리며 교회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김영태 목사(참빛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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