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 격화에 韓 외교 중대 기로…"전략적 모호성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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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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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현안별 공론화 통해 조속히 원칙 확립해야"

미·중 갈등이 전면전으로 치달으면서 한국 정부의 줄타기 외교도 중대 기로에 놓였다. 최근 미국이 한국 기업을 콕 집어 중국 통신장비기업인 화웨이와 거래 중단을 요구한 것은 물론 경제번영네트워크(EPN), G7 확대 정상회의 참여,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문제 등을 놓고 한국을 향한 직접적인 선택 압박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면서 실리를 추구하는 '전략적 모호성' 외교 전략이 한계에 부딪혔다고 지적하면서 공론화를 통해 현안별로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외교부는 오는 28일 3차 외교전략조정회의를 열고, 미중 갈등 현안과 파장을 점검한 후 종합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미국과 중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책임론에 이어 홍콩 국가보안법,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등을 놓고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이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중국 총영사관을 폐쇄하라고 요구하자 중국이 쓰촨(四川)성 청두(成都) 주재 미국 총영사관 폐쇄로 반격하면서 치킨 게임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미중간 대립이 심화되는 국면에서 미국이 동맹국에 반중(反中) 전선 참여를 압박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한국 정부에 탈(脫) 중국 경제 동맹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 참여를 요구한 데 이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한국을 비롯한 호주, 인도, 러시아, 브라질 등으로 확대하겠다는 구상을 제안했다.

특히 미국은 LG유플러스에 화웨이 퇴출을 요구하며 공개 압박에 나섰다. 로버트 스트레이어 미 국무부 사이버·국제통신정보정책 담당 부차관보는 지난 21일 미 포린프레스클럽(FPC)이 주최한 화상 브리핑에서 "LG유플러스 등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는 회사들은 '신뢰할 수 없는' 공급업체로부터 '신뢰할 수 있는' 공급업체로 옮길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5월 화웨이 장비가 첩보 활동에 사용될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미국 기업과 화웨이, ZTE와 거래를 제한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미국은 자국 내 화웨이 장비 사용을 통제하고 있으며, 주요 동맹국들에도 보이콧 동참을 요구한 데 이어 한국 기업까지 공개적으로 걸고 넘어지면서 반중 전선 결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 외교부 역시 반중 전선에 동참한 국가를 향한 보복 조치를 취하며 강력한 경고음을 보내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 함께 코로나19 책임론을 제기해온 호주에 육류 수입 일부를 중단한 데 이어 호주산(産) 보리에 대해 반(反)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아울러 화웨이는 버라이즌과 시스코, HP 등에 대해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하며 5G 특허로 반격에 나섰다.

특히 중국 정부는 양자나 다자회의를 계기로 한국 정부에 미국의 공세적인 조치에 반대하고, 글로벌 공급망의 '탈중국화' 가속을 위한 행보에 동참하는 데 대한 우려를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한 중국대사관은 최근 소셜네트워크에 '중국 인권 문제에 관한 각종 낭설과 사실 진상'이라는 입장문을 올리며 적극적으로 미국의 행보를 비판하고 나섰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8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제7차 외교전략조정 통합분과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외교부

미국과 중국의 줄세우기 압박이 고조되면서 한국 외교도 시험대에 놓였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외교부는 오는 28일 강 장관 주재로 3차 외교전략조정회의를 열고, 관계부처·학계·업계와 함께 미중 갈등 상황에서 종합적 대응 방향을 마련할 계획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2일 내신기자 브리핑에서 "기본 외교 정책은 한미 동맹을 중심으로 중국과의 관계도 조화롭게 발전시켜 나간다는 입장"이라며 "미중 전략 경쟁을 포함해 변화하고 있는 국제정세 속에서 협력을 확대하고, 우리의 원칙과 국익을 분명히 지키면서 전략적인 경제 외교를 펼치겠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미중 갈등에 대응하기 위해 1년 한시로 운영했던 전략조정지원반을 상설화하며 장기전을 대비하고 나섰다. 외교전략기획관 산하 정세분석담당관을 전략조정담당관으로 확대 개편했으며, 신설된 전략조정담당관실은 정세 분석은 물론 주요국 관련 외교전략의 조정, 주요국 관련 긴급 외교현안 대응 및 동향·정보 분석 등을 추가로 진행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미중 사이에서 추구해 왔던 '전략적 모호성'이 시효를 다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미중 압박이 심화되고 있는 만큼 시급히 분명한 원칙을 세우고, 현안별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중 전략적 경쟁 구도가 갈수록 치열해지고,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기존 경제와 군사·안보적인 영역 뿐만 아니라 인권, 민주주의라는 가치, 체제 우위론까지 확대됐다"며 "지난 5월 백악관에서 대중국 접근 전략보고서가 발표된 후로는 중국 공산당과 중국을 구분해 호칭하는 등 본격적인 이념 경쟁까지 격화됐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기존 전략적 모호성에서 미중 사이에 선택을 강요받을 가능성이 높아졌고, 이제는 선택을 해야하는 현안이라면 조속히 공론화를 통해서 국민들과의 합의를 거친 원칙을 확립하고 대미·대중 외교, 미중의 전략적 경쟁에 대한 한국의 대응 방안을 조속히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 역시 "그 동안 정부는 전략적 모호성을 통해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입장이었으나 이제는 자유민주주의, 국제사회 규범, 세계화, 법치에 기반한 국제 질서, 다자주의, 자유무역 등 원칙을 분명히 세우고 손해볼 각오도 해야 한다"며 "다자가 움직일 때 빨리 목소리를 내야 한국에만 보복을 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홍콩 국가보안법과 경제번영네트워크, 화웨이 사용 문제, 인도·태평양전략 참여 등에 대한 여론 조사를 시작하고 공론화를 거쳐 한국 정부의 입장을 마련해야 미중이 쉽게 압박을 가할 수 없다"며 "청와대가 컨트롤 타워가 되어 대통령 직속 태스크포스팀(TF)를 만들고, 분야별로 여론을 모아가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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