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북전단지를 살포해 온 북한 인권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큰샘’의 법인 자격을 전격 취소한데 이어 25개 단체에 대해 표적성 사무감사를 추진하자 대북인권단체들이 집단반발하고 있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등 5개 북한 인권운동단체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최근 통일부의 북한 인권운동 단체에 대한 조치가 비민주적이며 반인권적 처사로 판단하여 관련 조치와 정책들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은 이와 관련해 지난 23일 발표한 성명에서 “민간 차원에서 추진하는 북한 인권운동에 대한 정치적 탄압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앞서 미국의 인권단체인 북한자유연합(대표 수잔 솔티)도 문재인 대통령에게 긴급서한을 보내 “남한은 대북전단 살포와 같은 북한 인권을 위한 활동을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가 탈북 인권단체에 대해 잇따라 강경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은 이들을 그대로 놔둘 경우 지금까지 아슬아슬하게 쌓아온 남북관계가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북한 김여정 제1부부장이 지난 6월 4일 담화에서 대북전단 살포와 관련해 ‘이대로 그냥 간다면 그 대가를 남조선당국이 혹독하게 치르게 될 것’이라고 한 데 이어 16일 개성에 있는 남북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하자 화들짝 놀라 서둘러 이런 일련의 조치들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향후 남북관계를 위해서는 대북전단지 살포와 같은 북을 자극하는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정부가 북한의 눈치나 살피며 자국민을 과도하게 탄압하고 있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그냥 말 그대로 ‘삐라’에 불과한 종잇조각 때문에 남북 간의 신뢰가 허물어진다면 애초에 그 신뢰라는 것이 존재하기나 하냐는 것이다.
정부가 ‘대북전단 금지법’ 추진을 공식화한 것을 두고 야당이 대북 굴종 행위라며 날선 비판을 쏟아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당이 주민 안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해야 한다며 정부를 옹호하고 나섰지만 김여정 제1부부장이 “법이라도 만들라”고 한지 4시간여 만에 통일부가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을 만들겠다고 발표하자 야당은 ‘김여정 하명법’이냐며 정부의 저자세를 규탄하고 나섰다.
정부와 청와대, 여당은 대북전단 살포가 접경지에 사는 우리 국민의 안전과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기 때문에 금지해야 한다는 일관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설 훈 의원은 “2000년대 남북은 휴전선 인근에서 적대행위를 중단하기로 했지만 민간 차원의 대북전단 살포가 계속됐고 2014년 10월에는 (북한이) 전단을 향해 포격을 가해 접경지 주민을 위험하게 하기도 했다”며 남북관계 긴장 고조의 전적인 책임이 전단지 살포에 있다는 주장에 힘을 싣기도 했다.
그러나 접경지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내세워 법으로 대북전단지 살포를 금지하겠다고 하는 발상 자체가 설득력이 떨어지고,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해 위헌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국가기관이 나서서 전단지를 살포하는 것도 아닌데 북한이 저토록 예민하게 나오는 것도 그렇고, 북한이 그런다고 자국민을 탄압하는 법을 만든다면 오히려 유엔을 비롯한 전 세계로부터 민주주의 퇴보, 인권의 역행이라는 국가 이미지 추락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북한이 그동안 신형 미사일을 수차례 발사해도 모르쇠로 일관해왔다. 얼마 전 북한군이 우리 GP에 대한 조준사격을 했지만 정부가 나서 “우발적”이라며 오히려 북한을 감싸고 돌기도 했다. 그렇다면 북한의 신형 미사일은 누구를 겨냥하고, 북한군의 우리 병사를 향한 조준사격은 우리 국민의 생명, 안전과 무관하다는 말인가.
가끔 여기가 대한민국인지 북한인지 헷갈리게 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 놀랄 때가 있다. 북한의 절대 통치자인 김정은의 여동생에 불과하던 김여정이 어느 날 갑자기 제1부부장이라는 막강한 지위를 등에 업고 거침없는 언행을 쏟아내자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히는 게 그렇고, 더불어민주당 문정복 의원이 지난 23일 탈북민 출신인 미래통합당 태영호 의원의 대정부 질문에 대해 “변절자의 발악”이라고 한 것을 보니 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