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칸트, 인간을 말하다.
인간(human)은 다른 어떤 생명체보다 존엄한 존재이다. 인류 공동체에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오랜 논의가 이루어졌지만, ‘인간이 존엄하다’라는 명제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의심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간이 존엄한 이유는 무엇인가? 또한 휴머노이드는 존엄한 존재가 될 수 없는가?
칸트는 “인간을 결코 수단으로 대우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목적으로 대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다른 어떤 것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목적 그 자체로서 대우해야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칸트는 인간의 존엄성, 인간학의 완성을 위해 노력한 대표적인 철학자였다.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다른 어떤 존재들 보다 위에 있으며, 오직 인간만이 도덕적 지위를 가진 존재라고 말했다.
우리가 무언가의 ‘수단’으로 사용한다고 말할 때, 예를 들어 “숟가락은 음식을 먹기 위한 수단이다”라든지 “KTX(기차)는 아주 빠른 교통수단이다”라는 말을 할 때, 수단은 다른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사용될 때 쓰인다. 무언가의 수단이라는 것은 ‘도구적’ 의미를 가진다. 그런 점에서 인간이 만약 다른 어떤 것의 수단으로 사용된다고 말하면 인간의 지위보다 높은 무엇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인류 공동체에서 인간을 수단으로 사용해도 될 만큼의 다른 가치가 존재할 수 있는가? 인간이 다른 무언가의 수단이 된다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또 다른 인간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도 안 된다. 인간은 오직 그 자체로서만 목적적 존재가 되어야 한다.
칸트가 말한 인간, 목적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가치는 어디서 시작되는 것일까? 그는 인간이란 존재는 ‘도덕적 입법을 수행하는 자’이기 때문에 존엄하다고 보았다. 입법을 수행하는 자 곧 인간은 도덕적 규범을 스스로 만들 수 있고, 동시에 그 규범을 지켜나가는 존재이다. 오직 인간만이 도덕 또는 윤리적 규범을 만들 수 있는 입법자이고 또한 그 규범을 지킬 수 있는 존재이다. 인간 이외의 다른 존재는 윤리적 규범을 만들 수 없고 도덕이나 규범이 있다고 해도 인간 외의 존재는 그 규범을 지킬 수 없다. 칸트가 말한 인간은 다른 존재들 즉 동물이나 그 어떤 존재도 가질 수 없는 도덕적 존재로서의 지위를 가진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칸트의 도덕적 지위 말고도 인간의 가치는 어디서 발견되는가? 인간은 도덕적 존재 이외에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존재이다.
* 인간, 선과 악의 개념을 알다
성경에서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지닌 존재로서 다른 생명체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모습을 닮은 존재이다.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고 초월자에게 동경과 경외를 표현할 수 있다. 종교적인 인간은 초월자인 신(神)의 인식을 가진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존재로서의 인간은 하나님이 원하고 지향하는 바를 알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은 선과 악의 개념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이 보기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인간을 제외한 다른 종은 선과 악의 개념을 가지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본능적으로 생존에 필요한 것들과 관련해서 좋은 것과 그렇지 않는 것에 대한 반응을 가질 뿐이다. 인간은 선을 지향하는 존재이다. 선과 악의 개념을 통해 인류 공동체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었다. 선(善)의 인식은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을 제외한 다른 생명체들은 신의 존재에 대해 인식할 수 없다. 그들은 ‘보다 더 나은 윤리적 가치’에 관한 개념을 가지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더 나은 것’에 대한 가치를 알고, 최상의 가치인 ‘신적인 것’, 곧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만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동시에 하나님과 한 마음이 되어 초월자의 거룩함에 참여할 수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 어떤 것이고, 그것이 왜 가치가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인간을 제외한 존재는 ‘신적인 경험’이 무엇이고 그것이 주는 함의를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인간 이외에 다른 종, 호모 사피엔스를 제외한 다른 종들은 도덕적 지위와 종교적 지위를 가질 수 있을까? 그들은 신의 인식 그리고 선과 악의 개념을 가질 수 있는가? (계속)
김광연 교수(숭실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