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64장은 하늘을 가르고 주께서 내려오시기를 호소합니다. 고통에 시달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속히 강림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주께서 악한 자를 벌하시고 공의를 행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기도는 자신의 의를 내걸고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부정한 자임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나아가 구원을 호소할 수 있는 근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시요 우리는 진흙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에게 의가 없지만 하나님께는 긍휼이 있으니 그분께 나아가 구원을 호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철저히 좌절하였어도 끝까지 주를 붙드십시오. 주는 아버지이십니다.
- 임승민, <맥체인 성경읽기 해설 3 (7월, 8월, 9월)>
아무튼 논증이라는 행위는 잠자고 있는 환자의 이성을 흔들어 깨우느 거나 다름없는 짓이야. 일단 이성이 깨어난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느냐? 그때그때 드는 생각들이야 어떻게든 그 흐름을 비틀어서 우리에게 유리하게 끌어올수 있지만, 네 환자는 그런 사고의 과정을 통해 찰나적인 감각적 경험의 흐름에서 눈을 돌려 보편적인 주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치명적인 버릇을 들이게 될게다. 그러니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의 시선을 감각적 경험의 흐름에 붙들어 두어야 해. 그것이야말로 실제의 삶이라고 믿도록 가르치되, 실제가 무슨 뜻인지는 절대 묻지 못하게 하거라.
- C. S. 루이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사람들은 스스로 하나님을 알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미련스럽게 전도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 미련하게 보이는 전도를 통해서 사람들이 믿음을 갖게 되는 일을 하나님은 좋아하신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이 바라는 생각이다.(고전 1:21 인용) 그래서 예수를 그리스도이자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을 가진 이들은 성경에 있는 이 말처럼 세상 사람들이 스스로 깨달아 알 수 없는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야 하는 소위 전도라고 하는 사명을 가졌다.
- 김동환, <교회가 싫은 당신께>