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당시를 회고해 볼 때 차가 없어진 후 하나님께선 내게 전도의 훈련을 본격적으로 시키신 것 같다. 차가 없으니 동네에선 걸어서 왕복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식품점엘 들려 먹을 것을 사올 수 있었지만 월마트나 병원, 몰 등을 갈 때엔 버스를 이용하게 된 것이다.
나의 전도는 “Bridge to life”를 이용해 3분간 메시지를 전하고 영접 기도 후 상대방의 이메일 주소를 받아 일주일 마다 주기적으로 복음적 메시지와 가스펠 링크를 보내주는 방식이었다.
버스를 타려면 집에서 십오분 정도 걸어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고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 때에 복음을 전하는데 어떤 땐 개인적으로 또는 동행인들에게 함께 전한다. 버스에 올라선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나 앞 뒤에 앉아 있는 이에게 전도를 하며 전도용 팜플렛 등을 선물로 주면 무척 좋아한다.
차로는 십여분 걸리는 병원이 버스로는 트렌턴 다운타운을 돌아가 한 시간 이상이 걸린다. 그 동안 타고 내리는 사람들에게 전도할 기회가 주어진다. 가끔 크리스찬을 만나면 하이파이를 하며 신바람 나는 3분 부흥회가 되기도 한다.
어느 날은 병원 버스 정류소에서 집 방향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기다리며 스페니쉬 자매에게 전도를 하는데 한 흑인 청년이 빙그레 웃으며 내 주위를 맴도는 것이었다. 그래서 말을 건넸더니 자기는 크리스찬이었다가 불교를 믿고 있다며 내가 하는 말이 다 옳은 말이라고 하였다.
그와 같은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안타까운 심경에 전도를 하며 그의 이메일 주소를 받았는데 그만 귀가해서 보니 그 주소를 쓴 쪽지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그 후 마음이 아파 며칠을 자책하며 우울하게 지냈었다.
그 전 해 봄에 토요일 맨하탄 전도를 나가기가 어렵게 되자 동네 퀘이커브리지 몰에가서 전도를 하였다. 간이 점포를 하는 상인들이 전도 대상자로서는 아주 적합해서 그날도 쎌폰 케이스를 판매하는 한 청년에게 다가가자 그는 내 전도를 열심히 들었다. 그러고선 자기는 코란을 어려서부터 읽어왔다며 여러 가지 질문을 하였는데 코란은 하나인데 왜 기독교는 성경이 두 개냐는 것이었다. 구약과 신약을 그렇게 이해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내 설명을 다 듣고나서 제의하길 다음엔 자기가 코란을 내게 줄테니 나보고 성경을 가져와서 교환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자고 쾌히 말하고는 그 다음 약속한 월요일에 또 그 다음도 못나가다가 삼주가 지나서 나가보니 분명 그가 있던 자리에 점포가 안보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옆의 상점 주인에게 묻자 지난 주 그가 장사를 그만 두었다는 것이었다. 그때의 쇼크는 너무도 아픈 것이었다… 마치 한 영혼을 잃어버린 것 같은… 그것도 나의 부주의로 인해서… 그때 그에게 못 준 성경이 내 가슴에 너무 밟혀서인지 스타벅스에서 성경이 없다는 한 인도인에게 선뜻 큰 활자의 붉은 가죽표지인 킹제임스 성경을 건네주었는지 모른다.
여름 동안은 두달 동안 커네티컷을 오가며 네 다섯 번이나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야 했다. 오가는 동안 나의 전도는 집에서 전철역까지 가는 버스 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트레인 스테이션의 대합실과 플랫폼에서, 또 전철 안 옆 사람에게, 펜스테이션에 내려서 그랜드 쎈츄랄 전철역까지 걸어가는 동안, 전철안에서와 셔틀 안에서, 그리고 뉴 헤이븐 전철 안에서, 또 역에 내려서 걸어가는 동안 이렇게 전도가 이어지는 것이다.
전도를 시작하고 보니 전도의 수요자가 너무도 차고 넘친다. 맨하탄을 걸어 가노라면 눈에 띄는 홈레스들, 빌딩 바깥 모퉁이 마다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사람들, 횡단보도를 건너는 아기 엄마들, 땅콩을 파는 이슬람교인들, 대합실에 대기중인 사람들, 화장실에 줄 서 있는 사람들, 작은 가게의 주인, 지하도의 악사들… 이들 모두가 복음 메시지의 수요자인 것이다.
33가에서 그랜드 쎈트랄을 가는 동안, 또 한 정거장 구간인 셔틀 전철 안에서 옆에 앉은 사람에게 간결하고 명료하게 복음을 전하고 바로 내리게 되면 전도자인 나는 필경 메시지를 들은 사람에게 신비롭고 진한 뒷 인상을 심어주는 것일 것이다.
전도를 시작한 이후 난 시간에 별 구애를 받지 않게 되었다. 꼭 전철 시간을 체크하고 맞춰 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전도를 하면 되는 것이다.
언젠가는 커네티컷 전철역에서 혼자 벤치에 앉아있는데 한 청년이 내 앞을 지나 반대쪽 플렛폼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 때에 난 가방 속에서 무얼 찾느라 그 청년에게 말을 건넬 기회를 놓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의외로 그 청년이 다시 내 앞을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의 크리스찬이냐고 묻자 그는 모슬렘이라고 얼버무렸다.
그후 같은 전철을 타고 함께 앉아 가면서 그 청년은 기독교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하였다. 그는 기독교의 성경이 제각기 다른 내용으로 매우 많은걸로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혼란스런 걸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성경의 내용은 똑같은데 다양한 버전이 있을 뿐이며 몇몇 기독교와 유사한 이단들의 경전이 있는 것이라 설명해 주었더니 매우 놀라워했다.
전철 안에서 옆 자리에 앉은 사람들 대부분은 주로 핸드폰을 들여다 보고 있기가 일수이다. 그래서 처음엔 방해를 안하려고 모른척하고 있다가 눈치를 보면 건성으로 심심풀이로 핸드폰을 만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말을 건네면 대개는 쉽사리 응한다. 감사하게도 사람들은 나의 전도를 대개 매우 잘 받아들인다.
어떤 대학생 무리중 한 학생은 독일에서 와서 미국 대학을 다니고 있는데 필름에 관심이 많다며 다른 친구들과 달리 눈을 반짝거리며 열심히 복음적 메시지를 경청하는 모습이 퍽 대견하였다.
또 어떤 비지니스맨은 나의 메시지를 통해 예수를 영접하고 나선, 인도에서 미국 출장차 왔는데 몇 시간 후에 귀국 비행기를 탈 예정이라고 말하며 뭔가 경이로운 신의 섭리를 느끼는 듯이 보였다.
어느 날은 보기드물게 매우 경건하고 순수하게 생긴 백인 청년이었는데 여호와 증인이라고 하였다. 그는 나의 메시지를 들으며 예수의 신성에 대해서, 삼위일체에 대해서 상당한 의문을 표현하였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성경을 펴보이고선 나의 성경과 똑같다고 말하며, 마가복음 1장 9~11절의 주님의 세례 장면을 가리키며 예수님과 하나님이 구별되었음을 확인시키는 것이었다.
나는 에베소서 2장과 요한복음 1장의 말씀으로 하나님과 하나이신 예수님의 신성을 설명하면서 여유와 확신 있는 미소를 지으며 그 청년에게 삼위일체의 신비를 깨닫기 위해 명상해 보라고 도전성 권유를 하였다.
그러자 그의 신비로운 푸른 눈동자가 더욱 확대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다 그는 불안한 모험을 자제하려는 아이처럼 수줍게 웃으면서 자신의 신앙에 만족한다고 잠잠히 말하였다.
지금도 순진무구하게 보이는 눈망울로 차분히 천연 웃음을 지으며 어떻게 아버지가 아들이 되냐고 호기심을 잔뜩 가지고 묻던 그 맑은 표정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주여, 그 성실한 구도자 같은 청년을 기억하소서!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1~12)
박현숙 목사(프린스턴미션, 인터넷 선교 사역자)
#박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