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 ”(창 22:12b)
율법사가 성경을 잘 아는 듯 보이는 예수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큽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이고, 둘째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하나님은 왜 인간을 만드셨는가? 사랑의 대상으로 만드셨다. 하나님도 인간을 마음을 다해서 사랑하시고, 인간도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 존재 목적이다.
인간은 이렇게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할 때 행복하다. 그런데 종종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하나님 자체보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사랑할 때가 많다. 아브라함도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주신 이삭을 더 사랑하고 있었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를 시험하셨다. 그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가서 번제로 하나님께 드리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결국 아브라함은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갔다. 그리고 칼을 들어 그를 죽여 번제로 드리고자 하였다. 이때 하나님은 그를 막으면서 “그만하면 됐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가 번성하여 큰 민족을 이룰 것이며 그의 씨를 통해서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 하셨다(창 22:16-18). 이는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한 민족을 만드시고 그 민족을 통해서 천하 만민을 축복하는 데 그를 첫 조상으로 쓰시겠다는 말씀이었다. 그 민족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민족, 하나님을 그 무엇보다 사랑하는 민족이다. 또한 그의 씨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예고한 말씀인데 예수님은 하나님을 그 무엇보다 사랑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신 분이다.
나는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주신 직분을 더 사랑하였다. 나는 국내에서 스탭을 하면서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이것이 좀 더 명예롭고 하나님의 역사에 중심으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선교회 대표님을 통해서 제게 하와이의 한국 대사관 운전사 선교사로 나갈 수 있는지를 물었다. 나는 그 방향을 들었을 때 마치 채색 옷을 입던 요셉이 이국 땅에 노예로 팔려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결국, 나는 그 방향에 순종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제게 두 가지를 시험하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첫째는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 되심을 내가 신뢰하는지를 테스트하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요셉은 사람들에 의해서 원치 않게 애굽으로 갔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인생의 주어가 되사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그에게 두신 크고 놀라운 뜻을 성취하셨다. 요셉의 일생은 우리의 삶을 결국 하나님이 주도하신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나도 그 믿음을 체험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하나님이 정말로 내가 하나님을 그 무엇보다 더 사랑하는지를 테스트하시는 것으로 느껴졌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하나님이 주신 어떤 것을 사랑하는지를 하나님 앞에서 확인받도록 하시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그 방향에 순종하여 대사관 운전사로 지원하였다. 확실히 합격하기 위해서 대학졸업 이력을 쓰지 않고 고등학교 졸업까지만 썼다. 나는 그때 하나님을 사랑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낮아지신 예수님의 하나님 사랑을 배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삭을 바친 아브라함의 하나님 사랑을 배울 수 있었다.
신기한 것은 내가 그 이력서를 제출할 때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창세기 22:12b 말씀이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 ”(창 22:12b) 그리고 왠지 내게는 내가 하와이에 가지 않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그 확신처럼 나는 결국 그 해에 국내스탭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자신을 사랑하는 것인지, 하나님이 주신 어떤 것을 사랑하는지를 테스트하신다. 결국 하나님이 주신 어떤 것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하나님 사랑으로 포장된 자기 사랑일 수 있다. 비전과 야심의 차이를 아는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고자 하면 ‘비전’(Vision)이고 ‘내가 원하는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려는 것이면 ‘야심’(Ambition)이다.
나를 사랑할 때 삶이 비참하고 불행해진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할 때 비참해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행복해진다. 하나님은 야심 많은 기독청년들에게 묻는다.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 데, 진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지, 이삭을 더 사랑하는지를 말이다. 하나님이 주신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진정으로 그는 하나님을 경외(사랑)하는 민족의 조상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만들고자 하는 민족은 하나님을 그 무엇보다 사랑하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이삭 사이에서, 비전과 야심 사이에서 고민하며,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자 애쓰는 기독청년들, 파이팅~
김갈렙 목사(UBF 세계선교부장)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