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담긴 놀라운 비밀은 무엇일까? 복음은 흔들리지 않는 자아를 줄 뿐만 아니라 복음은 우리에게 놀라운 선물을 준다. 또한, 복음은 놀라운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알려 준다. 이제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행하신 위대한 사건을 소개한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4)”. 이 구절에는 복음의 핵심이 잘 담겨있다.
하나님 만나기 전에 우리는 어떤 존재였는가?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는 건짐 받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였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자기 몸을 주셨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위하여’라는 말은 ‘때문에’ 또는 ‘대신해서’라는 뜻이다. 이 ‘대신함’ 때문에 복음이 위대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일어난 것이다. 우리는 구원의 필요성조차도 몰랐고, 완전히 무기력한 상태에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그분의 선하신 뜻에 따라 은혜로 구원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에는 어떤 행위나 공로가 낄 수가 없다. 전적인 은혜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바울처럼 고백해야 한다.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5절).
한 양계장에 불이 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 모든 닭이 불에 타 죽었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양계장에 죽지 않고 살아 있는 병아리들이 있었다. 어미 닭이 불에 타 죽는 순간에도 두 날개 아래 병아리들을 안전히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로 그 어미 닭의 두 날개와 같다. 예수님은 죄인 된 우리를 두 날개 아래 품으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진노 불에 타 죽으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십자가 안으로 들어오라. 거기에 죄 사함이 있고 자유함이 있다. 주님은 우리 인생의 고난 가운데 우리를 건져주시고, 우리를 평안한 길로 인도해 주시기 위해 부활하셨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쓰신 ‘복음’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무디 목사님 교회의 스패포드(H.G Spafford) 집사님이 있었다. 이 집사님은 변호사로 크게 성공해서 엄청난 돈을 벌었다. 믿음도 아주 좋으셔서, 교회를 사랑하고 잘 섬기기 위해서 교회 옆으로 이사를 왔다. 그런데 시카고의 대화재 때 무디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가 불타버렸다. 교회가 불타면서 옆에 있던 이 집사님의 집도 불타버렸다. 아내와 네 명의 딸들이 절망하는 것을 보고 위로해 주기 위해서 가족들과 함께 유럽 여행을 계획했다. 유람선을 타고 떠나는 날에, 교회 보험에 관한 중요한 일이 있어서 교회 일을 보고 뒤에 따라가기로 했다. 그런데 배가 가다가 여객선과 충돌해서 배에 탔던 사람들이 거의 죽게 되었다. 네 딸이 다 죽고, 부인만 겨우 살아남게 되었다. 망연자실한 부인은 남편에게 전보를 보냈다. “이제 모든 게 끝장이에요! 저 혼자 살아남았어요. 이제 어쩌면 좋죠?”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부인과 네 딸이 유럽으로 떠난 후 은행이 갑작스레 파산했다. 당시에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시카고에서 일어난 은행 파산으로 스패포드는 전 재산을 잃었다. 떵떵거리던 부자에서 하루아침에 알거지 신세가 된 것이다. 이 비극 앞에 스패포드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인생을 포기했을까?” 아니다. 스패포드의 반응은 달랐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울부짖고 기도하다가 시 한 편을 써 내려간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평안해.
세상 사람들과 기독교인의 차이가 바로 이것이다. 스패포드는 ‘큰 풍파로’ 사랑하는 네 딸을 순식간에 빼앗겼다. 그런데 무섭고 어려운 순간에도 빼앗길 수 없는 평안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모든 상황을 넉넉히 이기는 승리가 있다고 말한다.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죽기 직전에 쓴 서신이다. 디모데는 믿고 의지했던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죽을지 모른다는 소식을 듣고 낙심했다. 기질적으로도 쉽게 좌절하고 낙담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디모데를 향해 바울이 권면하기 위해 편지를 쓴 것이다. 디모데후서를 기록할 때 바울은 최악의 상황 가운데 있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언제 죽을지 모른다. 최악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놀라운 진술을 한다. “내가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바울 자신이 비참한 처지에 있음에도 조금도 위축되는 모습이 없었다. 오히려 장엄한 승리의 곡조와 압도하는 선율이 그 안에 담겨 있다. 어떻게 극심한 고난 가운데 바울처럼 말할 수 있을까? 어떻게 모든 것을 잃어버린 스패포드가 평안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에 대한 설명은 단 하나밖에 없다. 우리 주님이시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신뢰하는 믿음, 이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복음을 믿을 때, 우리는 사도바울처럼 역경을 극복할 수 있다. 환난 중에도 스패포드처럼 평안할 수 있고 감옥에서도 찬송하며 고난 중에도 크게 기뻐할 수 있는 힘이 복음 안에 있는 것이다.
어떤 어려움도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가? 견고한 자존감을 갖기 원하는가? 바울처럼 감옥에서도 찬송할 수 있기를 바라는가? 심지어 고난 가운데서도 큰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건지시기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신 하나님을 알고 그분과 화해함으로 그분이 주시는 복을 받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무지하며 악하다.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복음은 흔들리지 않는 자아를 만들어 준다. 복음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은혜와 평강을 끊임없이 제공해 준다. 복음을 믿고 복음을 붙들고 복음의 감격 안에 살아가는 청년들 되어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최철준 목사(지구촌교회 젊은이목장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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